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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7 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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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히틀러 찬양시 알려지자 “쓰지 않았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결국 ‘히틀러 풍자시’라고 변명
-김일성 초청으로 10차례나 북한 방문하며 환대 받고 김일성 숭배용 여행기록 남기는 문화공작원 노릇
-혼외자로 출생한 둘째 아들, 자기를 고아원에 맡겼던 엄마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절망 속에서 괴로워해


▲ 1987년에 헤르만 칸트와 얘기하고 있는 루이제 린저.


2011년까지 숱한 독일인들과 자신의 아들까지도 속여넘긴, 히틀러와 김일성 그리고 독재자 호메이니를 추종•숭배했던 독일 여성 소설가 루이제 린저는 다수의 히틀러 찬양글을 발표했다. 그 중 1935년 초 잡지 <아궁이 불(Herdfeuer)>에 발표한 6 소절의 찬양시 <젊은 세대, Junge Generation> 중 마지막 6절만 소개한다. 앞의 1 ~5절도 구구절절 히틀러 독일을 위한 찬양문이다.

 

<젊은 세대>

우리는 죽음으로 충성을 다해 몸을 바치는 성스러운 이 땅의 감시자

위대한 지도자(히틀러를 의미)의 비밀을 지키는 파견인들

우리들 이마에 불꽃을 일으키는 그의 신호와 함께

우리 젊은 독일인들!

우리는 감시한다

우리는 승리 아니면 죽음을 택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충성스럽기 때문이다

 

Todtreu verschworene Wachter heiliger Erde,

Des grossen Fuhrers verschwiegene Gesandte,

Mit seinem flammenden Zeichen auf unserer Stirn,

Wir jungen Deutschen, wir wachen, siegen oder sterben,

Denn wir sind treu.

 

 

린저는 자기가 쓴 히틀러 찬양시 <젊은 세대>가 알려졌을 때, 자기가 쓴 시가 아니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나중에 루이제 린저가 그 시를 썼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나치 조직인 독일청년여성동맹(Bund deutscher Madel) 교육소의 책임자였던 점을 내세우며, 이 기관에서 공동으로 작성한 시라고 변명하면서 말을 교묘히 바꾸었다.

 

나중에는 다시 말을 바꾸면서, 자신이 그 시를 썼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히틀러에 대한 풍자시”라고 구차한 변명을 했다.

이런 말 바꾸기를 보면, 루이제 린저가 어떤 성정의 인간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루이제 린저는 히틀러를 열정적으로 숭배했고 나치가 멸망한 후 새로운 대체 인물을 찾았다. 그녀의 무의식의 심연에서 새로운 독재자로 되살아났던 인물이 김일성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였다. 이란의 현대를 고대 신정국가로 바꾸며 피 맛을 즐겼던 호메이니를 그녀는 열렬히 숭배, 찬양했다.

 

김일성의 초청으로 10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며 엄청난 호화 환대를 받았던 루이제 린저는 김일성을 숭배하는 여행기록을 남기는 가운데 북한의 문화공작원 노릇을 했던 것이다.

 

루이제 린저가 ‘김일성 왕국’을 찬양한 기록을 몇 구절만 소개한다.

 

“북한에서는 여성 교통경찰관을 제외하면 경찰을 거의 볼 수 없다. 사이렌 소리를 내는 경찰차도 없다. 경찰 곤봉도 없다.”

“자동차에 붙는 범칙금 스티커도 없다.”

“일본인 호텔 투숙객이 투숙객 방문에 문을 잠글 수 없다고 불평하자 북한 호텔 지배인이 ‘공화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하면서 북조선은 전국적으로 자물쇠도 열쇠도 필요 없는 나라라고 했다.”

“도둑도 없고 강간도 없다. 어린이에 대한 범죄도 없다.”

“약품도 (필요) 없다. 조선 의학은 예방으로 해결하므로 페니실린 등 항생제도 (필요)없다.”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하며, 유아 사망도 거의 없다”

“어떤 병이 여기서 발생하는가란 질문에 대해, 감기도 결핵도 좋은 영양과 예비 검진 덕택에 전멸했다(ausgerottet). 암도 조기 발견된다.”

“신체 장애아에 대해 묻자 북한 의사는 놀란 표정을 짓고서 쳐다보며, 세상에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라고 답했다.”

“나(루이제 린저)는 한 명의 장애인, 불구자(Kruppel)도 보지 못했다.”

 

루이제 린저가 방문했던 평양 등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면 깊은 공포와 슬픔을 억누를 수 없다.

 

 

에필로그

 

“품위 있게 보이는 초로의 한 여인이 오버 바이에른 지방 마을 베소브룬(Wessobrunn)의 공원묘지에 있는, 먼저 간 아들 묘 앞에 서 있었다.

 

이 여인 곁에는 거의 30년이나 연하인 젊은 남자 한 사람도 동행하고 있었다. 이 젊은 남자는 갑자기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인 속에서 무언가 치솟아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 여인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죽은 아들에게 화해와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이 일이 있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 후 그녀는 평생 마음 속에 숨겨 놓았던 이야길 꺼냈다.

 

그녀의 둘째 아들은 혼외자로 출생했다. 이 아들은 오래 전부터 무엇인가 불길한 것을 예감했고, 어릴 때 자기를 고아원에 맡겼던 그의 엄마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절망 속에서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해) 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오늘까지 아버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아들의 묘지에서 비탄과 회환에 빠져 있었던 여인은 바로 독일 좌파 가톨릭 여성 소설가 루이제 린저(1911 – 2002)였다.

 

1994년 작고한 루이제 린저의 둘째 아들 수테판 린저(어머니 성 린저를 따름, Stephan Rinser, 예술감독)와 어머니 린저와는 평생 갈등 관계에 있었다.”

 

1990년대 말 스페인 철학자이며 수도회 신부 호세 산체스 데 무리요(Jose Sanchez de Murillo) 교수는 절친했던 린저와 함께 그녀의 둘째 아들 묘소를 방문한 후 위의 글을 남겼다.

 

무리요 신부는 루이제 린저의 탄생 100년을 맞아 2011년 린저의 일생을 가감없이 밝혀 줄 루이제 린저 전기인 <루이제 린저: 모순의 삶, Luise Rinser: Ein Leben in Widerspruchen>을 출판했다.

 

이 전기는 루이제 린저의 첫째 아들 크리스토프 린저(Christoph Rinser)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다. 크리스토프도 어머니의 ‘과거’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루이제 린저는 아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왔기 아들도 어머니를 둘러싼 진실을 알고싶어 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옥중기> 등은 모두 린저 자신을 미화하기 위한 거짓 이야기이며, 루이제 린저의 뇌 속에서 창조된 허구의 ‘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자서전 <늑대를 껴안다, Den Wolf umarmen, 1981>도 사실에 입각한 기술이 아니고 전설 만들기(Legende)라고 무리요 교수는 밝혔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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