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국 상무위원 차이치의 실종, 도대체 무슨 일이 있나?]
사실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고 핵심적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수석비서라고 할만큼 외부 행사시 수족처럼 동행해 왔던 차이치(蔡奇)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 7일 시진핑을 수행한 이후 공식석상에서 자리를 감췄다. 특히 차이치가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는 전면법치중앙회의까지도 불참하면서 중난하이의 최고 지도부 내에 심각한 갈등 또는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어서 차이치의 행방이 주목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19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면적 법치주의' 업무회의가 11월 17일부터 18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면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시진핑은 최근 법치 전면 추진 사업에 관한 중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이어 이날 참석자의 면면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런데 인민일보의 보도에는 상세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과거 유사한 회의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의문이 가는 점들이 몇 군데 발견됐다. 우선 지난 2018년 8월 24일 개최된 중앙전면법치위원회 제1차 회의에는 시진핑 주석이 위원회 주임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팬데믹 상황이었던 2020년 2월 5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중앙전면법치위원회 주임 자격으로 제3차 회의를 주재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도 전면법치 중앙회의가 열렸는데, 이때도 시진핑은 회의에 참석했고 중요 연설도 했다. 이 회의에는 리잔수, 왕양, 자오러지, 한정 등 상무위원들도 참석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법치위원회는 시진핑이 위원장(주임)을 맡고 있고, 리창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자오러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처 서기 차이치이며, 총무처 주임은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천원칭이다.
이러한 직책 구조에 의하면 차이치는 서기처 서기로서 이번 회의에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는데도 불참했다. 그런데 차이치의 불참이 눈에 띄는 것은 최근들어 차이치의 행보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11월 7일부터 8일까지 시진핑 주석이 광둥성을 시찰하면서 메이저우시 메이셴구 얀양진에 위치한 예건잉 기념공원을 참배했는데, 이 자리에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판공청 주임인 차이치가 시찰에 동행했으며, 허리펑과 중앙 및 국가기관의 관련부서 관계자들이 시찰에 동행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7일의 행사 이후 차이치는 모든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심지어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는 중앙전면법치위원회에도 불참하면서 차이치의 신변 이상설이 갑자기 불거진 것이다. 동시에 예년과는 다르게 시진핑 주석도 지시만 내리고 회의에 불참했다. 또한 회의에서도 예년과는 달리 시진핑 주석에 대한 칭찬이나 예우도 확실히 격이 낮아지면서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 따가워진 것이다.
[2주 가까이 두문불출 차이치, 권력다툼의 희생양인가?]
사실 회의의 성격상 중앙전면법치위원회에는 시진핑 주석이 당연히 참석해야만 함에도 불참했고, 특히 차이치의 경우 본인이 이번 회의를 사실상 주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리창 총리는 당시 17일부터 18일까지 러시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부수반(총리)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회의에 대해서는 보도 원칙도 존재하고, 당연히 그 회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상무위원들도 전원 참석해 존중을 표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는 그 원칙들이 다 무너졌다. 시진핑의 불참은 물론이고 상무위원도 두 명만 참석했다. 또 마무리 발언도 정치국 위원으로 격하됐다. 이와 함께 관영매체들의 보도도 시진핑 주석에 대해 별로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시진핑의 권력이 최고조에 이르던 지난 5년 전만 해도 시진핑의 요구사항 11가지를 14개 문단으로 자세하게 보도했지만 이번 회의에서의 시진핑 지시사항은 5년 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단 5단락으로 축소됐다. 이는 시진핑의 위상이 어떠한지 확실히 드러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러 중국 관찰자들 사이에서 차이치가 건강 이상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권력다툼으로 인해 출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정말 의문스러운 것은 차이치가 지난 8일 시진핑을 수행하면서 광둥성 베이저우시를 시찰했을 때 공개적으로 얼굴을 내민 이후 다음 날 광저우에서 열린 제15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두문불출이다. 12일에도 시진핑 주석은 스페인 국왕을 만났지만 차이치는 참석하지 않았고, 14일, 시진핑 주석이 태국 국왕을 만났지만 차이치는 또다시 불참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수십 년간 중국 공산당의 관행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이 주요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중앙위원회 판공청 주임은 반드시 그를 가까이 동행해야 한다. 이전 시안 전국체육대회에서는 당시 판공청 주임이었던 딩쉐샹이 시진핑 주석을 끝까지 동행하며 그의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 광저우 회의에는 시진핑 주석이 단상에 올랐고, 국무위원과 여러 정치국 위원, 고위 군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예상됐던 모든 인물 중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만 불참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차이치의 자리는 비워둘 수 없었기에, 청중은 극히 이례적인 대역을 보게 되었다. 바로 공안부장이자 정법위원회 부서기인 왕샤오훙(王小洪)이 본래 중앙위원회 사무국 주임이 맡았던 매우 민감한 자리에 등장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운영 방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나타나고 누가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이러한 대조가 긴 해설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차이치 실종이 왜 우려를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차이치가 단순한 '상무위원'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세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명목상 7명의 위원 중 한 명이다.
둘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처 주임: 총서기 사무실의 수석 책임자로 일상 업무, 기밀문서 관리, 대내외 연락을 담당한다.
셋째, 중앙안전국의 실질적인 상관: 조직 구조상 중앙안전국은 중앙위원회 총판공청의 지도를 받는다. 중앙안전국을 장악하는 자는 베이징은 물론 중난하이에 있는 가장 가까운 무장 세력까지 장악한다.
즉, 군사권은 중앙군사위원회에 있지만, 중앙위원회 사무실 입구에 주둔하고 무장을 갖춘 사람들은 실제로는 차이치의 손아귀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군대에서 누군가가 "행동"을 취하고 싶다면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전구사령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중난하이 내부의 누군가가 ‘행동’을 취하고 싶어한다면, 첫 번째 문지기는 중앙보안국이다. 따라서 중앙위원회 판공청 주임이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빈도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그가 있든 없든, 그것은 더 이상 ‘예절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안보 문제가 된다. 그만큼 차이치의 존재가 중요했다는 의미다.
또 차이치는 시진핑과 떨어져서 단독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두 번의 예외가 있었다. 첫 번째는 리커창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당시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공식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론적으로는 중앙위원회 판공청 주임이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차이치는 ‘연구를 위해 산시로 이례적으로 단독 출장’을 가면서 베이징의 핵심 세력을 잠시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커창은 상하이에서 ‘갑작스러운 불행’을 겪었고, 공식적인 설명은 여전히 매우 의심스럽다.
두 번째는 작년 7월 7일로, 차이치가 루거우교에서 열린 항일전쟁 기념행사에 나타났을 때였다. 당시 시진핑은 수천 마일 떨어진 산시에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업무 분업이지만, 오늘날의 고압적인 정치 분위기 속에서는 중앙위원회 사무국과 보안 시스템이 관련된 ‘별도의 활동’은 모두 아주 이례적인 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벌써 세 번째다. 시진핑이 광저우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장유샤가 참석해 시진핑과 대등한 자리에 앉았고, 왕샤오훙이 임시로 차이치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차이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이치가 만약 재등장하게 된다면 차이치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 전모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차이치에 대한 모든 판단은 ‘징후’와 ‘추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첫째, 그는 단순히 중난하이를 지키기 위해 베이징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수도 있다. 둘째, 그는 ‘이동 제한’을 받았을 수도 있고, 조사를 받거나 가택 연금을 당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그는 아직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내부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을 수도 있다. 해석에 관계없이, 차이치가 10일간 실종된 것은 4중전회와 장유샤의 군권 장악 이후 중난하이의 권력 구조 변화를 관찰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왕샤오홍의 최측근 동이쥔의 죽음과 함께 권력 암투설 솔솔]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은 차이치의 돌연 실종과 함께 왕샤오홍(王小洪) 공안부장의 최측근인 동이쥔(董亦军)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4중전회가 끝난 지 25일 만에 공개되었다. 동이쥔의 죽음은 사실 중난하이를 완전히 뒤흔들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 4중 전회 이후 최대의 미스터리로 손꼽힌다고 할 정도로 중난하이 내에서 최대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 계속하겠다. 많은 관심 바란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