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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04 18: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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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말이 유행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단순히 정치 경제 상황이 엉망이어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며 탄식을 하던 게 아니었다. 옆 동네에 불이 나도, 길을 가다 넘어져도, 일진이 안 풀려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며 대통령을 욕했다.


그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기간 동안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는 말이다. 나라는 어지러웠고,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갈릴 수 있지만, 수치와 통계로 평가한 정치인 노무현은 불합격 점수였다.

 

정치인이 당신을 추궁한다고 막말을 하거나, 언론이 비판적으로 나온다고 기자실을 폐쇄하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동적인 언행은 한 국가의 지도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다. 그의 정책은 ‘선한 의도’로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었고,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계산해 신중히 접근해야 할 정치 문제에, 순진한 감성으로 접근해 치명적인 갈등을 만들어내곤 했다.

 

역대 최저라는 말까지 나오던 임기말 지지율.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당신도 ‘대통령으로서의 실패’를 잘 알아 조용히 정치생애를 마무리하고자 청와대 참모진에게 참여정부의 최대 업적인 한미 FTA의 마무리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강요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고 나서 그나마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청렴성’의 가치 마저 잃었다. 부인과 아들이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뇌물을 수수한 정황들이 나왔다. 결국 뇌물 수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다. 그리고 수사 도중 그는 자살을 택한다.

 

인간 노무현의 죽음은 비극적인 일일지언정, 대통령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지도자 노무현의 죽음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살한, 국가적 치욕이었다.

 

인간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리는 것과, 정치인 노무현을 직시하고 평가하는 행위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결코 영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서글픈 자살이 평생을 투쟁해온 그에게 부디 안식을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은, 그의 죽음을 미화하고, 그를 우상화하고 신격화 하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 된다. 비극은 비극이고, 평가는 평가다. 슬픔은 슬픔이고, 비판은 비판이다.

 

언젠가부터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성역에 들어갔다. 동네 아이들까지 그를 욕하고 비판하던 분위기가, 그의 비극적 죽음을 기점으로 불과 몇 개월만에 뒤바뀌었다.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차원이었을까, 모두가 말을 아끼고 조용히 애도의 물결이 번져가게 했다. 노무현 일가의 뇌물 수수에 대한 수사도 전면 중단되었다. 전직 대통령의 수사 도중 자살이라는 충격적 사건에, 모두가 ‘이만하면 됐다’는 심정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던 건, 세월에는 묘한 마력이 있어 종종 진실을 뒤틀어버린다는 것이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살을 한 대통령이 영웅이 되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유행어는 자취를 감추고, ‘노무현 정신’이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그 자리를 꿰찼다.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화되나 싶더니, 언젠가부터 그에 대한 비판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 앞뒤 막론하고 이른바 ‘일베충’이라고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이제는 한 정치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막으려든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 이야기다. 정진석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말했다고 논란이 일고 있다.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 받다 자살을 했다”고 말했는데,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과민반응하더니, 언론에서는 ‘막말 논란’을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촌극이다. 담담히 사실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 그것이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은 분위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왜곡하고, 신격화하는 몇몇 광신도들에 의해 정진석 의원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는 대다수의 시민들마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공연하게 하기 불편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는 이렇게 승자에 의해 다시 쓰이고, 왜곡된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박사모’, ‘극우’ 등 온갖 딱지를 붙여 매도하고 비판하는 게 지금 사회 분위기다. 대통령의 잘못에 아주 엄격하다. 그런데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치부에 대해 이야기하면 ‘고인모독’이라며 힐난하고, 입막음을 하려 든다. 그렇게 욕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언젠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합리적 사고를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가 싹튼다. 진실을 추구하고, 거짓을 배척하며,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구분하며, 다양한 목소리가 이런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토론할 때, 그 때 민주주의의 동력이 나온다. 그래서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성역화 된 정치 사건, 종교화 된 정치 세력은 위험하다.

 

이제, 이 나라가 정치적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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