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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5 06: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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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인데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채널을 독점하고 있나
-강력한 ‘아재 군단’ 형성한 386세대가 80년대생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사육한다
-가장 앞선 국제감각으로 무장한 2010학번들이 진짜 세대진영을 형성중이다


▲ 자신을 노예로 부리는 낚시꾼과 연결하는 실이 끊어져도 가마우지는 다시 그 어부에게 돌아가 노예 노동의 삶을 이어간다. (사진출처: pixabay)


TV를 즐겨 보지 않은 지는 오래 됐지만, 그래도 한가한 주말은 누구의 인생에나 가끔 찾아 오기 마련이다. 모처럼 늦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난 어느 주말 오후, 무심코 유튜브를 실행시켰다. ‘요즘엔 누가 어떤 걸로 웃기나? 심심한 나를 제발 웃겨줘’ 와 같은 기대를 하고 프로그램 리스트를 열었는데, 순간 내가 잠이 덜 깬 나머지 꿈 속에서 과거로 돌아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피투게더>에선 유재석이 이름도 가물가물한 동년배 아재들을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무한도전>에서는 유재석이 여전히 박명수에게 시덥잖은 시비를 걸고 있었다. 스크롤을 계속 내려보니 <아는 형님>에서는 강호동이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었고, 그 방송사의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이경규와 함께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고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방영 일자를 확인 했지만, 대부분 반년 이내에 방영된 최신 VOD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까 내가 20대 초반일 때 방송의 중심이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다 그대로 중심이었다. 그토록 유행과 인기가 빨리 바뀌던 젊은 층 대상 예능 프로그램들의 메인 MC 및 고정 패널들이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변화가 없다는 건 다소 충격이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중장년의 연기자나 가수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동거동락>이나 <천생연분>처럼 청춘 스타들이 떼거리로 나오는 방송이 히트했고, <일밤> 같은 프로그램의 게스트도 다 젊은 연예인들이었다. 40~50대가 지금처럼 방송의 중심이 아니었고, 혹시 나오면 채널이 돌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안 봤다.

 

그런데 이젠 TV 예능에 나오는 게 다 소위 ‘아재’들이다. 박명수, 유재석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석진이 아이유/수지와 함께 뛰어다니며 게임을 한다. 더 신기한 것은, 자주 나오는 출연자들 대다수가 막상 그들 20~30대에는 인기가 그리 많았던 스타들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 층에서 그 프로그램들을 즐겨 보고, 아예 프로그램에 대한 팬덤이 생기는 지경이란 건 나로선 참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언제적 강호동인가 싶고, 웃기는 방식은 진부한데도 메인 MC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이경규, 박명수, 강호동이 이렇게 계속 뛰면, 젊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갈 기회는 없다. 막상 자신들은 30대 때 서세원, 주병진 같은 선배들의 빈 자리로 치고 올라갔지만 오히려 그래서일까? 그들은 후배들의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윤정수니 지석진이니 하는 막상 젊을 땐 무명에 가까웠던 자기 친구들을 서브 MC로 끌고 들어와서 서로 치고 받으며 출연진 카르텔을 구성한다.

 

물론, 프로의 세계에서 각자가 자기 자리 오래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 들었으니 무조건 브라운관에서 비키라는 요구는 불합리하다. 그러한 출연진을 구성하는 PD들로부터는 그렇게 해야 시청률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도 예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을 주름 잡았던 개그콘서트는 모두 새로운 얼굴로 채워진 프로그램이었고, 개그맨은 재능과 감각으로 가장 빠르게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이다. 아무나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가 아니어도 웃길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란 얘기다. TVN 등에서 주목받는 권혁수, 정상훈 같은 젊은 예능인들의 재능과 감각은 공중파 방송에서 뛰어다니며 힘들어하는 걸로 웃기는 ‘아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젊다는 이유로 더 우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회는 공정해야 하지 않을까? 중장년 개그맨들이 CP급 PD들과 동세대 친구로 엮여서 암묵적인 카르텔을 만들고 후배들을 줄 세워 맘에 드는 후배에게만 한정적으로 방송 출연하도록 좌우하는 행태는 어떻게 봐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심지어 그런 짓을 뒤에서 ‘암묵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공공연히 누가 누굴 어디에 꽂았네 어쩌네 하며 방송에서 떠드는 건 정말 ‘자기 견제’가 안되는 작태다. 한 때는 ‘라인업’ 같은 프로그램 포맷까지 만들어서 그런 ‘라인’의 존재를 공식화한 적도 있었던 건 정말 기가 차는 노릇이다.

 

소위 ‘라인’이 없다면 방송에 나오는 게 불가능할 김경민 같은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에 꽂힌 게, 김용만이 실제로 연출진에 부탁을 해서라는 얘기를 날 것으로 내보내는데, 그렇게 나와서 한다는 짓이라고는 입사 선배라고 후배 개그맨에게 ‘똥군기’ 잡는 것이 다였다. 사실, 그 예능 PD라는 사람들이 보통 사회에 관한 목소리를 낼 때는 그렇게 정색하고 정의의 사도 코스프레를 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들은 타인의 윤리를 견제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는 환경에 있어서 수치심이 기능하지 않는 모양이다(https://twitter.com/ozzyzzz/status/677284162294820864 허지웅 트윗 인용).

 

방송 얘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실은 이게 현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본다. 사실, 어느 분야는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젊은 의사들은 전문의를 따고 펠로우를 수 년씩 해도 교수 T.O. 얻기가 쉽지 않고, 회계사들은 빅펌 디렉터가 되도 밤을 새며 일을 해야 한다. 방송 제작에서조차 작가/AD/FD들은 최저 임금같은 소리는 남의 나라 얘기인 듯 혹사 당하며, 자동차 공장에선 동일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 ‘아재들’ 대비 반토막 월급을 감내해야 한다. 사회의 모든 꿀과 직업적 안정성은 다 586이 누리고 있는 반면, 사회 각 분야에서 80년대생들은 시쳇말로 ‘뺑이’를 친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20여년 전 386이라 불리던 신진세대는 사회 곳곳에서 기성세대들과 싸우며 자기 자리를 비비고 들어앉은 반면, 380(30대, 80년대생, 00년대 학번) 세대들은 이제 기득권이 된 그 운동권 세력을 추종하면서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인생이 괴로운 이유는 바로 그들이 자리를 내놓지 않아서이고, 말하자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지대 추구’ 때문인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 자리 내놓으라고 말은 못하고, 공연히 ‘친일파’ 운운하며 허수아비를 때린다. 아니, 도대체 일제가 물러간 45년에 겨우 성인이 되었을 25년생들조차 다 죽은 이 시점에 친일파가 무슨 잠꼬대인가? 본인이 올라가야 할 자리에 과연 친일파들이 앉아 있는가 말이다.

 

이런 380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해외의 가마우지 낚시가 떠오른다. 조르지 않을 정도로 목을 실로 묶은 가마우지를 풀어놓으면, 배가 고픈 가마우지는 열심히 물고기 사냥을 한다. 작은 물고기는 목을 넘겨서 배를 채울 수 있지만, 큰 물고기는 삼키지 못해 목에 걸려있기에 어부의 차지가 되는 것이 이 낚시의 기전이다.

 

목을 묶은 실이 수초 등에 걸리거나 하면 가마우지가 물에 들어갔다가 익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실은 세게 당기면 끊어지는 소재를 쓴다. 그럼, 실이 끊어지면 가마우지는 자유를 얻는가? 그렇지 않다. 실을 끊은 가마우지는 주인에게 다시 돌아오고 기꺼이 목을 내밀어 다시 사냥 노예로 돌아간다.

 

자신들의 지대를 공고화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상위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는 다 걷어치우고, 푼돈 최저임금이나 올려주겠다는 데 좋다고 열광하는 380세대는 바로 이 가마우지에 다름 아니다. 지난 촛불 시위와 대선에서, 예전 아이돌 팬클럽이 쓰던 형광지와 하드보드를 이용한 응원 문구판이 유행했다. 그게 바로 이 380세대들이 만들어낸 소품들이다. 가마우지처럼 586에게 권력을 물어다 줬지만, 실제로 삼킬 수 있는 건 3센티미터 미만의 작은 물고기뿐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절대적 충성을 보이는 것이다.

 

사실, 20년 전의 386 세대는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산업화의 발판을 딛고 최초의 ‘지식인’ 세대 단괴로 자리하여 손쉽게 사회에 진입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과 가까운 선〮후배 카르텔을 형성하여 싸울 힘을 갖추었고, 선배 세대와 이념 갈등을 일으키며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그들이 586이 되어 사회 주도권을 잡은 지금, 이제 사회에 진입한 380세대들은 파편화되어 세가 약한데다, 그나마 집단으로 싸우려는 개인적 의지도 찾아 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한 세대적 단괴를 형성한 586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해주는 손쉬운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위 아래로 좌충우돌하며 고립되었던 노무현 정권과 무엇을 해도 지지 받는 문재인 정권의 차이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고 본다. 젊은 청년들이, 40~50대 아재들이 나와서 감 떨어지는 소리 삑삑 내지르는 거에 좋다고 물개 박수 치고 있는 것이나,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하며 자신들의 미래를 갉아 먹는 정책들에 환호하는 것은 결이 다르지 않은 행위인 것이다.

 

최근 대학에 진학한 10년대 학번 학생들에게는 그런 흐름에 대한 반발이 예전보다 많이 보인다. 대한민국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어 조기교육으로 대한민국의 어느 세대보다 영어도 잘하고,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해외도 어려서부터 많이 나가본데다, 통신 기술의 발달을 통해 전세계를 동시대로 접해온 90년대 생들은 380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있다.

 

외양은 물론 한국인이지만, 그 머리 속에는 그 어느 세대보다 코스모폴리탄에 가까운 정서가 들어 있다. 이들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위 세대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380세대가 자신들의 몫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군지 끝내 깨닫지 못하고, 586 세대의 가마우지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우익 진영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동지로서 손을 내밀어야 할 세대는 90년대생 20대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진짜 세대 진영은 이제야 그 틀이 갖추어졌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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