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러 전승절 열병식 참석 공식화 속 김정은 방러할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오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여러 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을 초대했는데, 과연 푸틴의 의도대로 시진핑과 김정은, 그리고 푸틴 세사람이 함께 회동을 할 수 있을지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키맨은 시진핑인데 그가 과연 김정은과 함께 나란히 붉은광장에서의 열병식 단상에 오르는 것을 반길지 주목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크렘린궁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앞으로 몇 달안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그가 과연 5월 9일에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러시아 전승절에 푸틴, 시진핑과 함께 사열대에 서게 될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면서 “만약 세 사람이 함께 연단에 오른다면 사실상 처음있는 일로 미국의 압력에 대한 강력한 연대의 신호를 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SCMP는 이어 “이런 연대는 북한과 러시아의 연대가 심화되고 있다는 신호인 동시에 중국에게는 시험이 될 것이며, 핵무장한 평양과 모스크바로 향하는 북한의 가속화되는 선회를 둘러싼 중국의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짚었다.
SCMP는 “크렘린궁은 시 주석이 오는 5월초 모스크바를 방문해 구소련의 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포함한 5월 9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면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지난 3월 말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위한 준비가 이미 진행 중이며, 3월 초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한 바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 쉽지 않을 듯]
일단 푸틴은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을 요청했고, 이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안보리 서기도 3월 21일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푸틴이 북한 지도자에게 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에 대한 초청을 받았으며 이 문제를 외교채널을 통해 조율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모스크바를 가고 싶어도 가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있다. 김정은은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모스크바가 아닌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만 방문했다. 비행기가 아닌 김정은 전용열차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하는 김정은은 만약 모스크바로 가기를 원한다면 그럼에도 열차를 이용하기를 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스크바까지의 소요 기간만 왕복 20여일이 넘게 된다. 과거 김정일 때는 전용열차로 무려 23박 24일 일정으로 모스크바까지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과연 그렇게 엄청난 시간을 들여 단지 전승절 행사에 참가하면서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선택할지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특단의 결단을 내리면서 러시아가 제공하는 항공편으로 모스크바로 갈 수도 있다. 그 경우에는 약 8~9시간이 소요되지만 김정은이 그동안의 북한 관례를 깨고 그렇게 할지는 미지수다.
또 하나, 김정은은 이제까지 다자외교의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다. 김정은의 특성상 자신만 홀로 조명을 받는 단독외교만 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다자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김정은이 최소 10명 이상의 다양한 나라의 국가정상이 모이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려 할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기는 하되 이번에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푸틴만 별도로 만날 가능성이 또다시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SCMP는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 러시아를 방문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과 면담하면서 시 주석이 5월 9일 전승절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 주석은 우리의 주요 손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왕이 주임도 “러시아 방문의 주요 임무가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과 전승절 행사 참석 준비”라고 확인하면서 “이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방문 준비에 대한 입장을 철저히 교환했으며, 준비가 꽤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전승절 열병식 참석 가능성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어떤 성명도 발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김정은의 전승절 행사 참가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제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러시아 입장에서 이만한 '외교 이벤트'가 없고, 김정은으로서도 세계 지도자들과 나란히 설 기회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성현 조지 부시 미중 관계재단 선임연구원은 SCMP에 “5월 모스크바 열병식에서 김정은과 시 주석이 같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번 행사로 김정은은 세계 지도자들 사이에 선 자기 모습을 북한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나, 유일한 유의점은 김정은이 계속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는 양자 정상회담을 선호하고 다자 회담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그럴만한 외교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점에서 김정은의 전승절 참석은 김정은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은 과연 김정은과 나란히 서기 원할까?]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시진핑 주석이 과연 이렇게 북한-중국-러시아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원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과 지속적인 핵 도발, 김정은이 지난해 통일 정책을 폐기하고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일 등으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긴장됐다”며 “시 주석이 실리보다는 정치적 상징에 가까운 열병식에 김정은과 함께 참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인홍 교수는 이어 “러시아 역시 미국과의 관계가 아직 취약하고 민감하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밝힌 것과는 달리) 푸틴이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을 원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SCMP에 “중국은 러시아·북한과 같은 프레임으로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김정은이 시 주석과 같이 열병식에 참여할 경우 중국이 ‘꽤 어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국은 북-중-러 3국의 지도자가 함께 모여 미국에 대적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로 치닫고 있고 또한 관세전쟁까지 벌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과의 3각 동맹의 한 축으로 서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냉전 전문가이자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인 선즈화 상하이 화둥사범대 종신교수도 지난해 5월 27일, SCMP와의 인터뷰에서 “북-중-러 3국의 정상이 모이는 것에 대해 중국이 신중해야 한다”면서 “만약 3국의 지도자가 함께 모인다면 사실상 미국과 적대하는 동맹에 중국도 함께 한다는 것을 공식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충고한 바 있다.
선즈화 교수는 이어 “미중 관계 악화로 중-러를 단결시키는 공동의 적이 생겼다”며 “하지만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의 외교정책을 견지해야지 다른 나라와 동조하거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선을 그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선 교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과거로 돌아가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는 사실 중국에 대한 안보 위협이지만 미국과 서방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동북아에서 형성되고 있는 동맹 대립 구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았으나 러시아가 이제 북한과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을 관찰했다”며 “미중 관계가 악화된 이후 한미일 군사동맹도 더욱 긴밀해졌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선 교수는 “북삼각(북중러)과 남삼각(한미일)의 대립 패턴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게까지 나아가면 전면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 교수는 “중국은 이 점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 교수는 이어 “과거 냉전의 역사 중 스탈린이 저지른 가장 근본적인 실수는 소련을 미국과 완전히 분리하고 사회주의 진영 내에 내부 순환을 만든 것”이라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통합이 커지는 추세에서 소련이 사회주의 경제권(코메콘)을 결성하는 등 ‘두 개의 평행 세계 시장’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소련은 극도로 피해를 입었고, 사회주의 진영 경제권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상품과 기술의 교류가 막혔다”면서 “이렇게 20년이 지난 뒤 경제적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는 것이 선 교수의 진단이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의 하락도 중국에게는 북한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더. 기존의 통념으로 보면 북한이 지정학적 완충지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북한을 통해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푸틴이 김정은을 모스크바로 공식 초청했음에도 적극적으로 김정은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 사실상 형식적으로 초청을 한 것이지 적극적으로 김정은이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틴에게는 김정은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