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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4 17: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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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펀더멘탈은 좋다며”며 멍하게 있다 빤쓰까지 다 날아간 IMF 20주년 기념 회고담

-시골에서 개나 키우고 농사나 짓던 누구마냥 땅콩 농사 짓던 카터, 연일 외교참사 일으켜

-80년대 초반 레이건 시대에 볼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중심으로 고금리 강달러 추진


최근에 트형이 한미FTA 개정협상을 선언(?)했는데요.

한미FTA의 연역을 올라가보면 사실 IMF의 서슬이 시퍼렀던 90년대 말 클린턴 행정부에서부터죠. 당시 IMF의 한파를 수출로 모면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미상공회의소가 강력하게 클린턴 행정부에 요청했죠. 하지만 별 실효성을 못거두고 지지부진하다가, 노짱 vs 부시 시절이 되자 급진정하는데요.

 

애시당초 부시는 노짱이 정말정말 싫었지만 주요 지지기반이였던 미 중남부에서 소 치는 카우보이들이 한국에게 소고기를 팔아먹고 싶다는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고, 또 생긴 건 농부같이 생겼지만 사실 발명도 잘하고 코딩도 잘하던 노짱 역시 한우 농가 보호보다는 대승적 결정(?)에서 수출로 보국하겠다는 마음으로 FTA 논의를 급진전시킵니다.

 

그뒤 MB가 집권하고 MB는 부시형과 죽이 잘맞아 FTA를 마무리지으려 했지만 미국 소고기 먹으면 황천길 간다 M모 방송의 PD수첩이 나간 이후 청산가리보다 미국 햄버거라는 말을 들어먹고, 촛불시위대에 밀리게 되죠. 그리고 미국에선 바마형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되더니 소위 러스트벨트를 돌며, 부시가 석유값 올려서 자동차 회사 다 망했다. 한국과 FTA 하면 한국차 더 들어와서 더 개판 된다며 유언비어(?)를 퍼트리자 러스트벨트의 노동자 계층들은 오바마에게 몰표를 주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죠.

 

그렇게 다시 재협상을 거듭해 한미간에는 다시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2012년에 한미FTA가 발효되게 됩니다. 그 뒤 클린턴 형의 마누라 힐러리 할머니가 러스트벨트는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안심하고 있는 사이, 트형은 재빨리 한국차 때문에 미국차 다 망했다. FTA 폐기해야 한다며 표몰이에 나서자 러스트벨트의 민심은 일시에 트형으로 기울고 결국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대통령이 되죠.

 

그래서 다시 한미FTA 재개정 협상이 시작됐는데요. 우파쪽 스탠스를 가지신 분들은 거 한미FTA 때문에 한국차가 진짜 미국에서 잘나간 게 아니냐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런지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데요. 미국에서 현대차 점유률이 높아져서 탑5 자동차 메이커가 된시점은 2008~2011년 사이고 역시 그 사이에 현대차 주가에도 특이점이 와서 3배나 급등하죠.

 

사실 FTA가 발효된 시점인 2012년부터는 오히려 미국 점유률이 떨어집니다.

흑! 그럼 대체 2008~2011년 사이에 어떤 일이?

 

사실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1.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고유가를 이기지 못하고 금융위기를 전후로 나가 떨어지고 그 사이 미국에 진출하려고 기회를 봤던 현대차가 점유율을 상승시켰고,

 

2. 2005년 경 완성된 알라바마 미국공장이 정상가동하면서 미국 시장 공급량이 급증했으며,

 

3. 결정적으로 고환율 정책으로 가격경쟁력이 급상승해 미국시장을 쉽게 공략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 옛날 대명제국 명나라는 주위 국가들을 고명과 조공이라는 두 가지 수단으로 컨트롤했는데요.

고명은 왕으로 임명해서 전통성과 외교적 격식을 마련해준 것이고 조공은 실질적으로 무역쿼터를 정해줘서 경제적 이득을 준 거죠.

사실 미국이란 나라에게 FTA라는 것은 과거 시절의 고명에 지나지 않는 형식적인 이야기고, 실질적으로 환율을 조작 아니 환율을 관리해 미국시장에서 돈을 벌게 해주는 게 실질적 조공에 해당하는 것이죠.

 

▲ 영국을 국빈 방문했던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 총리


반대로 말하면 절대 미국이란 나라는 호구가 아니고, 자국에 수출해서 돈벌어 먹는 나라가 달러 기축통화 하에서 환율을 조정해서 돈을 버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외교적 경제적으로 사이가 좋을때만 일정 기간 고환율 정책을 쓰는 걸 허용해주죠.

노짱에게 앙심(?)을 품은 부시가 1천원 이하 환율에도 환율조작국이니 뭐니 깠던 시기가 있었고 반대로 MB는 고환율 정책을 해도 미국이 별소릴 안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죠.ㅋㅋ

 

옆에서 이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바마형 럼프형 미국 형님 형님만 믿겠습니다를 남발(?)해 자국 화폐가치를 끌어내려 재미를 본 남자가 있었는데 바로 일본의 아베죠. 요즘에 환율이 자꾸 떨어진다. 엔화가치가 낮아지니 일본 가서 사케와 초밥이나 먹자는 분이 많은데요. 일면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하는 생각해보시면 재미있을 거 같네요.

 

하여간 이 이야기는 국제 외교, 금융과 국내외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한국의 펀더멘탈은 좋다며”며 멍하게 있다 빤쓰까지 다 날아간 이야기 IMF 20주년 기념 ‘돌아와요(?) 1997 IMF사태’의 서막 편이구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경제학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의외로 무식한(?) 사람이 많은데요. 말만 경제학과 교수지 경제학 제분야 중에 미시경제학만 공부하고 거시 국제경제학은 전혀 모르는 분들이 있죠.

 

학교 다닐 때 최소 전공으로 미시경제학만 듣고 소설 보고 놀다가 남들 다 고시 봐서 들어가고 은행같은 데 취직할 때 쩌리급으로 있다 어떻게 유학 가서 재정학, 소득분배론(?) 같은 걸 전공하고 돌아와서 교수하시는 분들이죠. 대표적인 예로 경북대 워렌 버핏이자 기부천사 ㅂㅊㅅ의 멘토라는 이모 교수 헉! 아닙니다 ㅋㅋ

 

하여간 경제학이 다 맞는 것이 아니니 신봉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사건 사태를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전공학생이라면 적어도 국제경제학 정도는 듣고 졸업했으면 하네요.ㅋㅋ

 

미국의 거짓말쟁이(?) 대통령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위기에 처하자 사면을 조건으로 자진 하야하고, 이후 선거로 정권교체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땅콩아저씨 지미 카터 대통령이죠. 지미 카터는 마치 이후 조선의 누구(?)마냥 닉슨행정부는 적폐다, 나는 이제 도덕정치를 하겠다면 온갖 착한 짓(?)은 다하고 다녔는데요.

 

시골에서 개나 키우고 농사나 짓던 누구마냥 땅콩을 키우고 살아서인지 사람은 착한(?)데 외교는 영 깡통이라 연일 외교참사를 일으키고 다녔죠. 우방국의 지도자들한테는 독재자라고 까면서 실제 독재자들한테는 무기 팔아먹을려고 아양을 떨기도 한 이상한(?) 인물로, 여튼 독재자들과 만나면 얼마 뒤 이상하게 다 뒤져버린다고(?) ‘독재자들의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요.

 

하여간 사람만 착했지 연일 외교참사를 일으키고 다녔고 결정적으로 이란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등에 잘못된 대처를 하는 바람에 미국은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오일쇼크라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직면케 됩니다. 뿐만아니라 그가 집권했던 70년대 말에는 일본의 경제적 부흥기로 일본 제품이 미국 시장을 석권, 전통적인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무너져 부도나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미국은 실업자들의 천국이 되는데

 

카터 대통령 시기인 70년대 말 오일 쇼크로 인한 고물가와 높은 실업률은 경제학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전통적으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역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죠. 인플레가 높으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인플레가 낮으면 반대가 된다는 말로 이를 경제학에서는 또 필립스 곡선이라고 하죠. 뭐 다 쓸데 없는 이야기구요.ㅋㅋ

 

하여간 기존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했는데요. 땅콩아저씨 카터 연간이 되니 인플레도 높고 실업률도 높은 그냥 개판 경제가 되어버리자, 경제학계는 혼돈에 빠지게 되죠.

 

여기서 혜성처럼 나타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 옹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자연실업률 가설이죠.

원래 실업률은 인플레이션과 상관없다. 마치 칼벵의 예정론 마냥 실업률은 다 정해져 있는 것이란 가설(?)입니다.

또 인플레이션 그거는 전부 화폐적 현상이다, 자꾸 돈질(?)하니까 돈 가치가 떨어져서 인플레이션이 오는 거지 다른 이유 없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거랑 실업률은 상관이 없닷(?)이란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땅콩 아저씨의 외교 대참사와 경제적 병크(?)로 매우 이례적으로 20세기 재선에 실패한 첫번째 대통령이 되는데요. 그 뒤에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미국 공화당의 영웅(?)이라는 도널드 아니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레이건은 밀턴 옹의 말을 새겨 듣고 물가 때렸잡기에 나서는데요. 80년대 초반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중심으로 한 고금리 강달러 시대가 오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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