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1-24 17:54:05
기사수정
-대국은 주어진 국내 정치논리로 국제 정치, 소국은 주어진 국제 정치논리로 국내 정치 하는 법

-레이건 행정부는 무역적자 해소 위해 일본과 담판, 일본 엔화 가치 절상하는 플라자 합의 체결

-플라자합의 이후 86~96년에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경제 부흥기 도래, 향락과 정치적 욕구 커져

미국이 강달라 정책을 쓰자 전세계 돈이 전부 미국으로 돌아가고 결과적으로 전세계의 물가가 잡히게 되는데요.

전에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김재익> 편에서 말했던 80년대 초반 물가 안정의 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뭐 대국은 주어진 국내 정치논리를 가지고 국제 정치를 하고, 소국은 주어진 국제 정치논리를 가지고 국내 정치를 하게되는 법이죠.

 

80년대 초반 경제관료들의 분투도 있었지만 사실 물가가 안정된 데에는 다 이런 세계적 분위기도 있었다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네요. 하여간, 물가가 잡혀서 좋긴 좋았는데 강달러가 되니까 미국의 무역수지는 연일 악화되기 시작하는데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대대적인 반일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일본제품을 쭉늘어 놓고 해머를 가지고 다 깨부수는 퍼포먼스가 연일 백악관 앞에서 일어 났고, 레이건 역서 해머를 가지고 일본 티비를 깨부수면서 “짭스를 죽여라”를 연호하기도 했죠(여기서 짭스란 스티브 잡스 의 Jobs가 아니라 영어로 일본놈(?)이란 뜻의 Japsㅋㅋ)

 

결국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과 무역 담판을 짓게되는데

 

오함마 레이건: 아따 너그 일본놈 제품 우리나라에 많이 팔아 먹었지라, 이제는 우리도 호구 그만 잡힐 터일께 싸게 싸게 알아서 환율 절반으로 조정하랑께

일본: 헉! 거니형님 거니형님(주의 쁘띠거니와는 무관하닷?) 그라면 우리 가 빌려준 채권 가치도 다 내려가 버린다께로, 240엔 물건 팔고 1달러 받는 대신 1달러 꿔드렸는데 이제 돈 받을 때 환율이 120엔 되버리면 우리는 반값으로 물건판게 되버리는되요.

오함마 레이건: 아따 동생 나가 오늘 들고온 이 함마에는 아직도 우리 독수리국이 동생네 핵꿀밤 때리던 시절 온기가 남아 있다께롱, 그리고 우리 독수리국이 동생을 강간(?)전문 소련군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일본: 그래도,

오함마 레이건: 야 아그야 함마 준비해야 쓰것다.

일본: 헉! 알겠습니다.

 

그렇게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엔의 가치를 절상하는 합의가 체결되는데요.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엔의 가치를 절상하는 합의가 체결되는데요.


일본의 엔화가치가 절상되면서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은 크게 악화되는데요.

실제 엔화가치가 50% 이상이나 절상되면서 일본제품은 미국에서 시장점유률이 떨어지게 되죠.

하지만 뭐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나기는 개뿔 덕은 다른 나라에서 보게되는데요.

 

바로 아시아의 4마리 용이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이었죠. 특히 한국의 경우 엔고라는 특수를 타고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는데요.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86~96년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호황기 황금시절, 골디락스 경제 부흥기라고 할 수 있죠.

보통 사람들은 물가도 낮고, 유가도 낮고, 달러가치도 낮다(엔화 가치가 높다)고 해서 이를 3저 호황기라고 합니다.

 

사실 일본의 중흥기는 앞에서 말했듯이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으로, 사람은 먹을 게 해결되면 읍읍(?)이 생각난다고, 일본인들이 기생관광 가고 현지처 만들고 특히 로망 포르노(헉! 자세한 내용은 모른닷 ㅋㅋ)라는 읍읍한 예술 분야가 생겨나게 되죠.

 

한국도 이때 3저호황을 겪으면서 사회가 많이 바뀌에 되는데요. 앞에서 말했듯 사람들은 배 부르면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읍읍(?)이요 다른 하나는 정치적 욕구죠. 뭐 3S정책이라고 하면서 정부가 읍읍한 영화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사실 뭐 좌파적 사고의 뇌내 망상(?)이라고 봅니다. 뭔 읍읍한 영화 본다고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상식적으로 읍읍한 걸로 사람들을 바보를 만들라고 시켰다는것도 말이 안되죠.ㅋㅋ

 

하여간 당시 한국 영화 산딸기 시리즈, 뽕 시리즈, 변강쇠, 애마부인 부선누님(헉! 아닙니다) 등등이 나오던 시기였고,

또 서울역에 내리면 숙식 보장 월급 300 보장이라며 강남에서 접대부를 구하는 구직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경제적 부가 생기니 정치적 욕구도 높아지는데요. 뭐 읍읍 말고도 돈이 많아지면 하다못해 동네 통반장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죠. 3저호황에 힘입어서 소위 화이트칼러라는 사무직 중산층이 늘어나게 되고, 이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것이 87년 민주화 투쟁입니다.

 

하여간 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가 절상되고,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라고, 어디 가봉, 콩고 대통령이나 만날 수 있던 국력의 대한민국이 3저호황을 타고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지나며 당당한 중진국이 되고, 강남에 읍읍한 곳(헉! 아닙니다)이 늘어나고, 마이카 시대, 해외여행 자유화 등등으로 순식간에 잘사는 나라(?)가 됩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자국 화폐가 절상되자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고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게 되는데요. 주요 타겟이 인도네시아, 태국 등등이었죠. 또 일본 정부는 수출이 안되면 내수라도 살리겠다며, 금리를 내리게 되는데요. 일본의 저 금리 정책으로 내수가 살기는 개뿔 마치 부동산에 미친 조선의 떳다방 아줌마들처럼 전부 빚내서 부동산 사고 빚내서 땅사고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곤 했죠.

 

80년대 후반 일본인들은 자국의 엔고를 이용해 동남아 미주지역의 주요 자산을 구매하고, 국내외 자산에 투자했는데요. 그래서 부동산 버블, 주식시장 버블이 나게 되는데 88년 당시 전세계 50개 회사 중에 시가총액으로 일본회사가 3분의 2를 차지하는 등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죠.

 

일본이 80년대 후반 엔고와 저금리 정책으로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역시 80년대 말 91년까지 역사상 최대의 부동산 상승이 이어지면서 엄청난 유동성이 풀리게 됩니다. 말그대로 연일 가즈아를 외치면 전국민이 행복하던(?) 시절이죠.

방송에서 공영광고라고 하는 게 과소비를 하지 말자, 모피코트 입지 말자 해외여행 하지 말자 등등 과소비가 사회문제(?)가 되던 시기입니다.

 

요즘은 뭐 욜로족이다 하면서 뭐 거지같은 급식(?) 학식(?) 수준의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지만 여튼 그때는 부동산 졸부 주식쟁이 졸부 등등이 연일 나오던 시기라 뭐 내용상으론 과소비가 아니었죠.ㅋㅋ 사실 플라자합의 이후의 10년여 시간들은 일본 미국의 저금리가 만들어낸 유동성의 시대라고 알아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일본은 제조업 경쟁력을 상당부분 상실해 한국과 중국에 추격을 빌미를 주었지만, 하여간 읍읍(?)도 열심히 해 성진국(?)이란 말도 듣고,해외투자도 많이해 겉으로 보기는 나쁜편이 아니었죠. 또 금융 부문에서는 아시아의 금융 맹주급으로 부상해서 지금의 중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금융 분야에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소로스 옹이 말씀대로 “큰 부는 게임이 체인지될 때 나온다”는 말대로, 미국의 금융정책의 물때가 다시 한번 크게 바뀌면서, 뭔가 불행한 징조들이 나타나는데요.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29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치더보기
북한더보기
국제/외교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