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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26 12:51:15
  • 수정 2019-06-26 14: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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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없는 정당이 가능할까?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사진은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관련 농성하는 장면 [사진=자유한국당]


“대중정당은 이념정당일 필요가 없다 또는 이념정당이어서는 안된다.”


정당판 근처에 있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얘기이다. 정당정치를 안다는 분들 특히 정당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분들은 거의 99% 정도 예외없이 ‘대중정당은 이념정당이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정당은 이념정당이다. 이념정당이 아닌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이념정당이 아닌 정당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정치 자영업자 집단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좀더 역사가 오랜 용어를 찾자면 정상배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정당의 상대어는 이념정당이 아니라, 전위정당이다. 합법정당의 상대어는 비합법 지하정당이다. 대개 대중정당은 합법정당일 수밖에 없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의 혼동이 있으니까 대중정당과 이념정당은 상호 용납 불가능한 개념인 것처럼 오해하는 것이다.


대중정당도 당연히 이념정당이다. 다만, 자신의 이념을 구체화하고 선전선동하는 전략전술에서 보다 합법적이고 대중친화적인 방식을 구사할 뿐이다. 이념 투쟁을 전면에 내세웠던 레닌의 볼쉐비키가 비합법 전위정당 노선을 추구하다 보니 마치 이념정당과 대중정당은 모순되는 개념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해가 생겨났다고 본다.


모든 정당은 아무리 스스로 부인하고 싶어도 이념정당이다. 이념이 있고, 그 이념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정치적 욕구가 있기 때문에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 이념이 얼마나 허접한지, 얼마나 이론적 현실적 정합성을 갖추었는지 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이 이념정당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자신들의 이념을 체계화할 철학적 바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이념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강령과 규약을 만드는 것은 더욱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념정당으로서 자격과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정당이 본질적으로 이념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우파 지식인들조차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이념 따위를 왜 따지는 거냐? 지금은 이념을 벗어나야 하는 탈(脫) 이념의 시대다.”


대중정당은 이념정당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와 비슷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이념은 인간 세상에서 분리 불가능한 요소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한에는, 이념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논리적인 동물이고, 철학적인 존재이다. 감정과 정서를 갖고 있는 그만큼 동시에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그 사고를 철학적인 패러다임으로 정식화한다. 이건 아무리 못 배운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본질적으로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인간들이 특정한 목적과 관심을 갖고 모인 정치조직이나 정당 활동 등에서 이념을 뺄 수 있다는 것은 도시전설보다 더 황당한 포스트모던형 괴담이다. 덧붙이자면, 아직 포스트모던은 없다. 모던을 부인하고 싶은, 실제로는 프리모던(pre-modern)에 남고싶은 자들이 차마 그런 저열한 명분을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으니까 허황된 포스트모던을 내세우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이란 건 이념적인 존재라는 얘기이다. 이거 부인하면, 특히 우파가 부인하면 좌파에 대항할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고 항복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이념이 없으면 보다 자생적이고 1차원적인 공동체가 그걸 대체하게 된다. 민족 또는 종족이라는 망상이 대표적이다. 홍콩 사태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이념을 부인한 자리에 소름끼치는 중화민족주의가 그 악마적 본성을 드러낸다.


이념은 인간이 자생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을 벗어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동질성에 따라 행동하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프레임이다. 이걸 부인하는 건, 자동차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 21세기 물질문명을 부인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세계관일 뿐이다.


일제시대에 조선사람들은 좌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통틀어 ‘주의자(~ist)’라고 불렀다. 이게 뭘 말할까?


간단히 말해서 사회와 역사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틀과 미래대안을 제시한 것이 거의 사회주의자 좌파그룹이었다는 얘기이다. 그 흔적은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말이 해방전후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것도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우파들이 ‘이념’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뭔가 이념을 말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좌파였기 때문이다.


정치는 전쟁 대신에 하는 것이다. 바로 ‘말로 하는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일관된 질서나 목적의식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 말에 일관된 질서와 목적의식, 체계를 갖추대주 무기로 만드는 것이 이념이다. 말로 하는 전쟁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이념이라는 얘기이다.


우리나라 우파는 세계사적으로 드문,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드라마틱한 성공을 거두고도 정치투쟁에서 완벽하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말이 없었기 때문이고, 말 많은 걸 터부시했기 때문이다.
말이 없고, 이념이 없으면 편하다. 그 대신 그 편함에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은 바로 정치 리더십의 실종이다. 정치 리더십은 말로, 동지들과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조직하여 투쟁에 나서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우파와 우파 정당은 그렇게 말을 통해서 정치 리더십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 현상, 대한민국 우파의 정치 지도자가 바닥이 났다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무덤에서 파내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정치 리더십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없으니 변호사 출신들을 주로 데려다 쓴다. 그나마 논리력과 표현력을 갖추고 사회 전반의 이슈를 포괄하는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정치 리더십이 아니다. 정치 리더십의 대용품일 뿐이다. 대용품은 일시적으로 땜질하는 임시방편일 수는 있어도 결코 정치 리더십의 기능을 대신하지 못한다.


말을 살려내야 한다. 말로 싸우는 전사들이 나와야 한다. 자기 연설문을 직접 쓰는 지도자들이 대거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우파에는 희망이 없다.


탄핵 수용 문제는 우파의 목젖에 바짝 다가와 있는 시퍼런 단검이나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문재인 일당은 언제든지 이 문제를 동원해서 우파를 일패도지시킬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를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 석방 같은 경우는 치명적인 일격이다. 우파는 여기에 대해서 대응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파가 탄핵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놓고 우파가 깔끔하게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한다. 탄핵 수용이건, 탄핵 거부하고 전면 투쟁에 나서건, 어느 쪽으로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탄핵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파의 어느 지도자가 가령 황교안 대표가 어느날 작심하고 “이제부터 자유한국당은 탄핵을 수용한다”고 발표하면 그게 이루어질까? 절대 불가능하다. 우파들이 탄핵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런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 프로세스 자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이 그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무슨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건 당의 분열과 수습 불가능한 혼란으로 이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파가 탄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당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갖춰져야 한다. 그건 열린 토론과 그걸 통한 의사결정이다. 당대표 경선은 물론이고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의 모든 공천이 당원들의 열린 토론과 의사결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대전제가 일정액 이상의 당비를 내고 당원 교육을 받은 당원들에게만 의사결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전제가 갖춰지고, 당의 체질이 여기에 적응하면 비로소 탄핵 수용이라는, 당과 우파의 절체절명의 중요성을 가진 이슈에 대해서도 판단과 결정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렇게 제대로 자격을 갖춘 당원 대중이 참여하는 열린 토론을 통해 탄핵에 대한 입장이 정리됐을 때, 그 결과는 절차적이고 정치적인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게 절차적이고 정치적인 정당성을 갖춘 어젠다에 대해서는 설혹 거기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라 해도 함부로 반대하거나 거역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역하고 당을 뛰쳐나가는 세력은 소수화되고, 고립되고, 결국 정치적으로 소멸된다. 정당 정치에서 정치적 노선을 정리하는 기본 프로세스가 이것이다.


대중정당은 이념정당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실은 이런, 당의 필수적인 존립 메커니즘과 정당성의 대전제를 부인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아무 결정도 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가자는 논리일 수밖에 없다. 대중정당도 그 이념에 동의하고, 그 이념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몫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당비와 교육 등 정체성 확립)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당들은 이 기본전제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다. 그러니 정당이 아니고 그냥 뜨내기 정상배들의 집단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교묘하게 합리화하는 논리가 이른바 대중정당론이다. 대중정당은 이념 필요없다는.


자유한국당은 어차피 탄핵에 대한 입장 정리 못한다. 그걸 정리할 프로세스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자유한국당과 우파들은 당의 내부 토론에 기반한 의사결정 메커니즘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그게 당 혁신의 알파요 오메가다.


아마 자유한국당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시간 없는데 한가하게 그런 짓이나 하고 있을 수 있느냐”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묶어서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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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pine12019-06-27 16:45:17

    대중정당과 이념정당의 개념을 확실히 정의한 컬럼. 그러나 정당이 같은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이념의 현실화를 위해 정권을 잡고자하는 모임이라는 고전적 정의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한 컬럼이 아닌가 싶다. 대중정당과 이념정당의 담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도층 흡수론이 아닐까? 정당이 대중정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숙명이며 정당이 이념정당이어야 하는 것은 무론의 정의일진대 여기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대중정당이 되기 위해 이념이 중도성향인, 다시 말해 이념이 희미한(?) 계층을 포섭해야 하느냐, 아니면 적어도그들에게 닥아가야 하느냐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주 대표의 견해를 듣고 싶다.
    또 한가지, 빅근혜 전 대통령의 총선 전 석방이 과연 우파에게 침명적 일격일까 하는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것은 우파가 분열되어 총선 필패를 예상하고 있는데 이렇게 뻔히 예상되는 일이 정말로 현실화될만큼 우파가 어리석은 것일까. 이렇듯 어리석다면 이러한 우파가 정권을 잡는 것도 우려해야 할 일 아닐까.
    탄핵 수용 여부도 어려워 보이는 사안이기는 하나 꼭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싶다. 탄핵이 된 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그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이 옳바른 결정이었는가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살피려면 정권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파가 정권을 잡아야 하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탄핵의 합법성, 정당성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한들 무엇이 잘못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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