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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23 19: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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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아줌마의 초라하고 슬픈 모습을 보면서 고귀한 신분이 비참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는 느낌
–청년들이 경비나 안내를 하는 모습을 봤을 때, 찬란한 젊음이 그런 일에 소모되는 것이 정말 슬퍼
-비극이 조카뻘 아줌마에서 시작, 자식뻘로 이어져. 손자뻘들까지 586의 노예가 되지 않을지 걱정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세대가 교체됐다고 느낀 건, 어느날 전철에서 어떤 아줌마를 봤을 때였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그런 여성인데, 아줌마였다.


내 선입견으로는 아줌마들은 체형부터가 뭔가 좀 망가져 있어야 했다. 머리는 지글지글 볶아야 했고, 목소리나 표정이 굵고 뻔뻔해야 했다. 전반적으로 좀 무식한 태가 흘러야 했다. 돈 냄새와는 무관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날 내가 전철에서 본 아줌마는 키도 크고 날씬했다. 뻔뻔한 태도도 아니었다. 목소리는 들어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굵고 무식한 목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줌마의 입성이 참 초라했다. 그리고 표정이 슬펐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 우리나라 아줌마들도 이제 신세대로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나 누나 세대가 아닌, 조카뻘 세대가 아줌마의 주력부대로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나 누나 세대들은 아줌마가 되어도 그냥 자연스러웠다. 체구부터가 작고 왜소하고 표정이 슬픈 경우가 더 일반적이었다. 물론 필요에 따라 뻔뻔한 표정도 기본이고. 그래서 그런지 입성이 초라하고 표정이 슬퍼보여도 그러려니 했다. 자연스러웠고,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세대 아줌마의 초라하고 슬픈 모습을 보면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슬펐다. 뭔가 고귀한 신분이 비참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런 느낌이 몇년 전부터는 청년층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 같다.
제일 안쓰럽고 미안한 것은 은행이나 화려한 건물 등에 들어갔을 때 젊은 청년들이 경비나 안내를 하는 모습을 봤을 때다. 그 자리는 죄송하지만 나처럼 늙어서 기운도 빠지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세대가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찬란한 젊음이 그런 일에 소모되는 것이 정말 슬펐다. 마치 고귀한 왕자가 머슴이나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것을 보는 느낌? 경비나 안내라는 일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희생해가며 할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편의점이나 음식점 서빙이야 그냥 알바로 생각하고 내 자신에게 변명하고 합리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비나 안내는 그런 변명이 불가능하다.


가끔 고속도로 등에서 무슨 청년창업이니 뭐니 하는 간판을 걸고 청년들이 일하는 푸드트럭 같은 것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 청년들은 그 사업에서 원대한 가능성을 보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청년들이야 그렇게 생각해도 죄가 없지만 기성세대가 그들의 그런 모습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거의 집단 범죄나 음모에 가깝다.


▲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월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졸업 시즌을 맞아 미취업 청년들이 취업기회를 다시 가질 수 있도록 `미취업 청년 대상 2월 일자리 박람회`를 개최하고, 개막식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8.02.22. 【사진=뉴시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일자리 그리고 미래를 열어가는 영역에서 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청년들이 그 일에서 경험을 쌓고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누가 맡을 것인가? 짱깨들에게 그 일자리를 넘겨줄 셈인가?


우리나라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국제금융위기에서 청년층의 일자리를 학살한 바 있다. 그 세대 3~4년의 공백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고, 이후 청년세대들에게는 비정규직이나 인턴, 계약직 같은 일자리가 기본이 됐다.


이런데도 586들은 정년을 연장하고 있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 기득권의 성을 더 높이 쌓고, 사회적 이동성과 유연성을 말살한다. 그들은 스스로 의식하건 안하건 청년층과 이 나라 국민 전체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에 죄를 짓고 있다. 그들이 영화 <1987>을 보는 것은 자신들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잊고싶기 때문 아닌가.


80년대 민주화투쟁을 기린다면 그때 희생당한 분들에게 죄송한 심정을 갖고 멀쩡히 살아남은 자로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는 못할망정 그 분들의 희생을 자신들의 알리바이로 삼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현재 진행중인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것 아닌가.


비극이 내 조카뻘들 아줌마에서 시작되어 이제 자식뻘들로 이어져가고 있다. 이러다 손자뻘들까지 586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내가 그 꼴 볼 때까지 질긴 목숨 붙어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걱정은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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