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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9 14: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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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그 적국의 이익에 봉사한다
-독일 지원 받은 레닌 정부, 유럽 영토의 절반 이상 포기하고 적위군 해체 등 ‘항복’ 선언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중국 가서 황제의 신하를 자청하는 제후국 외교의 굴욕


적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자국의 이익이 아닌 집권세력의 이익, 나아가 그 혁명의 토대가 되어준 적국의 이익에 봉사한다.

 

1917년 4월, 스위스에 망명중이던 블라디미르 레닌은 당시 러시아의 제1차 세계대전 교전국이던 독일의 지원으로 비밀열차를 타고 러시아에 귀국한다. 독일의 레닌 지원 목적은 당연히 러시아 후방 교란이었다.

 

▲ 소비에트 정부는 러시아 유럽 영토의 절반 이상을 독일에게 양보했다.


귀국한 레닌은 볼셰비키 집회에서 “전쟁 가고 평화 오라, 부르주아 반대, 프롤레타리아 집권, 토지 국유화, 은행과 산업의 국영화”(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를 외치는 <4월 테제>를 발표한다. 말 그대로 좌파 공산주의 혁명이다.

 

이후 10월 혁명을 거쳐 집권한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는 1918년 2월, 독일제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정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으며 연합국(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의 전선에서 이탈한다. 이 조약의 내용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핀란드, 발트3국, 카프카스 일대를 아우르는 러시아 유럽 영토의 절반 이상을 모두 포기하고, 독일에게 50억 마르크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며, 적위군을 해체하는 등 굴욕적이고 일방적인 항복 선언이었다.

 

9달 후인 1918년 11월 독일이 영국, 미국에 밀려 연합국에게 항복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제2차 세계대전 시 히틀러가 동유럽을 파죽지세로 격파하고 모스크바 코앞까지 갔었던 거대한 레벤스라움의 영토를 독일이 손쉽게 소비에트 러시아에게서 얻어내는 기회를, 좌파 공산주의 혁명정부가 독일에게 헌납했던 것이다.

 

독일은 (영미에 밀려) 잠시였지만 레닌의 혁명을 지원한 목적을 만족스럽게 이뤘다.

 

자칭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이 중국에 가서 황제의 신하를 자청하는 제후국 외교의 굴욕을 당하면서, 북경대에서는 “높은 산봉우리와 같은 빛나는 중국이 이끌어가는 ‘중화몽’에 ‘작은 나라’ 한국도 중견국으로 역할을 하겠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연설문으로 대국의 국립대생들에게 추인을 받는 광경을 보니, 불현듯 1918년이 생각났다.

 

하긴 문재인이 임명한 주중대사 노영민만 봐도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날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 황하의 물이 수없이 꺾여도 결국 동쪽으로 흐르듯, 중국 제후들이 입조하여 천자를 알현할 때 충성을 맹세하는 충신의 절개를 뜻하는 말)’을 쓰고, 양국의 관계를 ‘한중관계’ 아닌 ‘중한관계’라고 표현하며 주한 중국대사보다 더한 충성심으로 스스로 중국의 신하임을 만천하에 증명하지 않았던가.

 

[동아광장/최진석]‘독립’을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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