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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4 17: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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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 미국의 IT산업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오랜만에 큰 호황. 클린턴 발 IT호황이 그것

-미국, 기존의 저금리 기조 바꿔서 고금리 강달러 정책으로 급선회. 미연준 기습적인 금리인상 단행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 설립 막은 미국, 바트화 위기 방조. 한국은 “우리 펀드먼탈은 튼튼” 착각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10년여의 행복한 삶에도 점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는데요.

 

1990년대 초중반 미국의 IT산업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오랜만에 큰 호황을 맞게 됩니다. 바로 바람둥이 아니 사랑꾼 클린턴 발 IT호황이라고 하죠. 미국 경제가 호황을 받게되죠. 미국의 연준의장 그린스펀은 기존의 저금리 기조를 바꿔서 고금리 강달러 정책으로 급(?) 선회해 버리는데요. 바로 94년 미연준의 기습적인 금리인상이죠.

 

미국에서 갑자기 금리를 올려버리고 강달러로 돌아서자 가장 처음 망해버린 것은 멕시코인데요.

애시당초 미국은 나프타협정을 통해 미국의 비싼 노동력을 피해 멕시코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었는데요.

금리 인상으로 자금을 회수하자 멕시코는 배째라를 시전 IMF행을 해버린 거죠.

 

그리고 95년에는 로버트 루빈이란 사람이 미국 재무부 장관에 오르는데요. 그 유명한 정경유착 관치금융의 대명사 GS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으로 유명하죠. 루빈은 뼛속까지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로, 사업은 전쟁이고 금융은 정치라는 말을 좋아(?)해 미국 금융계의 정치력을 이용해서 어디서 돈을 빼먹을까 고민하던 인물이었죠.

 

외모는 마르고 연약해 보이지만 실제론 마른 장작이 잘탄다(헉! 아닙니닷 ㅋㅋ)는 말처럼 금융의 마초이즘이라고 할 정도로 강경한 정책을 쓰면서 경제위기를 이용해먹는 교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일본은 큰 위기에 처하는데요.

 

일본: 미국 형님 형님 지진으로 다 뿌셔져 버리고 금리인상으로 자산가격마쳐 다 빠져 거지꼴입니다. 제발 엔고를 포기하고 엔저로 갈수 있게 해주십시오 굽신굽신TT

사랑꾼 클런턴: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생 요즘 나도 먹고 살만하니 동생 원하는대로 하고 몸조리 잘하소.

 

그렇게 1995년 역플라자합의로 일본의 10년간의 엔고는 끝나게 되는데

1993년 한국은 문제적 남자(?) 032 YS가 대통령이 되는데요.

이전 1991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한국 경제는 사실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황이였으나, 90년 초반에도 여전히 미•일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고, 국내성장율은 8%대를 오르내리고 있었죠. 사실 1991년 버블 이후에도 일본 엔이나 달라 금리는 7~8%인 반면 한국에서의 금리는 12~13%대라 해외에서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방식으로 계속 기업들이 커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외화 들고 홍콩 가서 김치 프리미엄을 통해 차액을 먹을려고 하다, 한강 가즈아로 강제 전환당한 코린이들처럼, 점점더 차입에 의존해서 기업을 키우고 있었죠.

90년대 초반의 시대에는 기업 차입기준이 매출액이었는데요. 똥양인들의 크기(?) 컴플렉스 때문인지 몰라도 은행이 기업에게 돈을 빌려줄 때도 그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이 아닌 매출에 따라 대출한도가 정해지곤 했죠. 그래서 기업은 손실이 나고 안나고를 떠나서 일단 빚을 내서 기업을 차리고 이를 다시 담보잡히고 다시 빚을 내서 기업을 차리는 과잉 투자의 시기로 갑니다.

 

빚으로 일어선 자 빚으로 망한다고 10년간의 달러 엔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암울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데요. 일본이 엔고의 족쇄를 벗어버리자 1996년 역대 최악의 경상수지 적자인 240억 달러 적자를 맞는데요. 이는 당시 GDP의 4.5%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죠.

 

그리고 1993~1995년까지가 1차 D램 최대 호황기였는데요. 그래서 반도체 호황으로 경제가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들었죠(왠지 데자뷰가 ㅎㄷㄷㄷ)

근데 1996년 D램 가격이 폭락하면서 반도체 호황이 반도체 불황의 길로 가버리게 되는데

1997년 1월이 되자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지는데요.

 

바로 한보철강의 부도행이죠. 사실 한국이 IMF로 간 건 그해 12월지만 실제 IMF행의 시작은 한보철강의 부도로 보고 있죠.

하여간 한보는 원래 강남 재개발사의 대표주자 은마아파트를 지은 정태수가 세운 회사로,

정태수 역시 그당시 분위기를 타고 수익성이 있던 없던 거함거포주의 마냥 큰 공장을 지어 빚을 내고 또 그 공장을 담보잡혀 빚을 내는 연쇄고리로 재벌회장이 된 인물입니다.

 

▲ 강경식(김영삼 대통령 오른쪽)은 한국에는 금융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덩치만 컸지 실속은 하나도 없는 서지 않는 대물(?)과 같은 회사로 한보철강 역시 포철이 있는데도 굳이 추가로 만든 것으로 전혀 수익성이 없는 회사였죠. 정태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벌이 그런 식으로 적게는 자본의 500% 많게는 1000%까지 부채를 지고 있었는데요. 연초 한보에 이어 삼미, 진로, 해태에 이어 재계 서열 4위 기아차까지 7월에 부도행을 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 동남아시아 태국에서는 바트화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태국은 원래 일본 기업의 직간접 투자가 많았던 곳으로 당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가 그래왔던 것처럼,

낮은 금리의 엔화, 달러를 빌려서 자국에서 흥청망청 쓰고 있었죠.

그러다 역시 95년 역플라자합의로 엔고가 엔저로 되고 경상수지 폭탄을 맞는데요.

 

또 태국은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달리 역외시장에서 태국 채권의 외국인 거래가 가능했는데요.

소로스 형을 비롯한 환투기 꾼들은 1990년대 초 영국에서 재미를 보곤 이번엔 태국 가즈아라며 바트화 매도에 열을 올리면서 환공격을 하게 됩니다.

 

당시 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달러 퍼그제를 하고 있었는데요. 뭐 달러를 주요자산으로 하고 상하 일정비율만 변동을 허용하는 고정환율제죠. 하여간 소로스 형의 환공격과 경상수지적자, 그리고 단기외채 상환에 못이긴 태국 정부는 당시 동아시아의 금융 맹주 일본에게 SOS를 치는데

 

일본은 원래 태국의 바트화 사태를 조기에 진압하고자 그해 7월 아시아 통화기금 내지는 은행을 설립해 해결하려 했는데요.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 재무장관 루빈이죠.

 

루빈: 금융은 정치고 미국의 금융 정치력을 약화시키는 어떠한 다른 국제기금이나 은행을 허용하지 않는닷 그냥 전부 IMF행 하라고 해

 

사실 태국 뿐 아니라 모든 국가는 IMF행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돈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금융 재정정책까지 다 간섭해서 긴축재정 고금리로 대량 실업자, 한강행 급행열차 타기 때문이죠.

 

루빈은 고의적으로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를 지원하는 것을 막았는데요.

뭐 여기도 여러가지 음모론(?)이 있지만 여튼 돈장사하는 돈장사꾼 출신이라 미국의 금융권력을 약화시키는 지역금융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인 거 같네요. 그래서 결국 월가 친구들이 돈을 많이 벌었지만 ㅋㅋㅋ

 

결국 태국은 8월 얼마버티지 못하고 IMF행 급행열차를 타는데요.

이를 강 건너 불 보듯이 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재경원 장관 강경식이죠.

전에 김재익 편에서 단역(?)으로 등장한 인물로 여튼 한국의 모피아 1세대로 보면 헉! 아닙니다.

하여간 강경식은 한국에는 금융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고 다녔는데요.

 

032: 요즘 태국이 시끄럽던데 한국엔 무슨일 없겠제

강경식: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의 멘탈(?) 아니 펀드먼탈은 튼튼합니닼 ㅋㅋ

032: 나는 모른데이 나는 모른데이 나는 경제를 모른데이 경식이 니까 다 알아서 해뿌꾸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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