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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2류 동맹으로 추락한 미국-터키, 결과는? - 미-러 사이 줄타기 외교 터키에 美 강력한 경고 -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을 ‘집단 학살’로 바이든 규정 - 터키, 미군기지 폐쇄 말하지만 현실화 불가능
  • 기사등록 2021-04-28 13:28:31
  • 수정 2021-04-28 16: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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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을 ‘집단 학살’로 규정한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 시각) 터키 전신인 오스만튀르크제국이 106년 전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살해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공식 규정하면서 미국과 터키 사이에 파란이 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한다"며 "미국민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모든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있으며 이런 잔혹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천명했다. 이날 성명에서는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이 두 차례나 등장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이날을 기리면서 성명을 발표해 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20세기 최악의 참사 중 하나"라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세기 최악의 집단 잔혹 행위의 하나"라고 했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해당 사건을 학살이라고 표현했으나 터키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그 이후로 '학살'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40년 만에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반발하는 터키]


바이든 대통령의 ‘집단학살’ 규정에 대해 터키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는 역사학자들이 다뤄야 할 논쟁”이라면서 “한 세기에 걸친 논란을 제3자가 정치화해 터키에 대한 간섭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터키 주재 데이비드 새터필드 미국 대사를 초치해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터키는 현재까지 이 사건을 '1915년 사건'으로 명명하며 집단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자체가 전쟁 중 벌어진 쌍방 충돌로 내전의 결과이며 숨진 아르메니아인 규모도 30만 명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선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5년부터 1923년까지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 등 소수민족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통해 150만여 명이 사망했고, 이후 50만 명이 미국·소련 등으로 망명한 것으로 추산한다. 일부 학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앞선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평하기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집단 학살’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


바이든 대통령이 해당 사건을 ‘집단 학살‘이라고 공식 규정한 것은 미국내 아르메니아계의 요구를 수용한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실 터키는 미국의 강력한 우방이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기도 하거니와 미국의 중동·남유럽 안보 전략을 떠받치는 파트너이자, 이라크·아프간 등에서 미국과 대 테러전을 함께 치른 혈맹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바이든이 40년 만에 ‘집단 학살‘이라는 용어를 다시 꺼내면서 터키와의 관계를 흔든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이렇게 ’집단 학살‘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터키를 자극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 행보에 대한 강력한 미국의 경고라고 보여진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연대가 아닌 중국과 러시아와 결탁의 강도를 높여 가면서 또 다른 위협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2014년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동안 친러 행보를 보여오기는 했지만 최근들어 중국과도 급속하게 밀착하면서 미국과 EU동맹국들의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의에서 "터키의 민주주의 후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가 우려스럽다"면서 중국, 러시아와 함께 터키를 사실상 '공동의 위협'으로 지목했다.


*관련기사: [정세분석] 터키의 배신, 왜? (3월 29일)

*관련영상: [Why Times 정세분석 747] 터키의 배신, 왜?


특히 미국이 진짜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는 터키 공화국 설립 이후 94년간 유지한 내각제를 무너뜨리고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꾼 에르도안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反美성향이 강한 이슬람 강경파라는 점이다. 이들이 지금 에르도안 대통령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특히 미국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터키가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과 비슷한 일당독재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 및 언론 탄압에 반인권적 작태들이 너무나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터키 정책 실패에서 연유된 것이기는 하다. 에르도안의 국내 강경책 및 선을 넘는 팽창정책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철군을 강행하면서 에르도안에게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


지난 2016년 8월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를 터키군이 침공했지만 사실 쿠르드족을 공격하는 게 목적이었다. 미국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은 시리아 내 쿠르드족과 협조했다. 그러나 터키는 미군에 적대적인 시리아 반군과 협력하였다. 문제는 시리아 반군 상당수가 미군의 토벌 대상인 IS 테러리스트들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에르도안은 트럼프에게 “시리아를 터키에게 달라. 그리고 쿠르드족에 대해 미국은 신경 쓰지 말라. 터키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렇게 해준다면 미군은 시리아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설득했고, 트럼프는 에르도안의 말을 듣고 2018년 12월까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강력하게 반대하자 트럼프는 매티스를 해임까지 하면서 터키를 지원했다. 이것이 뉴욕타임스와 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의 보도내용이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 시리아에서는 트럼프가 후원하는 터키군과 시리아반군이 미군과 미군의 동맹인 쿠르드족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시리아 북부에 살던 50만 명의 쿠르드족과 기독교도인 야지드족 등 소수민족들은 터키군과 시리아반군에 쫓겨나는 등 인종청소를 당했다. 더불어 미군에 협조하던 인물들에 대한 시리아반군의 강간, 살인, 고문 등의 학대가 잇따랐다.


미군 대신 터키를 중동지역의 경찰로 사용한다는 트럼프의 전략이 완전 실패로 끝난 것이다. 터키의 에르도안은 시리아 전선에서의 전과를 바탕으로 범터키주의라는 민족주의를 앞세운 대외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안하무인의 팽창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에르도안은 이젠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조직 하마스의 지도자들을 보호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에서 축출하겠다고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에르도안은 또한 2017년에 미국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로부터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으로 ’러시아판 사드‘로 불리는 S-400을 구입하였다. 미국은 터키의 S-400 구입이 나토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취소를 요구했지만 터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S-400을 도입했고, 지난해 10월 터키 북부에서 S-400을 시험 발사했다. 그러자 뒤통수를 맞은 트럼프는 퇴임을 앞둔 12월 14일 마침내 터키에 대한 제재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측면에서 바이든의 터키에 대한 ‘제노사이드’ 용어 사용은 과거 트럼프 정권에서 행해졌던 터키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인권 이슈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 인정은 바이든 정부의 ‘인권 중시 외교’ 원칙을 내세우기 좋은 소재”라고 했다. 바이든이 중국·러시아 등과 함께 이들을 대적할 무기로 인권 카드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미군기지까지 있는 터키를 어찌할꼬?]


터키와 동맹국이기도 한 미국은 터키 내에 나토를 향한 중요한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 남부 도시 아다나 옆에 인지를리크 공군기지가 바로 그곳이다.


지중해에서 32km 떨어져 있는 이 기지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군사작전들을 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터키군과 미군이 함께 사용하는 이 기지는 가끔 영국군, 사우디아라비아군도 사용하기도 한다.


나토의 일원으로 스페인군 제74 대공포여대가 상주하는 곳이기도 한 이 기지는 3048m 길이의 활주로를 갖췄고 전투기 57대를 둘 수 있다.


이 기지는 원래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기지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미군 공병대가 1951년 완공했다. 그리고 3년 뒤 터키군과 미군이 공동사용할 수 있도록 협정을 맺었다.


이 기지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전 때에 미군 전투기들의 발진 기지였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기지에 미군이 전술핵무기 50기를 배치하고 있다는 기밀을 발설하면서 화제가 됐다. 터키에 미군이 핵무기를 들여놓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미군은 그동안 확인하지 않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본인의 입으로 실토해 버린 것이다.


당초 배치할 때에는 나토 28개 회원국이 유럽에서 핵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장일치로 표결해 결정했지만 숫자와 장소가 명확히 드러난 적은 없었다.


미국 무기통제협회(ACA)의 킹스턴 레이프는 CNN방송에 “터키가 점점 믿을 수 없는 동맹이 돼가고 있는데 왜 아직도 미국은 그곳에 핵무기를 계속 두고 있는 것인지 트럼프와 국방부에 물어야 한다”고 당시에 말한 바 있다.


문제는 터키가 미국과 갈등이 확산되면서 시시때때로 자국 내 공군기지 사용을 불허하는 등의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 정권 마지막 시기에 터키의 방위산업부(SSB)를 겨냥한 제재를 단행했다. 터키군의 무기 획득, 수출 및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방위산업부는 우리의 방위사업청과 기능이 비슷하다.


그런데 미국은 이 기관에 대해 무기를 생산, 수출할 때 미국의 라이선스 사용을 금지했다. 또 SSB 부장 및 고위 간부 3명의 재산 동결 및 비자제한 등의 조치도 포함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터키의 군사협력을 훼손할 가능성은 최소화하였다.


그러나 터키의 방위산업은 당장은 별 문제가 없지만 이 제재가 지속된다면 터키의 방위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터키 방위산업의 주요 부품이나 제작기술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전문 뉴스사이트인 알모니터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2~3년만 막혀도 터키의 방위산업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분야는 공군 및 지상무기체계이다. 터키 공군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F-16 전폭기의 유지보수와 차세대 전폭기인 TF-X의 차질 없는 추진인데 이 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심지어 장기적으로는 터키의 방위산업 분야를 고사(枯死)시킬 수도 있다.


여기에 미국은 앞으로 제3국이 터키 방산부와 협력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터키가 수출하려 하는 T129 공격헬기 등이 모두 발목 잡히게 된다.


결국 아무리 터키가 분노하면서 미군기지 사용 불가 등을 말로는 외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방위산업부 제재가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미-러 사이 안보 줄타기 하던 터키, 미국의 2류동맹으로 전락]


터키 에르도안의 줄타기 외교는 지금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미국과 2류동맹으로 전락했으면서도 그렇다고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특별한 이익도 얻지 못하는 계륵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종신집권을 위해, 그리고 지지층을 유지하기 위해 반미를 외치고 있다.


터키는 대외적으로 S-400 본격 가동, 남부 인지를리크의 미 공군기지 폐쇄, 동부 말라트야에 있는 나토의 조기경보레이더 기지 폐쇄, 러시아와의 관계 확대, 시리아 내 쿠르드족에 대한 보복 공격 등을 내세우면서 미국에 대한 역제재를 외치지만 그렇게 진행될 경우 나라가 파국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서 감히 시도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터키 핵심부에서는 미국을 달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도입했던 S-400을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긴급한 전시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상하자는 말들도 나온다고 한다.


지금 터키 경제는 상당한 역성장을 보이고 있고 실업률은 40%를 넘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너무 위태로우니까 대대적으로 재정을 풀어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기는 했지만 이로인해 늘어난 국가부채가 터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혀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에르도안 정권이 지금 터키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터키 경제의 최대 악재는 코로나가 아니라 ‘에르도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2류동맹으로 추락한 터키가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 대한민국에게도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우리의 형제 국가라고 말하는 터키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겹쳐 보이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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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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