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웨이둥과 먀오화, 시진핑의 사병군단 불법으로 창설]
몇 년 전까지도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이론 연구 교육기관인 중앙당교(中央黨校)의 교수로 일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차이샤(蔡霞)가 최근 일어난 중국 군부의 비상상황에 대해 공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 핵심은 장유샤(张又侠)의 군 장악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군사위원회의 허웨이둥(何卫东)과 먀오화(苗华)가 비밀리에 시진핑(习近平) 수호무장부대를 만들어 운영하다 발각되었고, 이 때문에 분노한 장유샤가 이들을 시진핑(习近平)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단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보기 드문 내부 폭로자로 몇 년 전까지도 공산당의 이념과 이론 연구 교육기관인 중앙당교(中央黨校)의 교수로 일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차이샤(蔡霞·73)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최근 중국 군부 동향에 대해 극비사항을 털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차이샤는 시진핑과 같은 ‘훙얼다이(紅二代·공산혁명 원로의 2세)’이기도 하고 차이샤의 외조부도 마오쩌둥과 함께 농민혁명에 참가한데다, 부모도 인민해방군에 투신해 항일전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중국 공산당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분명한 무게감이 있다.
특히 중국에서 중앙당교의 위상은 막강하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공산당 초급 간부에서 고위간부들은 이 학교를 거쳐야만 한다. 시진핑도 중앙당교 교장을 지낸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당교의 교수라면 중국 공산당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차이샤는 또한 중국 공산당 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전문가로, 중국 공산당 체제의 내부 작동 방식, 관료 사회의 역학, 그리고 권력 역학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차이샤가 체제 내에서 풍부한 인맥을 구축하여 상층부의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이샤가 그동안 중국 군부에 대한 기밀사항에 대한 첩보를 여러 채널을 통해 확보했지만, 신중을 기하는 차원에서 공개하고 있지 않다가 지난 25일(미국시간) 팡파이타임(方菲時間)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모든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차이샤(蔡霞)는 이날 “허웨이둥(何卫东)과 먀오화(苗华)가 허베이성 랑팡(河北廊坊)에 기존의 어떤 전구, 군구, 또는 전통적인 군사 체계와도 완전히 독립된 부사단급 무장부대를 비밀리에 창설했다”면서 “이 부대의 장비와 구성은 완전히 독립적인 작전이 가능할 상당한 수준으로 채웠으며, 중앙군사위원회 허웨이둥의 작극적인 지원 아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차이샤는 이어 “이 부대의 지휘 체계는 매우 독특하여 먀오화와 허웨이둥에게 직접 보고했으며, 다른 군 기관의 파견이나 간섭은 전혀 없었다”면서 “이 부대를 창설한 목적은 단 하나, 시진핑 주석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시진핑 사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차이샤는 “이들이 시진핑 수호부대를 랑팡에 배치한 것은 베이징과 매우 가까워 중요한 순간에 신속하게 동원하고 언제든 시진핑을 긴밀히 보호하고 지원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랑팡은 수도 외곽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이런 곳에 허가받지 않은 군대의 주둔은 베이징의 안보에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안보 체계 내에서 수도 방위는 여러 계층의 병력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다. 전통적인 지휘 체계를 벗어난 어떠한 군사력의 존재도 최고위층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먀오화와 허웨이둥이 랑팡에 시진핑 친위대를 창설한 것은 바오딩의 장유샤가 이끄는 제82집단군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진핑의 안전을 보장하고 장유샤 제거를 위한 기회를 더욱 활용하기 위해 반격 및 반격 부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유샤는 이러한 계획을 간파하고 그들에 반격을 가했고, 장유샤는 그들을 반란 혐의로 고발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분노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차이샤의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나면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왜 허웨이둥과 먀오화를 체포했으며 중국공산당 4중전회 직전에 이들을 기습적으로 사법처리까지 했는지 이해가 간다. 또한 인민해방군 공식매체인 ‘해방군보’(人民解放軍報)가 허웨이둥, 먀오화 등의 장군들에 대해 ‘중대한 직무 관련 범죄 혐의’를 죄목으로 내세웠는지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해방군보는 또한 “허웨이둥과 먀오화가 총포 지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책임 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난했는데 이러한 내용 역시 이들이 시진핑 사병군단을 만들어 군 조직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렸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4중전회가 왜 시진핑 국가주석과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종료한 것인지도 알 수가 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장유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차이샤 교수의 증언이 뒷받침해 준다.
[흔들리는 시진핑,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실 국내외의 많은 언론들이 이번 중국공산당 4중전회를 통해 시진핑의 막강한 권력이 다시 확인됐다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지만, 차이샤 전 중앙당교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지금 시진핑의 권력은 군부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완전히 상실한 체 사실상 칼날 위에 서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단지 공산당이 붕괴되면 안 된다는 대전제 때문에 간신히 시진핑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어찌보면 이는 ‘시진핑의 안정적인 권력의 논리적 역설’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만약 국내외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시진핑이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허웨이둥과 먀오화를 통해 자신을 수호할 비밀부대를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시진핑이라는 최고 존엄을 수호하는데 있어 주요 지도자들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중앙안전국(中央警卫局)이 있고, 수도 방위를 책임지는 베이징 주둔군도 있다. 또한 중앙정찰국(中央特勤局)은 특수 작전을 담당한다. 이러한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시진핑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수호할 특별사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러한 보호막을 전혀 신뢰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7일 공식 발표된 9명의 군부내 숙청 대상 명단에 시진핑이 직접 임명했고, 자신을 수호할 비밀부대까지 만들었던 허웨이둥과 먀오화가 전격적으로 포함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도 4중전회에서 이들의 처결에 대해 어떤 이의 제기도 없이 처리되었다는 것 또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결국 이번 4중전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사실상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권한을 장유샤에게 넘겨준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시진핑이 끝까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권한을 고수하려 했다면 군부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국은 사실상 내전에 가까운 분열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일로 나타나는 결과는 당연히 중국공산당의 붕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4중전회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시진핑과 장유샤간의 어정쩡한 합의로 결론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시진핑과 군부의 갈등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시진핑은 사실 매일매일이 불안할 것이다.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줄 보호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유샤에게 목숨을 맡겨놓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편치 않는 나날을 시진핑은 보내게 될 것이다.
[시진핑은 뿌린 대로 거둔다!]
지난 7월 21일,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기관지인 인민해방군보(人民解放軍報)는 1면에 “중앙군사위원회가 ‘훌륭한 전통을 강력히 장려하고, 부패 세력을 전면적으로 근절하며, 정치 간부의 이미지와 위신을 재건하는 데 관한 규정’을 발표했다”는 기사를 게재했지만 그 ‘부패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러한 해방군보의 보도 태도는 시진핑 집권 초기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来) 등을 제거하면서 해방군보는 물론이고 전 관영매체들이 엄청난 홍보를 했었다. 그런데 허웨이둥과 먀오화를 숙청하면서도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조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시진핑의 수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분이 너무 확실해 숙청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시진핑이 빠졌지만 결국 군부의 압력을 견뎌낼 수 없어 고심하다가 끝내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이로써 지금 중국에는 시진핑을 지켜줄 군사가 존재하지 않게 됐다. 더더욱 이번 4중전회에서 자신은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장성민(张升民)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장성민을 정치국원으로 추대하지는 않았다. 이는 시진핑의 이러한 결정이 본인이 어쩔 수 없이 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중국은 지금 시진핑이 당과 정부의 권력을 쥐고 있지만 군사력은 장유샤가 쥐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절차가 합법적으로 흘러갈 것이지만 팽팽한 긴장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이 총을 지휘한다”는 대원칙도 무너졌다. 지금 현실은 “당이 총을 지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총이 당을 지배하지도 못한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이 군에 대한 실효적인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히지만 이러한 힘의 군형은 사실상 권력 체계의 불안정성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역학과 투쟁 논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한마디로 장유샤와 시진핑 간의 권력 투쟁이 전면적으로 표면화된다면, 중국 공산당의 기존 조직 절차와 제도적 권위는 완전히 무너져 당 안팎에서 엄청난 반발을 촉발할 것이다. 이는 시진핑과 장유샤 어느 쪽도 바라지 않는 바이지만 어쩔 수 없이 중국 공산당 체제의 임박한 붕괴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시진핑이 자초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2027년 당대회까지의 2년이 중국 공산당에게는 생존을 건 험난한 시간이 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