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사람들의 주머니와 가방 속에는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을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다닐 테지만 그 기준과 가짓수는 천차만별이다. 나는 항상 두 개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하나는 핸드백이고 다른 하나는 책가방이거나 노트북가방인데 핸드백도 크기가 넉넉한 편이다. 핸드백 속에는 스마트폰 외에도 수첩과 필기구, 명함지갑, 죽염이 꼭 들어있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 알려면 그 사람이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알아야 한다. 인생설계를 강의 할 때 ‘내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그룹 활동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소지품을 꺼내며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만이 독특하게 챙겨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있으며 거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스마트기기 일습을 백팩에 메고 다니고 승용차를 타면 바로 움직이는 사무실이 된다고 하며 기동력 있는 신세대 비즈니스맨이 있는가 하면, 반짇고리를 꼭 넣고 다닌다는 우람한 체격의 청년은 집에서 뜨개질도 잘 한다고 하여 섬세한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다.
중증 장애가 있는 아들을 홀로 20년간 키워온 어머니의 가방에서는 종이로 겹겹이 싼 아들의 첫돌 금반지와 팔찌가 들어있었고 그 물건의 의미는 아들에 대한 자신의 기도와 소원이라고 했다. 아들의 건강이 나아지고 형편이 좋아지면 아들과 함께 전국여행을 가기 위한 밑천이 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간단하게 줄여서 산다는 노신사는 지갑조차 없이 현찰을 클립에 끼워서 가지고 다니고 가지런히 접힌 손수건을 휴대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최소화하여 필요한 사람과 나누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즘엔 눈에 보이는 소지품 뿐 아니고 컴퓨터 속의 파일을 정리하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 되었고, 방대한 분량의 정보도 한 장의 마인드맵으로 정리를 한다. 넘치는 정보와 복잡해진 환경 속에서는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니고 다닌다. 그 물건 속에는 말하지 않는 욕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내 스마트폰에는 단기간에 많은 사진이 쌓인다. 마음에 드는 사진은 자주 보고 싶어서 저장해두곤 하지만 사진이 저장 용량을 차지하면 자연히 스마트폰의 속도가 느려지므로 필요한 사진을 블로그와 드라이브에 옮겨놓고 자주 비워 버린다. 버리고 나면 기분이 가벼워지고 개운하지만 삭제를 누를 때는 아까운 마음에 잠시 갈등과 긴장이 일어난다.
가장 적은 양의 짐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보낸 기록은 작은 가방 두 개를 가지고 3주 동안 섬에 가서 지낸 일이다. 유사시에 대비한다고 이것저것 넣어가지고 다니는 편이지만 오직 단순한 생활만 허용되는 낙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았다. 게다가 너울파도에 휩쓸려서 중요한 것들을 잃고 난 후에는 아무리 없어도 궁하면 통한다는 경험을 했다.
넘어져서 골절상을 입은 발에는 나무 조각과 종이상자를 댔고, 태풍으로 2주 간 배가 들어오지 않아 식량이 떨어졌을 때는 민들레 잎을 된장에 찍어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목록에서 빼지 않은 것은 역시 노트북과 수첩, 필기구, 카메라 등속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이 일과 새로운 지식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소유를 잃어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그 사람의 가치를 나타낸다.
문득 연세 많은 어머니는 가방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비록 지갑을 종종 잃어버리기는 하시지만 옷에 따라 가방도 수시로 바꾸는 패션감각이 있다. 어머니는 당신의 이름에 자루 표(杓)자가 들어가 있어서 가방을 좋아한다고 웃으며 말씀하지만 남달리 다양한 호기심의 소유자라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어머니와 성향이 닮아서일까 나도 가방이 많은 편이다.
정리수납전문가는 필요 없는 것을 골라내기 힘들거든 꼭 필요한 것을 먼저 챙겨보라고 말한다. 나날이 늘어나는 짐을 가지고 살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짐에서 벗어나 가방 두 개를 들고 떠나 단순하고 여유 있게 시간과 공간을 평화롭게 누리는 것이다. 이 세상 떠날 때까지 가방 속과 마음에 남아있는, 오롯이 남아있는 나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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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hytimes.kr/news/view.php?idx=19465-수필가(한국문인협회, 한국 수필가협회, 한국기독여성문인회 회원)
-생애설계코치연구소 소장,
-한국사회적코칭협회 회장,
-서울시 50+컨설턴트,
-생애설계 라이프코칭,
-경기도 문학상 본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신을 신고 벗을 때마다> <마음의 다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