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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막내린 카스트로 시대, ‘쿠바’ 친미국가될까? - 카스트로 가문의 쿠바 지배 종료, "새로운 쿠바의 시작" - '혁명후 세대'의 집권, 쿠바정치 세대교체 불가피 - 젊은이들의 사회주의 체제 강력 비판 물결, 주시해야
  • 기사등록 2021-04-19 13:54:38
  • 수정 2021-04-19 15: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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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의 카스트로 형제 [사진=History.com]


[62년만에 종식된 카스트로 시대]


쿠바 카스트로 형제의 ‘혁명 통치’가 62년 만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16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제8차 공산당 대회에서 고(故) 피델 카스트로(1926∼2016)에 이어 쿠바를 이끌어왔던 라울 카스트로(89)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퇴임을 선언하고 직책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2006년 형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가 건강상의 이유로 정계에서 물러난 뒤 권력을 이양 받아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해 왔다. 2018년 국가수반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미겔 디아스 카넬(60) 당시 수석 부의장에게 넘긴 뒤 지금까지 공산당 총서기직만 맡아왔다.


공산당 일당 독재의 쿠바에서 공산당 총서기는 최고 권력의 자리다. 이렇게 라울 카스트로가 권부에서 퇴장으로 20세기 중반 중남미를 휩쓸었던 공산·사회주의 혁명 1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로이터 통신과 dpa(데페아) 등은 라울 카스트로 총서기가 자리에서 물러남으로 인해,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친미(親美)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으로 집권한 이래 처음으로 ‘카스트로’ 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고 보도했다.


체 게바라 등과 손잡고 반미(反美)와 제국주의 해방, 국가 주도 통제 경제를 내세워 집권한 카스트로 형제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로 의료·교육 전면 무상화를 추진하면서 쿠바인들의 환호를 받았다. 미국의 바로 턱밑에 자리잡은 쿠바가 사회주의 세상으로 탈바꿈하면서 카스트로의 혁명은 전 세계 좌파와 공산주의 세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 공산당 총서기직을 사임한 라울 카스트로는 1931년 쿠바 동부에서 스페인계 아버지와 쿠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곱 남매 중 라울이 넷째였다.


일찌감치 사회주의 이념에 빠졌던 라울은 쿠바 혁명의 시작이었던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을 형과 함께 감행했지만, 자살 공격에 가까웠던 무모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후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으로부터 13년형을 선고받고 이중 22개월을 복역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멕시코로 건너가 그곳에서 체 게바라(1928∼1967)를 만나 그를 형 피델에게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쿠바 혁명 당시 사령관으로 여러 전투를 지휘한 라울은 1959년 친미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혁명정부가 들어선 후 국방장관, 국가평의회 부의장, 공산당 부서기(제2서기) 등을 맡아 50년 가까이 형을 보좌해 왔다.


피델 카스트로는 1997년 일흔을 넘긴 후 라울을 후계자로 승인했고, 2006년 피델의 건강이 악화하자 라울이 사실상 통치권자 역할을 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형 피델에 가려있긴 했으나 라울은 형보다 더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쿠바의 지도자로 총서기직에 오른 이후 그는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했다. 공산당 일당 체제와 사회주의 모델을 고수하면서도 경제 개혁·개방을 꾀한 것이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정권 시절의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것도 라울 카스트로였다. 이같은 외교적 성과 속에 라울의 '조용한 리더십'은 쿠바 국민의 호평을 받았고, 형 피델을 넘어서는 지도자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령을 감안해 2016년 공산당 전당대회 때부터 더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줄 것임을 시사했고, 5년 후인 지금 약속대로 사임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권좌에 오른 이는 누구?]


1세대 혁명의 상징이었던 라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그 후임에는 그동안 명목상 국가 수반이었던 미겔 디아스카넬(61) 대통령 겸 국가평의회 의장이 맡게 됐다.


디아스카넬은 이미 3년 전 카스트로의 후계자로 낙점되어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맡아왔지만 19일(현지시간) 마무리되는 당대회를 통해 이젠 실질적인 쿠바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디아스카넬은 그동안 공산당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로 카스트로 형제에게 충직한 인물로 꼽히고 있지만, 그의 실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디아스카넬이 엔지니어 출신으로 로큰롤과 비틀스를 좋아하고, 카스트로 형제가 입던 올리브색 군복이 아닌 흰 전통 셔츠를 입고 다닌다”면서 “디아스카넬은 쿠바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전면 도입했고, 정부 회의에서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트위터를 쓸 정도로 트렌드에 밝다”고 전했다.


이렇게 디아스카넬이 혁명 직후인 1960년에 태어난 ‘혁명 후(後) 세대’여서 당연히 1세대와는 다른 정치를 펼쳐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쿠바 정치는 어쩔 수 없이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더불어 지금부터 새로운 쿠바가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윌리엄 르그란데 아메리칸대 교수는 “당분간 카스트로가 막후 통치를 할 가능성은 크지만, 디아스카넬이 개혁을 추진할 여력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AP통신은 또 디아스카넬 체제 출범에 대해 “쿠바인들은 카스트로 가문이 국민의 모든 일상을 지배했던 시대가 62년 만에 종료되는 데 대해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쿠바,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까?]


‘쿠바’하면 ‘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라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아직도 1960년대의 미국 클래식 카가 돌아다니고 낭만이 가득한 나라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낭만적 이미지는 단지 여행객에게만 통용될 뿐이고 사실 쿠바의 경제는 이미 절망적 상태 그대로다.


쿠바의 이러한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쿠바가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1962년부터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이로인해 쿠바 경제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바가 모든 것을 걸면서 의존했던 소련연방마저 붕괴하면서 쿠바는 그야말로 생존이 어려운 처지로 몰리게 됐다.


‘미국없는 쿠바’의 현실은 냉혹했다. ‘사회주의 천국’의 실체를 쿠바에서 그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이중통화제 개혁 여파로 물가가 500% 치솟으면서 생필품·의약품 품귀를 빚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수입마저 끊기면서 쿠바 사회는 지금 최악의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정권 때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경색됐고, 지난 1월 11일(현지시각) “쿠바가 국제 테러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원한다”면서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오바마 정권에서 해제되었던 결정을 5년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로인해 쿠바의 어려움은 더욱 가속화됐다.


이렇게 쿠바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자 젊은 반정부 시위대와 예술가들은 피델 카스트로의 유명한 구호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비꼬아 “거짓말은 그만하라. 조국 그리고 삶”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 쿠바 출신 뮤지션들이 모여서 만든 노래 `파트리아 이 비다(Patria y vida) [사진=유튜브]


쿠바 출신 뮤지션들이 모여서 만든 노래 '파트리아 이 비다(Patria y vida, 조국 그리고 삶)'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2월 17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이후 4월 19일 현재 조회수가 473만 회를 넘을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뮤직비디오에는 과거 쿠바 반정부 시위 영상과 불타는 쿠바 국기의 이미지도 담겼다. 이 뮤비가 쿠바에서 화제를 모으자 쿠바 정부도 즉각 여론 수습에 나설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쿠바의 새로운 세대들인 20~30대가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어떠한 사회주의 정신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경제난은 지속되고 정권 변동기까지 겹치면서 현재 쿠바 민심은 폭발 직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미 라울 카스트로로부터 일정 부분 권력을 이양받았던 디아스카넬은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읽고 지난 2월 대부분의 산업에 민간 기업의 활동을 허용하고, 카스트로 정권이 외환 통제를 위해 유지했던 이중통화제(국영기업과 국민이 쓰는 달러 대비 페소 환율을 다르게 하는 것)를 폐지하면서 사실상의 부분적 자본주의 개혁에 돌입했다. 쿠바 경제를 투명화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기 속에 이제 실질적인 국가 수반이 된 2세대 정치인 디아스카넬은 좋든 싫든 변화에 나서야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쿠바계인 마코 루비오 미 상원의원은 최근 트위터에 "라울 카스트로가 공산당 당수에서 물러나는 것이 진정한 변화는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쿠바의 새로운 변화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디아스카넬의 변화가 당분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바로 아직도 살아있는 라울 카스트로 때문이다.


19일 권좌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라울 카스트로는 은퇴 후에 책을 읽고 손주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무대 밖으로 퇴장해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


쿠바 전직 외교관인 카를로스 알수가라이는 AFP·로이터통신에 "라울은 계속 중요인사로 남을 것"이라며 "중국 덩샤오핑이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후에도 계속 최종 결정권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도 남아 있다. AFP통신에 의하면 물러나는 카스트로가 “쿠바가 혁명과 사회주의 원칙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도 "미국과 기꺼이 상호존중하는 대화를 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뜻도 밝혔기 때문이다.


‘혁명과 사회주의 원칙’ 부분은 체면을 말하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뒷부분, 바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쿠바의 발전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라울 카스트로 역시 지금의 쿠바가 다시 경제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쿠바 입장에서는 다행히 ‘오바마 시즌2’라고 말하는 조 바이든 정권이 들어섰다. 당연히 쿠바를 껴안으려 할 것이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못박은 ‘테러지원국’ 딱지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디아스카넬’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통한 사실상의 친미(親美) 국가화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가기 위해 쿠바가 먼저 미국에 내놓을 카드가 있다. 바로 콜롬비아 반군에 대한 지원이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 지원, 그리고 미국인 도주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일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면서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게 된 요인들을 없애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쿠바는 당장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그야말로 ‘카리브해의 흑진주’로 다시 자리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새로운 지도자를 만난 쿠바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참고로 북한은 지난 16일 쿠바 공산당의 제8차 대회 개최를 축하하며 축전과 꽃바구니를 보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축전을 통해 "두 나라 사이 관계는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 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공동의 투쟁 속에서 맺어지고 복잡다단한 국제정세의 시련 속에서 검증됐다"며 "오늘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게 더욱 확대·발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북한과의 우의가 돈독한 쿠바가 친미쪽으로 방향을 틀면 북한이 받을 충격은 얼마나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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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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