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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06 10:43:17
  • 수정 2018-12-29 11: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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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전 서울경제신문사장이 대북특사가 서울을 떠난 5일, 소회를 담은 글을 보내 왔다. 이 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대북특사가 출발하는 날이군요.
김정은이 특사단과 만나 무슨 얘기를 할까요.
그는 핵 포기는 남한과는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죠.
^그것은 미국과 할 얘기라는 거죠.
이번엔 여건이 되면 포기할 수도 있다고 정도는 말 할지도 모르겠네요.
미국과의 대화가 절실해진 상황이니까요.
그가 말하는 여건은 다름 아닌 핵 포기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이겠죠.
그 보상을 미국이 해줄까요?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고 봐야겠죠.
특히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손해날 일 안 할 사람이죠.
김정은은 재미는 미국하고 볼테니 한국은 돈만 내라는 속셈이겠죠.
이것을 모른 체 하고 들어주느냐, '잘 되나 해봐'라고 손을 터느냐가
특사단의 행로일 것 같네요.

▲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리측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을 접견한 모습을 6일 보도했다. 북측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배석했다. (출처=노동신문) 【뉴시스】



남북 서울정상회담을 기대하며


지난 달 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북한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남한에 온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위원장에 대해 남측의 언론들은
‘백두혈통 최초의 방남(訪南)’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백두혈통의 시조 격인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남한을 방문한 기록은 없다.
한국전쟁 때 서울이 적치(赤治) 하에 들어갔을 동안 비밀리에 서울에
왔었다는 풍설만 있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희망하는 김정은의 구두 메시지와 친서를 전달했다.
청와대는 여건이 성사되면 가기로 해, 연내에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가능성을 열어 놨다. 그렇게 되면 남북정상회담은 세 번 모두 평양에서만 열리게 된다.


왜 남북정상회담은 평양에서 열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김일성의 집권기간 49년은 대부분 냉전시대이었으므로 상호방문은 엄두도 못 냈다.
6·25 전범인 그를 남한에서 받아들일 분위기도 아니었다.


남한에 오겠다고 약속이나마 했던 것은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집권시대에서였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그는 김 대통령으로부터
서울 답방 초청을 받고, 적절한 시기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해 8월15일쯤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임기 내내 그는 오지 않았다.


그는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초청을 받았다. 그는 남한의 정세불안을 이유로 답방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1차 답방 약속을 못 지킨 것에 대한 변명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2차 정상회담 사전협상과정에서 우리 측은 김정일의 답방약속을 들어 회담장소를
서울로 하자고 압박했다. 북측은 그렇다면 정상회담은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회담 성사에 목을 맨 우리 측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런 과정을 ‘대통령을 잘 모시기 위해 회담장소를 평양으로 했다’고 둘러댔다.


북한의 김 씨 왕조 3대가 한국에 올 수 없는 이유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첫째는 정권의 불안정성이다. 가장 강력한 독재체제는 사실상 가장 취약한 체제일 수 있다.
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선 독재자들이 해외순방 중에 쿠데타가 일어나
실각하는 일이 잦았다. 생전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해외여행을 꺼렸던 이유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들의 해외여행이 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뿐이었던 것도 여행 중 실각하더라도
권좌를 찾아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권기간이나 나이로 비추어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부조(父祖)보다 훨씬 취약하다.


둘째는 적지에서의 신변위험에 대한 염려다.

철저한 경호가 필수적인 정부 초청방문에
신변 위험은 기우에 지나지 않지만 서울은 선진국 첩보기관원들이 암약 중인 곳임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김정은의 시대에 와서 그를 제거하기 위한 이른바
‘참수작전’이라는 작전명까지 등장했다.


셋째는 방남이 북한 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다.

북한 실권자의 서울 방문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정보의 러시현상을 가져올 것이고, 그로 인해 남한 체제에 대한
선망이 확산되고, 경각심이 해이해져 결국 김 씨 왕조에 대한 불만으로 번질 수도 있다.


넷째는 거짓말을 확인하는 두려움이다.

북한의 김씨 3대는 남한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거짓 선전으로 주민들의 눈과 귀를 속였다.
주민을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하는 것은 그들이건만 그것을 남한에 뒤집어씌웠다.
남한에 와서 풍요와 자유와 평화를 확인하는 것은 김 씨 3대에겐 고통이자 두려움이다.


다섯째는 범인이 범행현장을 찾는 두려움이다.

6·25의 전범인 김일성은 갔지만
그의 권력을 후계함으로써 일정부분 전범의 부채도 세습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김정일은 자신이 실권자 또는 집권자였을 동안 김일성 못지않은 대남 테러를
저질렀다. 김정은 역시 집권 6년 동안 김정일 집권 17년보다 더 무모하게
핵무기로 남한과 세계를 협박했다.


그들이 전쟁과 테러와 핵무기로 파괴하고 협박했던 남한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것과 달리 북한이 세계 최빈국에 머물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또한 두렵고 괴로운 일이다.


여섯째는 우상파괴에 대한 두려움이다.

김 씨 왕조는 우상화로 유지되는 체제다.
그들의 남한 방문은 우상파괴의 생생한 현장이 될 것이다. 평창올림픽 때도 등장했던
인공기 불태우기나 김정은 사진 밟기, 김일성 사진 찢기, 통과저지를 위한 도로점거 등을
능가하는 대규모 시위와 퍼포먼스에 직면할 것이다.


수십만 명의 동원된 군중들로부터 추앙만 받아온 그들에게 이런 대접은 상상할 수
없는 모욕이다. 이 장면이 북한 주민에게 보여 지지는 않겠지만 소문으로 전해질 것이고,
남한에는 물론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김 씨 왕조에게 남한 방문은 체제유지에 큰 위험요소다.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만 열리는 이유라고 하겠다. 김여정으로부터
김정은의 방북 초청을 받고 문대통령이 한 말이 다 밝혀지진 않았으나
‘서울에서 보면 더 좋겠다고 전해 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김정은이 서울에 올 수 있을 때 남북 간 진정한 화해와 교류가 이뤄진다.


임종건
<언론인, 서울경제신문 사장, 동 논설실장, 한국일보 국제부장 </span>역임

中央언론문화상 신문잡지부문(2006년) 수상, 서천 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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