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에 대해 별 의견을 말하지 않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소속을 두고 있는 정치혁신국민본부가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여 단일한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는 점. 그래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기 어려웠다. 최근 이 문제를 놓고 내부 의사 결정 절차를 거쳐 통합을 지지하기로 하고 성명서를 냈다. 그래서 이제 별 부담없이 발언을 할 수 있게 됐다.
,
통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통합 논의 자체의 문제점 때문이었다.
우선,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통합 논의는 구체적인 정치 철학이나 노선, 정책 등 정치적 컨텐츠를 중심에 둔 것이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어떤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 통합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저 내년 지방선거에 유리하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선 지방선거 후보조차 찾기 어렵고 자칫하면 당이 소멸될 수도 있기 때문에 등이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통합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의당이나 안철수 대표 개인을 살리는 명분은 될 수 있어도 한국 정치의 한 영역을 담당하는 공당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공당의 명분은 한국 정치와 한국의 상황에 대한 기여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통합 명분에는 그게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공학적 근거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안철수 대표가 통합의 명분을 정치적 컨텐츠에 두고 논의를 진행했을 때 반발이 훨씬 거세고 정치적 명분에서도 약점이 잡힐 가능성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의당의 기존 중도좌파적 스탠스를 벗어나 중도우파적 위치를 지향할 때 당내 반발이 훨씬 거세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반발은 불가피했다. 어차피 반발할 거라면 자신이 가진 명분을 분명히 하고 승부를 거는 것이 오히려 돌파력이 더 생길 수 있었다고 본다.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치적 리더십은 결국 정치적 견해의 영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견해에 대해서 확고하게 발언하지 못한다면 리더십은 포기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안철수 대표가 주도하는 통합 논의를 적극 지지하기 어려웠다.
두번째로 기존 통합 논의에 적극 동조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른바 ‘구멍난 항아리 론(論)’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나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이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하지만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국민의당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이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통합을 주장하시는 대부분의 당원들과 내가 결정적으로 의견이 다른 지점이다. 통합이 국민의당의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독에 물을 담았는데 물이 점점 줄어든다. 그 이유는 독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독의 구멍을 때우는 것이다. 물을 붓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지금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독에 물을 붓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자체는 좋은 일이다. 우선 독에는 물이 더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독의 구멍을 때우지 않는다면 얼마 못가서 다시 독의 물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이 있지만, 그나마 소 잃은 다음에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외양간도 고치지 않고 또 소를 사오면 그 소가 제대로 간수될까? 그런 걸 일러서 소망적 사고라고 한다.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이 자칫 이런 결과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의 ‘구멍’은 무엇일까? 나는 정치 컨텐츠의 부재라고 본다. 새정치를 내걸고 당을 만들었지만 그 새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강령과 규약에서 기존 정당과 다른 내용이 있었나? 내가 알기론 없다.
그저 안철수라는 정치인 개인의 영향력과 대중적 인기에 의지했을 뿐이다. 안철수 개인이 유능하고 청렴하기 때문에 그에게 맡겨주면 잘해낼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기존 정당들보다 더 수준 낮은 구태정치이다. 그래서 나는 통합 논의에서 이 문제가 중점적으로 거론됐으면 했다. 그랬으면 훨씬 흔쾌히 통합 논의에 참여했을 것이다.
사실 통합 반대파들도 이런 논점을 갖고 통합에 반대했으면 훨씬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통합 반대파들이 통합을 추진하는 안철수보다 더 정치적으로 앞서지 못했다고 본다. 스탠스만 보자면 안철수가 좀더 전향적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 리더십의 개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본다.
아무튼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도 일단은 통합에 찬성한다. 통합은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당을 친노좌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통합은 필수이다.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정치 담론집 <호남과 친노> 저자. 호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인종주의적 호남 혐오와 반기업과 반시장 정서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의 극복이라는 과제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제3의 길' 공동대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