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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2 10:39:12
  • 수정 2018-02-02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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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죽이는 철학, 가치, 제도, 정책을 견지하면서 진보 천년왕국을 건설한다고?
-근로윤리 없는 조선… 6급만 되어도 스스로 일하지 않고 아랫사람 부리는 공직사회
-10년 후 중국의 일취월장에 한국 산업 대란, 저출산 대란, 지대추구 대란 겹쳐진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준석과 선원들의 행위에 ‘부작위(미필적 고의) 살인’ 혐의를 적용하냐 마냐가 큰 논란거리였다. 개인적으로 뇌리에 깊숙히 꽂힌 ‘미필적 고의’는 두 번 더 있다.


한번은 정대영의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국회에서 여주대학교 세종리더십연구소가 주최한 ‘국가경영리더십 컨퍼런스 : 존망의 위기, 선조와 인조는 무엇을 놓쳤나’ 행사에서 유불란 교수가 발표한 ‘부작위범(不作爲犯)들의 정치학 – 국난기의 선조와 그의 신하들’이라는 논문이다.



▲ 저출산, 저성장, 저신뢰, 중국의 웅비와 4차산업혁명 등 무시무시한 적들이 오고있다.



‘미필적 고의=부작위 범죄’는 가치의 우선순위 전도의 산물이다. 이준석과 선원들은 선실에 대기하던 학생들이 우루루 나오면 자신들이 후순위 구조 대상이 될까 두려워 한 것으로 보인다. 정대영이 얘기한 ‘미필적 고의’도,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을 통한 단기적 경기 부양이 중장기적 경제 체질 개선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개혁은 커녕 공공부문 일자리(현대판 양반)를 폭증시키는 문재인 정부의 행동도 이준석의 행동만큼이나 행위와 결과의 인과고리가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이득을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국민과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떠 넘기는 것이다.


유불란 교수가 소개한 선조시대 조정에서 일어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짓거리를 보면서(유 교수는 이를 부작위 국란 초래범이라고 하였다) 언제부터 어쩌다가 저렇게 가치가 전도되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진족과 대치하고 있는 함경도 방면 방어사령관에 대한 탄핵, 교체-재탄핵, 또 탄핵-교체 소동이 대표적이다. 선조 6년(1573)의 한 해, 단 한 달여 동안 일어난 일이다.


7월 24일, 북병사 장필무에 대한 파직 요청. 8월 2일, 북병사로 이전 임명. 8월 4일, 북병사 이전을 갈아야 한다고 탄핵. 8월 16일, 북병사 곽순수를 갈아야 한다고 탄핵. 8월 24일, 북병사 유경선을 갈아야 한다고 탄핵. 8월 26일, 북병사로 최응룡을 임명.


탄핵사유도 웃기기 짝이 없다. 이는 조선 조정을 관통하는 가치체계가 동시대 다른 나라 정부와 확연히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능과 명망이 별로 없으므로 위무하고 통제할 계책은 이 사람이 감당할 바가 아니니 갈아 차출토록 명하소서.”


“위엄과 명성이 없고 장수로서의 재주도 모자라니 체차[하라.]”


“재주와 국량이 얕으니 갈으소서.”


임진왜란 4~5년 전에도, 여진족과 전투가 많은 함경도 지역 한 부대 내의 군기문란 행위자에 대한 선참수 후보고 사건(선조 21년 10/15)을 빌미로 최고 사령관인 신립 장군에 대한 파직 요구도 가치 전도 현실을 말해 준다.


이 결과가 한 명나라 사람의 조선에 대한 조롱시를 낳았다.


시부(詩賦)는 진(晉)나라 사람의 유풍이나

병서에 대해선 온 나라가 어둡네. 높다란 관이 무인 고깔이요

넓다른 소매 옷이 군복이로다. 무딘 창은 섶나무처럼 썩어가고

쌓아올린 성 높이는 어깨와 가지런하네. 왜구 이르렀다는 소문에

팔도가 조각구름처럼 흩어지누나.


(선조 26년 02/20)


선조 시대 얘기 하려고 이 글 쓴 것 아니다. 문제는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선조 시대처럼, 박근혜/문재인 시대도 다가오는 진짜 위기에 너무 태평하고, 가치전도 현상은 너무 심해서다. 세대별 투표 성향을 보고, 진보의 30년 천하를 꿈꾼다. 5년, 10년이 가면, 보수 세대는 늙고 병들어서 땅에 묻힐 테고, 20~40대 진보 세대는 그대로 중장년이 될거라나.


아무튼 진보 천년 왕국의 꿈을 갖는 것은 야무진 일이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원천인, 일자리가 안생기거나 없어지게 하는 철학, 가치, 제도, 정책을 견지하면서 어떻게 이리 야무진 꿈을 꾸시는지! 그 무모함과 몰염치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조중동 등의 운동권 비판 보도를 보면) 운동권은 입만 열면 한국 경제(종속성, 불균형 등)를 얘기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 그랬다. 물론 운동권의 문제의식은 참으로 조야했고 사실상 파탄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된 셈인지 경제와 고용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 소득주도 성장? 공공부문? 최저임금? 비정규직 규제? 입 아프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분명한 것은 혁신의 기본은 유인보상(인센티브) 체계와 지배운영(거버넌스) 구조 개혁이라는 점이다. 하는 일과 받는 처우의 균형, 권한과 책임, 권리와 의무, 혜택과 부담, 위험과 이익의 균형이다. 보다 효율적인 곳에 돈을 붓고, 비효율적인 곳에서는 돈을 뺏는 것이다. 이것이 현저하게 무너져 있는데(이런 부조리의 전형이 공공부문과 정치 분야다), 이를 고치지 않고 어떻게 혁신이 되나? 이 균형이 무너지면 사회적 약탈과 부담 전가 현상이 만연한다. 도적질이 횡행한다는 얘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시장·산업·사회 생태계와 정신·문화가 급속도로 황폐화되고 있다. 세대 재생산 위기(저출산 고령화)는 그 파생물이다. 이런 망국적 현상의 뿌리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생산에 힘써서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생산한 가치를 권력이나 갑질 등으로 빼앗으려 하는 정신과 문화가 있다. 이런 가치체계에서는 민간기업과 청년미래 세대에게 모든 부담이 전가되기에, 결혼과 출산은 회피, 기피되기 마련이다.


능력있는 고교생이 이공계 대학 진학을 꺼리고, 그나마 규제산업이자 내수산업인 의약계로 쏠리고, 능력있는 청년은 민간기업 취업을 꺼리고, 자본•기술•인적 네트웍•열정이 있는 사람이 창업을 꺼리고, 능력있는 기업이 국내 투자와 고용을 꺼리고, 능력있는 중소기업은 힘써 노력해도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지배적인 정신과 문화가 치명적으로 결여한 가치가 근로윤리이다. 근로윤리는 직업윤리, 상도의, 공직윤리의 바탕이다.


근로윤리가 별 건가? 놀고 먹는 것을 극혐하는 것이다. 업무 시간에 딴 짓 하지 않는 것이다. 돈 값, 자리 값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고임금자라면 그에 상응하는 고부가가치 일을 해야 하고, 고직급자라면 그에 상응하는 준엄한 책임이 따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는 일과 받는 처우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노조운동은 근로윤리를 무슨 자본의 이윤창출 논리 내지 노동 지배전략의 한 형태로 보고, 외면하거나 거부하였다. 노조가 강한 대기업 생산현장의 근로윤리는 일찍부터 엉망이 되었다. 아마도 OECD 최악일 것이다. 공식 지표는 없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대기업 생산현장 뿐만 아니라, 사무관리직과 공공부문 전반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철학에는 도덕관념은 있어도 진리관념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은 아무래도 근로윤리 관념이 없는 듯하다. 이게 없으면 근로윤리라는 기초 위에 서 있는, 직업윤리, 공직윤리, 상도의 등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다. 몰라서 묻는다. 조선 성리학에 근로윤리가 있나? 양반은 원래 아래 사람들 부리는 게 본업 아니었나?


1760년(영조 26년) 이종성의 상소를 보면 양반은 굶어죽더라도 농•공•상의 직업에 종사할 수 없으며, 그래서 양반이 상민보다 더 가난하기에 군역 대신 (군포를 내는)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인구의 절반 가량되는) 조선의 양반은 한번 공장이나 상인이 되면 당장에 상놈이 되니 공장이나 상인이 될 수없고 살아갈 길은 단지 농사 밖에 없는데, 만일 몸소 농사를 지으면….閑丁(한정)이나 勸農(권농)의 職牒(직첩=임명장, 신분증)이 바로 나오니 이 짓은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공, 상, 농업은 모두 할 수 없어 겉으로는 관복을 입고 혼상에는 양반의 체모를 잃지 않으려 하니, 어떻게 (양반이) 가장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병석,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p372)


근로윤리의 실종은 단지 1987년 이후 강성한 노조운동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얘기다. 조선에서 내려오는 폐습의 하나이다. 그런데 혜택에 따르는 부담을 이행하고, 자유와 권리에 따라는 책임과 의무(헌법 전문)를 다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이 된다(우리 헌법 전문에는 온갖 좋은 국가의 의무가 씌어져 있는데, 국민에게 요구하는 부담은 책임과 의무 뿐이다).


근로윤리가 확장되면 중차대한 권한/자리를 맡을 능력/소명/책임을 치열하게 캐묻게 되고, 이것이 현저히 부족하다면, 그 자리를 고사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은 높은 자리는 책임은 덜 지고(책임은 일선 실무자가 지고), 일은 널널하고, 급여는 많고, 명예는 독차지하는 귀족같은 자리로 인식된다. 가장 밑의 사람이 가장 바쁘고, 또 유능하고, 위로 올라가면 점점 무능해진다. 그래서 무조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공직사회는 6급만 되어도 스스로 일하지 않고 아래 사람 부리는 것을 정상으로 생각한다. 고액 연봉이 부지기수인 KBS 등 공기업은 놀고 먹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없다. 협력업체에 1억 원 주고 시키면 될 일을, KBS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면 아마 10억 원은 들 것이다. 그래도 망하지 않는 것은 공기업이라 독점이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근로윤리가 시퍼렇게 서 있는 사회라면, 기회를 준다고 덥석 국회의원을 하려 하지 않는다. 장관 자리도 대통령(후보) 자리도 준다고 덥석 받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지난 11년 동안 여의도와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공직자(대통령 후보 포함) 치고 , 자신이 그 준엄한 자리를 맡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능력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캐묻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쉬임없이 비판하는 이유다. 사실 자신이 받아안은 과제와 자신의 준비, 자격, 소명, 능력을 견주어 보는 양심=근로윤리가 있다면, 링컨처럼 수시로 우울증이 엄습하게 되어 있다.


한국은 권한(자리)과 연봉에 상응하는 자질/능력을 묻는 문화가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기에, 연봉 1억원 이상을 받고 탱자탱자 놀고, 일은 부하들과 외주 용역회사에 다 시키면서도 손톱만한 양심의 가책을 못느끼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는 노조로 하여금 단결투쟁을 통해 지대추구를 당연시 하게 만든다.


이렇듯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너무나 기본적인 것을 결여하고 있다. 인간의 반사회적인 충동을 제어하고, 윤리적 사고와 행동을 유도하는 기제는 내면 세계를 규율하는 종교와 가족이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소비자, 협력업체, 경쟁자, 내부 직원 등)간의 선택권/거부권의 균형(상호 견제)이 있고, 최후의 보루가 법이다. 상벌이 공평하고 엄정한!


유럽은 수백년 간 인간의 내면 세계(정신)을 규율하던 종교(루터교, 청교도 등)가 있었고, 이해관계자 간의 대항력의 균형을 형성한 시장도 있었고, 시민혁명도 있었고, (시민의 지위가 한참 위로 올라가는) 국가간 전쟁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거의 없었다. 사실 수기치인-극기복례, 효 같은 유교 이념은 있었는데, 이것이 현대화되지 못하고 그냥 녹아 내렸다.


그 결과 우리의 정신과 문화는 너무나 휑뎅그레하다. 근로윤리, 직업윤리, 상도의가 다 부실한 것이다.


제도경제학에 따르면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1~10년을 묶어서, 헌법질서나 정치체제와 같은 공식적인 제도적 환경은 10~100년을 묶어서, 그리고 관습이나 가치관과 같은 비공식적인 제도적 환경은 100~1000년을 한데 묶어서 들여다 볼 문제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토크빌의 말이 엄청 무섭게 다가온다.


“한 나라의 지리적 위치가 민주정치의 지속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유럽에서 너무 과장되고 있다. 법률에는 너무 중요성이 부여되는 반면에 관습에는 너무 중요성이 부여되지 않고 있다…. 자연환경(지리 등)의 영향은 법률에 훨씬 못미치고, 법률의 영향은 국민들 관습에 훨씬 못미친다.”(토크빌 404쪽)


조선의 흥망으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면, 가장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관습과 가치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근로윤리와 직업윤리 등 관습이 조선만큼 후진데, 이게 문제라는 생각조차 없으니 어찌 걱정을 하지 않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선악(민주-독재) 구도에 입각하여, 상대는 악(적폐)이고 자신은 선(정의)이라는 1980년대적 진영논리로 무장하여 신나게 이명박근혜를 두들겨패고 있다. 그런데 뒤에서,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일본 침략군 같은 어마무시한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 저출산, 저성장, 일자리 3불, 저신뢰, 중국의 웅비와 4차산업혁명 등이 그것이다.


아마도 100~200년 뒤 후손들이 보면, 선조 시대 여진족과 싸우던 함경도 방어군 장수와 지금 중국, 일본 기업들과 생사를 건 전쟁을 하는 기업들이 겹쳐질 것이다. 선참수 후보고를 한 장수(신립 장군 등)를 탄핵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다가 금 밟은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과 겹쳐질 것이다.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 때 백남기 농민 사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물대포를 쏜 경관 2명을 살인죄로 처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불 끄다가 화단에 심은 꽃을 밟은 소방관을 처벌하는 식이다.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일수록 금을 밟을 가능성이 높기에, 과거 선조시대처럼 사상/발언 감찰(탄핵)이 무서워, 대부분의 관료들이 입을 다물던 역사가 재연될 것이다. 조선시대 사상, 윤리(공직기강) 감찰 역할을 떠받은 3사와 오늘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패스한 엘리트들이 가는 법원, 검찰, 감사원의 행태(한건주의 등)도 겹쳐 보일 것이다.


조선시대 정치권력을 독점하던 문과 급제자들은 정치 독과점 구조에서 선출된—엄밀히 따지면 공천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임명된—의원들이 정치를 독점하는 행태와 겹쳐질 것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은 아마 2020년대 중국 경제, 산업, 기업, 기술의 일취월장에 따른 한국 산업, 기업의 대란 또는 저출산 대란, 지대추구 대란과 겹쳐질 것이다. 정치권은 과거나 지금이나 진짜 위기를 모르고, 엉뚱한 가치를 쫓아서 부작위 국란을 일으키는 주범일 것이고.


역사에서 배울 줄 모르는데, 어찌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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