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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섭일칼럼]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문재인표 개혁은 어떻게 다른가?(2) - 왜 구소련 고르바초프는 공산당해체하고 사민주의로 전향했는가. - 서구사민주의,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 폐지 않고 불평등문제 해결 -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진영을 흡수통합해 유럽의 평화낙원 만들다
  • 기사등록 2021-04-24 12:20:03
  • 수정 2021-04-27 10: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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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12월 사회민주당 전국집행위원들.


선진민주주의 나라의 선거는 미래의 예측이 가능하지만 한국의 선거는 전망이 불가능하다. 유권자의 수준문제도 있지만, 원인은 정당들의 정체성, 가치관부재와 감투탐욕에 의한 난장판정치에 기인된다. 한국의 후진정치가 유권자의 투표경향을 하향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지난 4년여의 486주사파 운동권에 의한 문재인정권의 반민주 전체주의 정치는 국가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20세기 공산주의국가의 대숙청을 방불하게 하는 적폐청산, 검찰, 언론, 부동산등을 개혁으로 포장한 전체주의 위장정책 탓이 크다.


지난 4월 7일 서울-부산의 시장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은 문재인의 위장정치가 효력을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민심수습책으로 민주당지도부의 교체와 총리 등 개각을 했으나, 기존 전체주의 정책의 본질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 공정과 정의, 법치와 협치, 인권과 통합의 민주정치의 복원은 요원하다. TK출신 김부겸 신임총리가 내놓을 지역주의극복 내로남불, 위선과 독선의 위장정치로는 국민을 속일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정권은 2명의 전 대통령을 투옥한 것도 부족해 반도체 세계1위의 대기업 삼성전자를 적폐기업으로 몰아 이재용부회장을 투옥함으로써 자본주의폐기 의지를 표출했다. 바이든 미대통령이 반도체조직망구성을 위해 삼성 등 반도체메이커 사주들을 백악관에 초청했으나, 감옥에 갇힌 이부회장은 참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한국경제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다. 바이든 미대통령의 뒤통수를 맞은 문재인은 청와대의 반도체메이커 총수회의를 급조해 쇼를 했다. 그러나 민심은 민주당의 가면을 보선에서 벗김으로서 정치사기를 정면으로 규탄했다.


지금 시범에서 우리는 이른바 문파, 486 주사파운동권과 문파세력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20세기후반 공산주의는 스스로 소멸하여 크렘린의 담장 밑에 깊은 잠에 들었다. 1989-1992 유럽의 정치경제 대변동은 한반도의 미래에도 중대한 교훈을 주었다. 동서분단의 독일민족은 동독공산당의 전향으로 서독의 자유민주체제에 흡수되는데 성공한 교훈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때 “다음 차례는 한반도”라는 전망이 주로 동독주민의 입을 통해 세계에 발산되었다. 1993년 통독총리 헬무트 콜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김영삼 대통령과 ‘진보’정치인의 문전박대로 빈손 귀국하고 말았다.


오늘 한국은 공산화위기 앞에서 신음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한국정치는 답할 의무가 있다.


[소련공산당 해체후 15개 동구공산당은 어떻게 동시에 사민주의 전향을 단행했는가]


구소련의 세계 공산주의 총수 고르바초프(고르비)가 30년 전인 1992년 12월 공산진영을 해체하고 서구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에 스스로 흡수합병을 단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고르비와 소련공산당서기국이 스탈린의 전체주의 범죄의 소추를 면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로 전향선언하고 서구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에 자진 흡수됨으로서 정치의 새로운 일원으로 부상한 정치변신은 역사적 ‘불가사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21세기 서구민주주의는 대서양에서 우랄까지의 공산진영을 자유민주-시장경제의 번영과 평화의 대륙에 흡수해 유럽통합을 이루었다.


이것은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현OSCE)의 1990년11월 파리정상회담에서 35명의 동서정상들이 만장일치로 서명해 발표한 ‘파리헌장’에서 21세기의 신체제에서 비롯된다. 이는 서구민주주의가 출생시킨 완전히 새로운 정치혁명이요 자유민주주의문명이었다.


소련공산당대통령 고르비가 직접 서명함으로서 발효한 ‘파리헌장’은 민주주의-시장경제가 공식적으로 국제법상 정치적 보편성 즉 만국국제법의 정통성보유를 확정했다. 고르비는 이를 근거로 1991년12월 소련의 세계공산주의의 자진해체를 결단한 것이다. 특히 동구 위성국들이 뒤따라 일제히 공산당을 해산하고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전향해 동구가 모두 사회민주당 일색으로 변모한 사실을 밝혀낸 ‘유럽정치혁신재단’의 괄목할 정치사적 역사적 연구업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동료 엥겔스는 1848년에 내놓은 ‘공산당선언’이 ‘역사적 오류를 범했다’고 선언함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 즉 자본주의멸망 테제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논거를 철저히 붕괴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자의 새 세상, 공산주의사회의 출현이론, 즉 유물론이 사실상 1848 프랑스3차 사회주의혁명의 가설위에 세운 유토피아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다.


1848년 프랑스의 최초 사회주의혁명 현장의 독일특파원이었던 마르크스의 탁월한 분석해설은 프랑스의 사회주의혁명실패를 당하기 전의 기록들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랑스의 자본주의발전을 당시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오류의 원인임을 엥겔스가 지적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당시 세계의 불평등문제를 공산혁명이 아니더라도 해결된다는 사회민주주의의 대안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독일사회민주당은 1869년에야 창당했기 때문이다.


1917년10월 러시아의 레닌이 성공한 볼셰비키혁명은 자본주의가 갓 시작된 차르제국을 전복한 공산주의혁명이었다. 자본주의의 맹아(萌芽)시점에 시작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서, 마르크스의 두 제자 베벨과 리프크네히트가 창당한 독일사회민주당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혁명으로 보아야 한다. 독일사회민주당은 소련공산당 집권에 성공한 레닌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는데, 의회민주주의를 혁명의 수단으로 유효하다는 해석을 가한 엥겔스의 유서를 비난했던 것이다. 그런데 엥겔스의 유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출현을 기약한 베른슈타인의 대안창출로 20세기 서구정치에 광범하게 확산되었다.


21세기가 20여년 지난 오늘, 소련공산당은 이미 30여년전 자진해산을 함으로서 지구상에서 소멸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공산당이 전당대회를 열어 전향을 선언한 후, 곧바로 사회민주당을 창당했다. 동구의 15개 위성국들도 소련을 그대로 따라 공산당에서 전향-사회민주당 창당을 함으로서 서구민주주의체제에 곧바로 흡수통합된 것이다. 이로써 오늘의 유럽연합(EU)는 20세기 후반에 시장경제-의회민주제도의 완성수준 등 일종의 시험을 거쳐 동구의 옛 형제국을 독일통일처럼 흡수통일을 했다. 그래서 유럽대륙은 거대한 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대륙통합에 성공할 수 있었다.


[2차대전 후 서독 사회민주당, 어떻게 마르크스를 폐기해 정치경제 개혁에 성공했나?]


서구사회민주주의는 2차 세계대전 후, 미-영-불 3대 민주주의 대국들이 전승하면서 민주화시대를 열게 됐다. 그리고 자유민주 우파를 이어 중도좌파가 제1야당으로 부상하는데 성공했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체제에 저항운동의 주역으로 어려운 시대를 잘 통과한 반공산주의 좌파의 등장이었다. 빌리 브란트 독일사민당 총리는 노르웨이에 도피해 저항운동을 했고, 프랑스사회당의 미테랑도 레지스탕스로, 레옹 블룸등은 나치감옥에서, 나치점령기간 저항운동으로 일관했다.


프랑스사회당은 1936년 최초로 공산-사회당의 좌파연합공천으로 선거승리로 집권했다. 불룸의 좌파정부는 세계최초의 사회민주주의정부로 노동자의 유급휴가와 사회보장제를 단행해 레닌주의와 전혀 다른 사회주의정부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치독일의 2차대전 발발로 드골장군이 런던에 망명해 레지스탕스운동을 시작해 사회민주주의의 맥을 잇지 못했다. 이탈리아 최초의 공산당수 안토니오 그람시는 파시즘두목 무솔리니가 체포해 투옥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유명한 ‘옥중(獄中)일기’를 발행하여 서구자본주의에서 레닌식 혁명의 불가능을 깨닫고 진지로 장기전(長期戰)전술을 개발했다.

서구에서 1945년 2차대전 중 전후 서독의 사회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 이탈리아의 공산당이 등장했으며, 영국의 경우, 1945년7월 총선에서 애틀리의 노동당이 전쟁영웅 처칠을 낙선시키고 집권했다.


그러나 2차대전 직후의 사회민주주의는 초기성장단계였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좌파정당들은 사회민주당, 공산당이 주로 제1야당으로 집권을 겨냥하고 있었다. 미영불소 전승4강 대국의 점령을 당했으나 민주열망이 강했던 서독은 기독교민주당의 아데나워가 집권했다.


사회민주당 초기 슈마허 당수는 바이마르시대의 공산당원리를 추종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나치강제수용소에서 10년 옥중수난을 겪은 전설적 슈마허는 자본주의 멸망 테제를 그대로 품은 채로 사회민주당재건에 나섰다. 나치패전 후 서독은 자유민주 선풍으로 아데나워의 개방정책에 박수를 쳤다. 여기에 사민당은 너무나 해묵은 마르크스주의 당을 창당했으니 시민의 외면을 당하게 된다. 선거에서 30%득표 미달의 소수파로서 만년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서독시민은 낡아빠진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노동자천국건설을 부르짖는 사민당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슈마허는 “...핵심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폐지해야 하며 생산수단을 대기업에서 사회소유로 이전해야 한다”라고 마르크스적 표현을 쓰자 “곰팡이 강령”이라는 비난을 샀다. 그는 안보정책에서 프랑스 주도의 유럽연합 모태인 유럽철강공동체 가입도 반대했다. 그래서 사민당은 초기 유권자의 철저한 외면을 당해 당원수가 격감했다. 1950년대 젊은 사민당 지식인들은 대기업의 국유화를 거부하고 자본주의폐지가 아니라 혁신하며, 공산주의 패거리 정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는 환골탈태운동을 전개했다.


젊은 당원들은 만년야당 신세를 돌파하기 위한 사민당의 혁신바람을 일으키자 반 나치 저항스타 빌리 브란트 서베를린시장이 1959년11월 바트고데스베르크 전당대회로 화답했다. 여기서 유명한 사민당의 혁신강령이 탄생했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자본주의타도, 프롤레타리아독재 등 낡은 전략전술을 폐기하고 사회민주당은 “계급정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임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의회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보장제, 사적소유권의 보호, ‘주적’ 공산당과의 투쟁 등의 새 깃발을 올렸다.


바트 고데스베르크의 반향은 컸다. 1966년 총선에서 최초로 득표율 30%를 돌파해 집권가능 야당으로 부상했다. 1969년 총선에서 기민당을 따라잡았고 그 해에 기민-사민 대연정에 참여해 집권당부상에 성공했다. 이후 사회민주당은 단독집권과 우파 기민당과 연정으로 현재에도 메르켈총리와 대연정을 하는 사회민주주의모델이 되었다.


[좌파의 개혁은 국유화대신 시장자유, 혁명대신 의회주의, 계급투쟁대신 국민통합이다]


프랑스의 경우, 1920년대 스탈린이 제3인터내셔널 가입을 모든 공산당에게 강요하자 탈퇴했다. 소련총수의 세계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 의무적으로 가입하라고 스탈린이 명령했다. 그런데 프랑스공산당만이 거부했고, 가입파는 공산당으로 남았으나, 탈퇴파는 사회당으로 분열했다. 쟝 조레스, 레옹 불룸, 미테랑등의 사회당으로 발전했다. 독일사민당은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서구사민주의정당과 같은 궤적을 그리며 발전했다.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이 공동으로 반나치 레지스탕스를 감행한 정통좌파로 부상했다. 그래서 1981년 미테랑의 사회당과 마르세의 공산당이 공동강령을 만들어 드골파에 대항한 결과 5공화국 최초로 집권에 성공했다. 프랑스공산당의 대기업-은행-운수-항공등의 국유화정책을 미테랑이 실현하려 했다. 이 때문에 사회당과 공산당은 분열했고, 이로인해 미테랑 대통령이 국유화조치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미테랑이 공산당 각료들을 전원 내각에서 추방하고 국유화를 전면 취소했다.


“경제는 시장에, 정치사회는 국가가 관리 한다”는 ‘니니정책’을 선언함으로서 미테랑은 사회민주주의에 복귀했다. 미테랑 14년 집권기간에 친미정책을 수행했다.


주목할 것은 독일사민당의 보혁대연정과 미테랑의 좌우동거정부가 냉전시대 모범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미테랑의 ‘니니정책’과 브란트의 ‘국민정당론’은 우파정당과의 연합정부구성의 기초가 되었다. 서구사회민주당의 좌우대연정은 정치목표인 국민통합의 모범사례가 되었다. 서구선진정치의 새로운 좌우통합정치의 새로운 정치양식이 되었다.


여기서 한국정치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정치혁신, 개혁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은 선진정치의 통합모델에 있다. 오늘 한국정치에서 ‘진보’를 표방한 민주당과 보수의 ‘국민의힘’이 서로가 ‘협치’를 주장하지만, 꿈도 꿀 수 없는 희망이다. 바로 양당의 적대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진보세력의 전체주의적 패거리정치 탓이다. 민주당의 독선 위선 내로남불 등의 486주사파운동권의 정치행태에 있다.


정치에서 좌파의 개혁과 혁신은 브란트와 미테랑등 사회민주주의가 잘 보여주었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의회민주주의로 대치함으로서 폐지하고 대기업 등 국유화정책을 포기함으로서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는데서 시장경제의 원리인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학문, 종교,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무조건 보장하며 국가독점 대신 민간경제로 전환해 시장에 맡기는데 시장경제의 핵심이 있다.


사회주의도 전체주의를 배제하고, 계급정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을 채택하는 정치개혁을 했던 것이다. 문재인정권이 4년여 국민에게 입만 열면 개혁운운이라고 떠든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선각자 브란트와 미테랑의 사회민주주의정책을 완전히 역주행하는, 공산당이나 하는 민주주의파괴정치인 것이다.


[버먼교수의 예언. “20세기 성공한 사회민주주의, 21세기 반복 안 될 이유가 없다”]


1960년 4.19혁명 이래 20-21세기에 걸쳐 국민이 일심협력으로 건설한 선진시장경제, 의회민주주의, 3권 분립, 사적소유 등을 축소 폐지해 국유화-독재로 몰아가는 공산주의정치를 문재인과 문파, 청와대의 주체사상운동권 세력이 집행함으로서 정치는 대혼란, 국가경제는 대파탄, 사회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호의 대침몰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총명하고 교양과 상식이 넘치는 민주투사인 절대 다수 국민은 ‘진보’의 가면을 쓴 문재인 전체주의정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역사적 대패를 안긴 유권자의 투표결과가 잘도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문재인의 ‘주사파정치’를 용납할 바보는 지구상에 한명도 없다. 사회민주주의는 30년전 고르바초프의 소련공산당이 스스로 70여년 공산당의 역사를 해체하고 사회민주주의전향으로 유럽대륙을 평화와 번영, 행복과 안정의 완전민주사회로 돌변시킨 것이다. 모스크바의 정도(正道)를 모르고 평양의 지옥행을 선택한 문파와 주사파운동세력의 두목 문재인의 지배를 1초라도 빨리 종식하지 않으면 우리역사의 생명을 끊길지도 모른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가짜진보보수의 탈을 벗고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민주주의정치를 학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비참한 침몰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20세기 국제정치에서 유일하게 승리하여 21세기 새 정치의 희망으로 떠오른 사회민주주의를 연구 추천한 미국 컬럼비아대학 바나드 칼리지의 셰리 버먼 정치학교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현대정치사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유일무이한 정치승리라고 지목했는데, 그가 생생히 기록하고 분석 평가한 명저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의 결론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인식하고 있었듯이, 정치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결정론과 자유주의자들의 자유방임에 대항해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면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자고 호소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20세기 동안 가장 성공적이었던 정치운동, 즉 사회민주주의였다. 21세기의 문제들 또한 그 형태는 다를지 모르나 그 성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가 거둔 성취가 다시 반복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계속)

[첨언]

*셰리 버먼교수의 사회민주주의 연구는 “정치가 우선한다”는 제목으로 2010년 ‘휴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했다. 세계정치학자들이 만장일치 칭송한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의 유일한 희망을 안겨준 역사를 탁월하게 연구 분석하여 쉽게 써준 최고의 정치이념연구서이다.


이밖에 “사회민주주의의 길(서구좌우파의 실용주의)”(주섭일, 2008년5월 ‘사회와 연대’)는 유럽특파원으로 장기 활동했고, 5공 해직기자로 파리13대학에서 ‘프랑스혁명과 한말변혁운동’의 박사논문을 쓴 후 사회민주주의 입문서로 쓴 책이다.


이밖에 2005년 10월 “인간적인 길” (자크 아탈리,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이 집필한 사회민주주의의 미래학 정수, 에디터 주섭일 감수해설), 2006년5월 “미테랑평전” (주섭일 감수 출판 에디터)도 있다. 이 책들은 세계적 정치지도자로 독일통일을 설계하고 유럽통합을 직접 외교를 통해 성공시킨 미테랑 대통령의 정치경제특보를 13년간 하면서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자인 미래학석학 아탈리가 집필한 평전으로 일생을 사회민주주의를 정치로 일궈내면서 통독, 유럽통합, 냉전종식, 소련멸망의 역사를 직접 주도하여 성공한 미테랑의 정치행적을 회고한 역작으로 사회민주주의자의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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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섭일 논설위원 주섭일 논설위원의 다른 기사 보기
  • 언론인/ 사회와 연대 회장
    정치학 박사
    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국제문제대기자

    저서: 사회민주주의의 길(사회와 연대, 2008) 등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 (사회와 연대, 2017)
    특파원이 추적힌 북한 핵(사회와 연대, 2016)
    한반도 통일대박과 1990 독일통일 (사회와 연대, 2014)
    북의 3대 세습과 평양의 봄(사회와 연대, 2011)
    정치변화와 사회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02)
    김정일과 부시의 대타협(두리미디어, 2008)
    새정치와 이원적 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12)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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