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로고[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제조 원가 압박을 받는 애플이 미국 정부의 규제 명단에 등재된 중국산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워싱턴 정가를 상대로 전방위 승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지시간으로 26일 IT 기업 애플이 미국 상무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이더들을 접촉하며 중국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를 수입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설득 작업을 전개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애플이 자사 제품의 생태계에 편입시키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상은 중국의 신흥 반도체 강자로 꼽히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다. D램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이 업체는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재 미국 국방부에 의해 '중국 군사기업(1260H)'이라는 제재 대상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해당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기업과 거래를 지속하더라도 즉각적이고 강제적인 법적 처벌이나 행정 제재가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치명적인 평판 훼손과 대외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위험 요소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워싱턴 무대에서 대정부 로비라는 무리수를 두게 된 배경에는 메모리 반도체 단가 폭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부품 공급처 다변화의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최근 애플은 누적되는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시장 선도 제품군인 맥북과 아이패드의 전 모델 출고가를 동시에 인상하는 전격적인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당시 경영진은 가격 조정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메모리 반도체 구매 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공식 지목했다. 그러나 소비자들과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인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뉴욕 증시에서 애플의 주가는 하루 만에 6% 넘게 폭락했으며, 하루 동안 증발한 시가총액만 2,630억 달러(한화 약 403조 원)에 육박했다. 이는 애플의 침체기 역사상 역대 두 번째로 거대한 자금 손실 규모다.
수익 방어를 위한 애플의 절박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미국 조야의 시선은 매우 회의적이다. 특히 미 의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반중 정서와 정치권의 반발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원 중국특별위원회를 이끄는 공화당 소속의 존 물레나 위원장은 "애플이 중국 군사 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서 그는 "중국 공산당이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도록 돕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정보통신 자립 안보에 역행하는 행태를 맹비난했다.
행정부 내 핵심 인사들의 과거 행적도 애플에게는 커다란 압박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던 지난 2022년 당시, 애플이 또 다른 중국계 반도체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낸드플래시 도입을 타진하자 "불장난을 하는 것"이라는 거친 표현을 자아내며 사업 계획을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YMTC 역시 현재 CXMT와 나란히 중국 군사기업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어 있어, 국가 안보 기조를 최우선으로 두는 미국 정가가 애플의 이번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