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스원에서 기자회견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직후 덴마크 영토인 그린란드를 확보하겠다는 집착을 다시금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유럽 안보 지형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진행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에 오른 전용기 에어포스원 내부에서 유럽 동맹국들을 겨냥한 폭탄 발언을 던졌다.
dpa통신을 포함한 외신들에 따르면 그는 유럽 대륙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의 추가 철수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많은 것이 그린란드에 달려 있다"라고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그린란드와 관련해 매우 좋은 합의를 이룰 수 있는지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라며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라는 말로 그린란드 영토 확보 여부를 군사력 감축과 연계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미국 행정부는 그동안 유럽의 우방국들이 자국 방위를 위해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자체적인 군사적 기여 확대를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해 향후 6개월간 면밀한 검토 과정을 거친 뒤 유럽에 전개된 미군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최종 확정하겠다는 로드맵을 최근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은 독일과 폴란드, 이탈리아, 루마니아를 비롯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해 연안 국가 등 유럽 전역에 걸쳐 약 8만 명 규모의 방대한 병력을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는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 날에 앞서 회의 장소인 앙카라에 발을 디딘 지난 7일에도 그는 기자들을 만나 "(미국과) 나토의 관계를 다치게 한 이유"라며 "그린란드는 덴마크가 아니라 미국에 의해 통제돼야 하는 곳"이라고 주장해 가라앉았던 영토 병합 논란을 수개월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어 정상회의가 막을 내린 8일에도 취재진에게 "그린란드는 미국에는 매우 중요하지만 덴마크에는 중요하지 않다. 그린란드 문제를 놓고 나토가 한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며 해당 지역에 대한 통제권 확보가 최우선 관심사임을 재확인했다.
이 같은 초강경 발언이 전해지자 당사국인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양국 정상은 즉각 성명을 내고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다"라는 기존의 대원칙을 재차 명확히 천명하는 동시에, 미국을 향해 국제 사회 동맹국의 엄연한 주권을 전적으로 존중하라고 촉구하며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32개 회원국 정상이 모두 집결한 공식 회의 석상에서는 논란이 될 만한 그린란드 귀속 문제를 단 한 차례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대서양 동맹의 굳건한 결속과 통합을 지지하는 완곡한 발언을 이어가면서, 당초 서방 진영이 우려했던 최악의 외교적 파열음이나 충돌 없이 정상회의 자체는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럽 전문 매체인 유로뉴스는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터져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기내 발언으로 인해 유럽 대륙 전체가 잠복해 있던 그린란드 발 갈등이 본격적으로 재점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깊은 우려와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진단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지역이 미국의 안보 전략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충지라며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강제 병합하겠다는 극단적인 의지를 표명해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의 우방국 전체를 공포와 충격에 빠뜨린 전례가 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이 대서양 동맹의 파기를 우려하며 강력한 공동 전선을 구축해 거세게 저항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현안을 무력이 아닌 외교적 협상 테이블에서 다루겠다며 한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미국과 덴마크, 그린란드 당국 간의 구체적인 해법 마련을 위한 3자 협의가 물밑에서 개시됐다.
이후 2월에 발발한 중동 전쟁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 사회의 시선이 다른 대형 악재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그린란드 영유권 문제는 공식 의제에서 잠시 지워졌으나, 이번 돌발 발언을 통해 양측의 갈등의 불씨가 전혀 꺼지지 않았음이 입증됐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정부는 지난 1951년 미국과 맺은 양자 방위협정 체계를 근거로 올해 1월부터 그린란드 영토 내 군사적 지위 조정을 위한 협상을 이어왔지만, 양측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인해 아직까지 이렇다 할 구체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의 지난 5월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북극권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의 영구적인 주둔 권리를 명문화하고 외국의 신규 자본 투자에 대한 독점적 거부권까지 확보하려는 무리한 요구를 관철하려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러한 요구 조건들이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가진 자주적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이자 심각한 도전이라고 평가한다.
유로뉴스는 덴마크와 그린란드 정부가 외교적인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고대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적인 무력 행사를 피하는 대신 경제적 제재나 외교적 압박 등 다른 우회적인 수단을 동원해 합병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다른 유럽 연합 회원국들을 향해서도 현재의 위기 상황을 결코 안일하게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기류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