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브뤼셀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해 유럽 동맹국들이 대륙 방위를 위해 미국에 의존하던 관행을 버리고 스스로의 기여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유럽 내 미군 배치 현황을 새롭게 들여다보겠다는 구상을 공개하며, 이번 조치가 단순한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고 미군 주둔이 가져다주는 실질적인 이익을 면밀히 따져보는 계기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는 유럽 주둔 미군의 최소 규모를 법률로 제한하고 있는 미국 의회와의 협의 과정도 긴밀하게 포함될 예정이다.
대외적으로 이번 검토가 미군 감축을 확정 지은 것이라고 공표되지는 않았으나, 유럽 국가들에 방위 책임을 더 많이 지우고 미군이 전 세계적 임무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는 나토를 유럽이 주도하는 체제로 빠르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럽이 유럽 방위의 주된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발언했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경고도 뒤따랐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나토 국방비의 60%를 차지하며 나머지 31개 동맹국의 전체 지출액을 압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다른 동맹국들이 시급히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으면 우리의 분담금은 줄어들 것"이라며 "나토는 쌍방향 협력 체제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미국이 동맹국들보다 유럽의 방위를 더 많이 책임지거나,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나토 회원국들은 지난해 6월 네덜란드 헤이그 정상회의를 통해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5%를 국방비로 쓰기로 약속했으나 스페인 등 일부 국가의 이행 실적은 여전히 저조한 상태다.
기지 사용권 등 주권적 협조에 대한 점검도 이번 재검토의 주요 대상이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과거 이란 전쟁 당시 일부 동맹국이 미군에 작전 기지 이용이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은 사례를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그는 향후 미국이 긴급히 필요로 하는 영공 및 군사기지 사용권이 명확하게 보장되는지 여부도 이번 검토를 통해 함께 들여다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미국은 나토가 어떤 외부 위협도 완벽히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동맹인 '나토 3.0' 체제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회의 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유럽 동맹은 유럽 대륙에서 억지력을 발휘하고 유럽의 재래식 방어를 주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하며 군사 체질 개선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 같은 미국의 요구는 실제 군사 자산 축소 움직임과 맞물려 있어 유럽 안보 지형에 가시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 다발적 분쟁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유럽 배치 전투기를 기존 150대에서 100대로 줄이고, 해상 정찰기는 26대에서 15대로 감축할 계획이다. 공중급유기와 드론을 비롯해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 1척과 항공모함 1개 전단도 철수 목록에 올랐다. 다만 나토 핵심 억지력인 유럽 배치 핵무기는 유지된다.
유럽이 체감하는 안보 공백은 벌써 시작된 모양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위기 대응 전력에 대한 미국의 기여 축소 조치가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고 시인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조치가 즉각적인 것이냐는 질문에 "즉시 시행된다"고 확답했다. 다만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조금 주저하는 이유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계획 수립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실제 전쟁 상황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동맹국들이 가능한 모든 역량을 최대한 동원할 것"이라고 부연하며 동맹 내 과도한 불안 확산을 경계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