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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8 15: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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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탄핵한 나라가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 집중은 현대 국가의 정당을 통한 권력융합 현상 때문
-87년 헌법에서 가장 지켜야 할 가치는 5년 단임 대통령제


현재 우리 사회는 지난 2016년 후반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그에 따른 촛불집회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 따른 대통령 선거와 문재인 정권의 출현에 이르면서, 이른바 87년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현행 헌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성립된 것 같이 보인다.

 

그러한 개헌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가 갖는 가장 큰 모순의 하나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가 예외 없이 인구에 회자된다.

 

헌법상 권력구조는 다른 말로 정부형태라 하는 것으로, 정부형태는 ‘고전적 삼권분립원리의 구체적 실현 형태’로 정의되며, 민주국가에서 고전적 정부형태에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가 있다. 의원내각제는 근대적 의회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 즉 민주적 의지가 모두 의회로 집중되었다가 권력분립 원리를 실현하기 위하여 행정권이 의회로부터 독립된 구조를 갖는다. 반면, 대통령제는 의회주의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것으로 국민의 민주적 의지가 처음부터 행정부와 입법부로 양분되어 이원적으로 전달되는 구조를 갖는 것이 특색이다.

 

▲ 유신헌법 공포식 모습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는 전근대적 군주에 대한 불신으로 의회에 신뢰를 줄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의회에 대한 불신으로 새로운 형태의 군주제도라 할 수 있는 대통령에게 신뢰를 줄 것인가의 문제에 기초한다. 하지만, 집행권을 통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집행권에 대한 신뢰로 출발할 것인지의 시각에 기인하기도 한다.

 

그 결과, 의원내각제는 권력의 통제에는 좋은 제도이나 권력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는 반면, 대통령제는 권력의 효율성이라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우나 권력이 독재화할 염려가 있어 권력통제의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바로 그러한 데 대한 반성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고전적 의원내각제는 집행부 내에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행정부 하나를 별도로 두어 효율성을 보충하려는 변형된 형태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며, 이를 행정부 즉 정부가 둘인 형태라 하여 ‘이원정부제’라 한다.

 

이원정부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 바이마르헌법에서 처음 시도되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모순을 낳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이른바 드골헌법에서 다시 시도되어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참고로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인 드골헌법은 대통령을 간선제로 하였으나, 그 문제점이 제기되어 1962년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직선제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고전적 대통령제는 종래 미국에서만 채택되어 안착하였던 것이,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독립국들에서 그 권력의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많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독재권력을 헌법적으로 정당화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하였으며 대부분 실패하였고, 우리는 그런 형태를 일컬어 종래 ‘신대통령제’라고 불러왔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성공적으로 변형되어 정착한 국가는 많지 않으며, 특히 대통령제의 모순을 지양하기 위하여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란 정치적인 표현일 뿐, 그 본질은 대부분 이원정부제를 달리 부르거나 신대통령제를 좋게 부르기 위해 쓰이는 개념일 뿐이다.

 

한국헌정사에서는 1948년 건국헌법이 변형된 이원정부제를 채택한 것을 필두로, 1960년 헌법은 보다 순수한 형태의 의원내각제를, 그리고 1962년 헌법이 가장 고전적 형태에 접근된 대통령제를 채택한 바 있다. 1972년 헌법은 전형적인 신대통령제를, 그리고 1980년 헌법은 조금 완화된 신대통령제의 모습을 가졌다. 그리고 현행헌법인 1987년 헌법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고전적으로 접근된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여기서 1948년의 헌법을 ‘건국헌법’이라 칭하는 것은 헌법학의 일반적인 관행에 따른 것이지, 이른바 뉴라이트식 사관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행헌법상 정부형태는 현재 우리사회가 이구동음으로 성토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헌정사에서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었음에도 대통령은 법적,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현행헌법이 아니고 1972년 유신헌법 때였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 역시 당시 헌법상 대통령제에 대한 평가로부터 나온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현행헌법상 대통령제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결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할 수 없다.

 

첫째, 헌법상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은 헌법이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취한 결과이지, 헌법상 대통령의 지위가 제왕적인 것은 아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적으로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은 정당제도가 발달한 현대 국가의 공통된, 정당을 통한 권력융합 현상 때문이다. 따라서 그 책임을 헌법상 대통령제로부터 찾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셋째,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에서 대통령이 헌법기관 외 국가기관의 인사권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치 현실과 법률제도가 그 동안 그렇게 흘러온 결과이지, 헌법이 강제하기 때문이거나 헌법상 대통령제가 본질상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그 동안 헌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두 번이나 한 바 있으며, 그 중 한 번은 실제로 대통령을 탄핵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정치적 난제의 책임이 ‘제왕적’ 대통령제인 현행헌법상 대통령제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자체로 모순이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는 그 동안 많은 역대 대통령들을 민주주의나 정의의 이름으로 몰아내거나 감옥에 보내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모순을 대통령제의 ‘제왕성’으로부터 찾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현행헌법은 대통령을 단임제로 하여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갈 길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결국 헌법상 대통령제를 ‘제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폐지하는 것이 ‘87년 체제의 모순을 고치는 핵심 과제라고 강변하는 것은 87년 체제가 갖는 문제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그 본질을 의도적으로 숨기려 하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른바 87년 체제에서 가장 지켜내야 하는 것이 바로 현행 헌법상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 정부형태가 아닐지 의문이다.

 

우리의 ‘헌법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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