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이사 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광주에서 40년 간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몇 명의 옛 친구를 만나는 일 이외에는 산책하는 것이 하루의 전부가 되었다. 더구나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니 가끔 만나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끊어져 마음의 쓸쓸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삶의 활력소가 되었던 친구 관계마저 차단되니 삶의 생기마저 시드는 느낌이었다.
경제학에 “메기효과(catfish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경쟁자가 존재하면 이와 경쟁하는 다른 경쟁자의 잠재력도 함께 끌어 올린다는 이론이다. 메기효과에 대한 유래는 노르웨이의 한 어부가 정어리(Cardine) 수조에 메기(Catfish)를 넣은 데서 유래했다.
17~18세기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어민들의 주 수입원은 정어리의 일종인 청어였다. 청어는 차가운 해역에서 잘 자라서 육지에서 떨어진 먼 바다에 어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청어를 잡아 수조에 넣어 항구로 이동하는 동안 대부분의 청어는 죽어 버린다. 죽은 것보다는 살아있는 것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 어부들은 산채로 운반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한 어부는 늘 청어를 산채로 항구까지 운반하여 큰돈을 벌었다. 다른 어부들도 그 비법을 알고 싶었지만 그는 절대로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 어부가 죽은 다음에야 비법이 알려졌는데, 바로 청어의 수조 안에 천적인 메기를 넣은 것이었다. 메기에게 잡혀 먹힐 위협을 느낀 청어는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는 것이다. 바로 천적의 존재가 생존력을 높인다는 메기효과라는 이론이 생기게 된 유래가 되었다. 나에게도 지금 이런 원기를 불어 넣어줄 메기 한 마리가 있으면 좋겠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1889~1975)는 강연할 때 이 메기효과를 자주 인용했다. 그의 핵심 이론인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서 메기효과를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거친 환경에 대한 이런 용기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위기가 찾아온다며, 좋은 환경과 뛰어난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하고 역겨운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역설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재직한 슘페터(Schumpeter:1883~1950)는 1942년에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자체의 모순 때문에 서서히 붕괴할 것이며, 다음으로 자연적으로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자본주의가 눈부시게 발전하게 되면서 점차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그가 염려했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통해서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기업가 정신’과 ‘창조적 파괴 정신’이 약화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자본주의는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혁신을 이루려는 기업가들의 의지와 노력(기업가 정신), 그리고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경제 구조를 혁신해 나가려는 산업 개편능력(창조적 파괴)이 점차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활동을 통해 그가 지적한 모순들이 점차 해결되면서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힘차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60대 이상의 노인 세대와 50대 이하의 젊은 세대 간의 큰 가치관 차이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다. 특히 60~70대와 20~30대 간의 가치관은 대립적 관계로도 보일 정도로 그 차이가 매우 크다. 노인 세대는 ‘눈물과 한’의 과거 지향적 가치관에 녹아 있어서 옛 일에 대한 회상을 자주 한다.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격언처럼 가난하고 배고픈 환경에서 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일하여 세계 경제사에 빛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놓았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희망의 미래를 향하여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는 개미족의 가치관으로 살아왔음을 자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인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자 미래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려는 현실 지향적인 가치관을 갖고자 한다.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려는 개미족보다는 현재를 즐기고 보자는 베짱이족의 가치관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는 노래가 젊은이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애창곡이 되었고, 니트(NEET)족이나 캥거루족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새로운 가치관인 욜로(YoLo)족이 생겨났다.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다(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Yolo라는 가치관이 신세대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소비하는 태도로 미래나 남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생활태도를 말한다. 이들은 내집 마련이나 노후 준비보다는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취미생활이나 자기개발 등에 아낌없이 돈을 지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현재 지향적 가치관이 형성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대체로 경제적인 요인들이다. 정부의 강력한 취업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양육비 때문에 결혼과 자녀 출산을 기피하게 되고, 평생 열심히 일하며 저축을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들다는 사회경제적 불안들이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여기에 점차 여성의 권리와 씀씀이가 높아지면서 전통적 산업사회에서 남성들이 겪게 되는 경제적 부담과 가장으로서의 역할마저도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즉 남자는 직장에 출근하여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가정에서 아이 둘 정도를 낳아 양육에 정성을 쏟는다는 평범한 산업사회의 가정 이미지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특히 빈부의 격차를 표시하는 지니 계수(Gini系數)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0.331(2019년)을 기록하고 있다. 개도룩의 이러한 경제지표는 선진국으로 가는 통과 의례와도 같은 통계지만,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빈부격차가 상당히 심한 국가로 해석되기 때문에 이 계수를 무작정 무시할 수만은 없다. 김대중 정부(1998~2002) 때 0.279, 노무현 정부(2003~2007) 때 0.281, 이명박 정부(2008~2012) 때 0.290, 박근혜 정부(2013~2015) 때 0.275)였던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빈부격차가 점차 심해져 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 조사(2017년)에 의하면 전국의 자가 보급률은 61.1%로, 서울(2018넌)은 42.9%, 수도권은 54.2%, 지방 광역시는 63.1%, 도 지역은 70.3%이다. 특히 서울 지역의 자가 점유율을 연령대별로 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점유율이 63.2%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39세 이하 청년층의 자가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19.1%에 불과하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여 자기 집에서 삶을 살아가려는 소박한 작은 행복 추구의 목표인 소확행조차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힘들어 보인다.
과거 지향적인 가치관에 묶여 있던 노인층은 그래도 미래를 향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역경과 고통을 인내하면서 아끼고 저축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층은 이처럼 취업과 자녀양육, 주거라는 기본 욕구조차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차라리 남녀 모두 미혼인 상태로 현실에 안주하며 현실을 즐기자는 현실주의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조사(2012년)를 보아도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에 의하면 한국 문화가 ‘눈물과 한’이라는 과거 지향적 가치관에 찬성하는 국민은 5%에 불과하며 절대 다수의 국민은 ‘흥과 신명’이라는 현재 지향적 가치관을 새로운 한국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많은 과거 중심적 가치관에서 즐겁고 신나는 현재 중심적 가치관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젊은 층에서는 노인층의 가치관에는 관심(觀心)조차 없을 뿐 아니라, 노인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권력과 부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이며, 오히려 그들을 ‘꼰대세대’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전문가에 의하면, 한 문화권에서 가치관이 바뀌는 주기는 보통 12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탄생기, 번영기, 쇠퇴기, 해체기 등 네 단계를 각기 3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하나의 가치관이 다른 가치관으로 바뀌는 데는 모두 12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가치관은 해방 후 겨우 70여 년 밖에 흐르지 않아 앞으로도 50년 후에나 바뀔 가치관이 벌써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70~80대 노인 세대들이 120년이라는 세월을 한꺼번에 압축해서 모두 경험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적 환경이 모두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변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흔히 전문가들이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여전히 학업에 대한 열정이 세계적 수준이고, 자녀들을 위한 사교육비 지출에 최선을 다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아 호시탐탐 미래에 대한 투쟁과 응전 의식은 늘 가슴 깊이 간직해놓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치 100m달리기 출발선에서 출발 총성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와 같은 상황이라 하겠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선조들이 살아왔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현실에 대한 적극적 응전과 도전의식을 다시 한 번 폭발시키고 과감한 창조적 파괴를 통하여 또 한 번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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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hytimes.kr/news/view.php?idx=19322고려대학교 대학원 심리학 박사
전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전)
전남대학교 명예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