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 델리 봉쇄에도 멈추지 않는 시위…모디 정권에 무슨 일이?]
인도를 12년 넘게 통치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온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심각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1억30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선거인 명부에서 삭제됐다는 논란에 선거 조작 의혹까지 확산되면서 인도 정국이 격랑에 휩싸였다. 특히 Z세대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에 야권까지 가세하고, 경찰의 강경 대응에도 저항이 이어지면서 모디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강력한 지도력을 자랑해 온 모디에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선거 행정 논란을 넘어 장기집권의 안정성을 시험하는 중대한 위기가 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2일, “인도 수도 뉴델리가 선거인 명부 조작 의혹을 둘러싼 반정부 시위로 긴장에 휩싸였다”면서 “인도 당국이 시위대의 대법원 행진에 대비해 지하철역 일부를 폐쇄하고 주요 도로를 통제했는데, 시위대는 갸네시 쿠마르 중앙선거관리위원회(ECI)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어 “앞서 10~11일에는 수도권 경비에 경찰 등 약 6만 명이 동원됐는데, 주요 진입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지하철역 폐쇄와 이동통신 제한 조치까지 내려졌다”면서 “경찰이 10일 하루에만 시위 참가자 약 2400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연행되면서 언론 자유 침해 논란도 불거졌다”면서 “국제 언론자유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최소 16명의 기자가 연행됐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시위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력 동원이 반정부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인구보다 많은 유권자 삭제…선거의 공정성에 의문]
이번 사태의 발단은 인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추진한 대규모 유권자 명부 정비 작업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명부 정비 과정에서 약 1억3300만 명의 이름이 삭제됐다. 일본 전체 인구보다 많은 규모다. 삭제 대상에는 사망자 약 2800만 명, 이주자 약 6300만 명, 소재 불명자 약 3000만 명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정비 작업이 정치적으로 편향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야권은 힌두 민족주의 성향의 집권 인도국민당(BJP)을 지지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무슬림 등 소수집단과 야당 지지자들이 부당하게 명부에서 제외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인디언익스프레스는 “선관위원 2명이 명부 정비와 관련한 일부 결정에 내부적으로 우려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키웠다. 그러나 선관위와 인도국민당(BJP)는 조작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선관위는 사망자와 중복 등록자, 허위 등록자를 정리하기 위한 정상적인 행정절차였으며, 잘못 삭제된 유권자는 재등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1억3300만 명 모두가 부정하게 삭제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선거인 명부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디 정권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퀴벌레라고?”…모디에게 도전장 던진 Z세대]
이번 시위에서 가장 주목할 세력은 인도의 젊은 세대다.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는 '바퀴벌레국민당'(CJP)이다. 이 단체는 청년 실업과 교육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성장한 온라인 정치운동 조직으로 소개되고 있다. 단체 이름은 실업 상태의 청년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했다는 논란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불만에서 출발한 운동이 이제는 선거제도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반정부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AP에 따르면, CJP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5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국민당(BJP)의 팔로워 수를 웃도는 규모지만, SNS 팔로워 수가 곧 실제 정치적 지지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CJP는 앞서 의대 입학시험 문제 유출 의혹을 둘러싼 시위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청년 실업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었다는 평가다.
이번 시위에서도 CJP 창립자 아비지트 딥케를 비롯한 지도부가 경찰에 구금됐다가 석방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딥케는 모디 총리를 향해 '인도의 수치'라고 비난하며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목할 것은 청년들의 분노가 특정 정책에 대한 반발을 넘어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다. 빠른 경제성장에도 취업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체감하는 젊은 세대가 선거 공정성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권리와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경 진압이 오히려 역풍…집권 연합 내부에서도 이견]
모디 총리에게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가 야권의 반발을 넘어 집권 연합 내부의 이견으로 번질 가능성이다. 인디언익스프레스는 10일 “모디가 이끄는 국민민주연합(NDA) 내부에서도 시위 대응을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연립여당 인사들은 강경 진압보다 청년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모디는 그동안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선거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경찰력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정부가 국민의 저항을 두려워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
야권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의 라훌 간디를 비롯한 야권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을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12일에는 야권 정치인들이 대법원으로 행진하며 선관위의 책임을 요구했다. 모디 총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시위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층의 불만, 야권의 결집, 연립여당 내부의 이견이 하나의 정치적 흐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12년 철권 통치의 시험대…2027년 선거가 분수령]
모디 총리는 2014년 집권 이후 힌두 민족주의와 경제성장,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를 앞세워 인도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2024년 총선에서 BJP가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환경은 달라졌다. 모디는 연립여당의 지원으로 3연임에 성공했지만, 이제는 동맹 정당들의 협력 없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선거인 명부 조작 의혹이 불거진 것은 모디에게 특히 부담스럽다.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과 달리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 자체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2027년에는 인도 최대 인구를 가진 우타르프라데시주를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 주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다. 우타르프라데시주는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 정치에 중요한 기반이 되는 지역이다.
이번 논란이 장기화하고 실제 유권자들의 투표권 침해 사례가 확인된다면 선거관리기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선관위가 삭제 절차의 투명성을 입증하고 잘못 제외된 유권자들의 권리를 회복시킨다면 사태가 진정될 여지도 있다. 모디가 당장 권력을 잃을 가능성을 논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이번 시위가 실제 선거에서 집권당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집권의 정치적 기반에도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Why Times Insight | 모디의 진짜 위기는 선거부정 의혹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모디 총리가 이번 사태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거리로 쏟아진 시위대의 숫자가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탱해 온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위기의 본질은 '정책 실패'가 아닌 '정당성 위기'다. 교육장관 사퇴로 끝난 NEET(인도의 전국 의대 입학자격시험) 시위는 특정 정책의 실패를 문제 삼았다. 반면 이번 시위는 '선거로 집권한 권력'이라는 모디 체제의 근본 명분을 정조준한다. 선관위가 흔들리면 BJP(인도국민당)가 앞으로 거둘 모든 승리가 의심받는다. 장관 한 명을 내주는 방식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성격의 위기다.
둘째, 쿠마르 위원장 경질은 양날의 칼이다. 모디 정부가 위원장을 교체하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지만, 이는 곧 명부 정비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인하는 신호가 된다. 1억3300만명 삭제의 재검증 요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버티면 시위의 장기화와 야권 결집을 감수해야 한다.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 '최대 위기'의 실체다.
셋째, 2024년 이후의 연립 구조가 변수다. 단독 과반을 잃은 BJP(인도국민당)는 지역 정당과의 연립에 기대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선거 공정성 논란이 장기화해 연립 파트너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면, 거리의 위기가 의회 내 위기로 옮겨 붙을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연립 이탈 조짐을 보여주는 보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넷째, 강경 진압은 단기 효과, 장기 비용이다. 수도 봉쇄와 통신 차단, 기자 연행은 당장의 집회 규모를 억누를 수는 있지만, 대법원의 공개적 경고와 국제 언론단체의 비판을 불렀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라는 인도의 대외 이미지에도 타격이다. CJP가 온라인 동원력에서 집권당을 앞서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탄압이 온라인 분노를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번 선거 부정 사태의 진실이 모두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는 모디 장기집권의 중요한 취약점을 드러냈다. 강력한 권력은 경찰력과 의회 의석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국민의 신뢰까지 강제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모디의 진짜 위기는 바로 그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