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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5-29 14:20:10
  • 수정 2019-05-29 15: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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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집회의 한 장면 [Why Times DB]


지난 토요일(5월 25일)은 거의 하루종일 광화문 일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집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행동하는자유시민의 ‘문재인정부 경제파탄 규탄대회’와 요즘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전.대.협의 ‘주체적 혁명동지들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여 장기표 선생과 조형곤 대표 등의 발언을 듣고, 청와대까지 가는 행진에도 참가했다.


그때 느낀 점을 공유하고 싶다.


집회에서 나온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의미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행진하면서 본 모습에 대해서는 사실 공감하기 어려웠다. “China Out, 시진핑 아웃”을 외쳤다가 문재인 욕하고 그러는데, 구호를 제대로 알아듣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그 발언 형식이 문제라고 느꼈다.


연도의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행진에 대해서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재미있는 구경거리 보듯 하는 경우도 있고, 무관심한 태도도 있고, 일부는 매우 시니컬한 모습(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모습이나 표정으로 봐서 좋은 반응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도 있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양가 감정을 갖고 있다. 불쾌해하고 싫어하는 느낌 하나. 그래도 안쓰럽게 여기고 미안해 하는 심정 하나.


일단은 저 양가 감정 가운데 불쾌해하고 거부하는 감정이 더 앞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동서고금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적이다. 세대 대립이란 것은 인간세상에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상수이다. 특히 한국처럼 권위주의적인 전통문화의 영향이 강하고, 급격한 사회변화로 세대간 간극이 넓은 나라에서는 저런 세대 대립이 더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어렸을 때부터 노인네들 하는 얘기에 반감부터 갖는 경험이 축적되고 반복 학습돼왔다.


노인네들이 젊은이들에게 뭐라고 지적하고 큰소리로 떠들면 일단 반감부터 갖는 사회 분위기라는 얘기이다. 틀딱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왔겠나? 그런데 거기에 대고 극렬한 욕설과 부정적인 표현을 동원하면 어떻게 될까?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건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보다 일단 외면하고 비아냥대고 조롱부터 하기 쉽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머리 하얀 어르신들이 대다수이다. 그분들이 정말 나라가 걱정되고 젊은이들이 걱정되어 나오신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 이른바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하는 방식은 젊은이들에게 그 진정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전혀 효과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것 같다. 젊은이들과의 인식 차이 그 거대한 벽을 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모였다고 해서 부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문제는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긍정적인 요소란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갖고 있는, 안쓰럽고 미안해하는 심정이다. 사실은 자신의 부모들에게 느끼는 감정의 연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노인들에게 배우고 싶어하고, 유머러스하게 여기는 심정도 있다. 이건 의외로 광범위하고, 생각보다 강력하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에 보이는 젊은이들의 열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밖에도, 노인을 등장시킨 CF나 TV프로그램이 엄청나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지금 태극기 집회는 이런 긍정적인 요소는 모조리 죽여버리고, 가장 부정적인 반응만 이끌어내는 요소로 떡칠이 되어 있다.


욕도 그렇지만, 군복에 선글라스 낀 모습들도 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차려입으신 충심은 이해하지만, 젊은이들에게 그 모습은 윽박지르고 강요하는 기성세대와 군부대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금 노인네들이 젊은이들에게 ‘강한 모습’을 어필하는 게 무슨 반응을 불러일으킬까? 어디 누가 더 강한지 확인해봅시다, 하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울 것 같다. 그래서야 어디 게임이 될까?


지금 노인네들이 주도하시는 태극기 집회는 변신이 필요하다. 차라리, 침묵시위가 훨씬 더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유럽의 침묵시위에 자주 사용하는, X 표시를 한 흰 마스크를 쓰고, 여성들은 머리에 흰 너울이라도 쓰고, 남성들은 참회의 메시지를 담은 보드라도 드는 게 어떨까.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 문재인 같은 자가 등장하도록 한 것은 우리가 부패했고 어리석었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고, 부모들보다 못사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보드를 들고, 침묵하며 청와대까지 행진하는 것이 훨씬 더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실제로도 저런 메시지는 우리 우파보수 진영이 반드시 거쳐야 할 자기 인식이기도 하다. 그런 자세는 젊은이들이 노인네들에게 갖는 거부반응과 부정적 정서를 일단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이분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물꼬를 터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지금은 다들 떠들어대는 시대이다. 거의 소음공해 수준이다. 차라리, 침묵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침묵 자체가 엄청난 메시지일 수 있다.


덧붙여, 저렇게 적지 않은 규모의 군중이 모였는데, 주변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유인물이 없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시끄러운 소리로 잘 알아듣기도 힘든 구호를 줄기차게 떠드는 것보다, 침묵하며 행진하는 도중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은 유인물을 주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짧은 시위 참가 경험이지만, 느낀 점을 정리해봤다. 정말 나라를 사랑하시고, 걱정하시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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