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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1 1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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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시장경제의 필수요소, 거래 쌍방이 서로 믿어야 거래 일어나고, 신뢰도 높아야 투자 발생
–대항해 시대에 네덜란드가 유럽 상선의 80% 보유한 것은 네덜란드 선원의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
-추위와 굶주림으로 18명 중 8명 사망… 생존에 필요한 화물에 손 안대고 돌아가 고객에게 돌려줘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의하면 ‘신뢰’는 시장경제 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트러스트: 사회도덕과 번영의 창조』). 거래 쌍방이 서로 믿을 수 있어야 거래가 일어나고, 신뢰도가 높아야 투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세계 해운업을 제패했던 네덜란드의 경우가 그 좋은 예다.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정도의 크기이고 그나마 경상남도 정도의 지역이 해수면보다 낮아 농사도 짓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다. 동화처럼 보이는 나무 신발 클룸펜은 늘 젖어 있는 길을 걷기 위한 것이었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예쁜 풍차는 바닷물을 퍼내기 위한 장치였다. 게다가 80년 동안 스페인의 가혹한 식민 통치도 받았다.


이렇게 열악한 지형에 작은 식민지였던 네덜란드가 17세기에 유럽의 패권국가가 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신뢰’에 있었다. 대항해 시대에 네덜란드는 유럽이 보유한 총 상선의 80%를 보유할 정도로 해운업이 발달했는데, 그 이유는 네덜란드 선원들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빌렘 바렌츠 선장의 이야기이다(주경철 『문명과 바다』).

 

바렌츠 선장은 북극해를 넘어 동쪽으로 나아가면 아시아 지역에 더 빨리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북극해는 빙하가 장애물이지만, 여름이면 빙하가 녹아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1596년 여름 역사적인 동북 항로의 개척에 나섰다. 그러나 북극해에 도착하니 배 앞에는 녹지 않은 빙하가 가로막고 있었고, 다른 빙하가 움직여 그들 뒤의 지나온 길도 막고 있었다. 그때부터 선원들은 혹한의 북극해에서 겨울을 견뎠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18명의 선원 중 8명이 사망했다. 화물 중에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물건도 많이 있었으나, 바렌츠 선장은 고객의 위탁상품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8개월 뒤 러시아 상선에 의해 구조되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바렌츠 선장은 화물주인들에게 위탁물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다.

 

▲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발견 기념비


이 소문이 유럽으로 퍼지자 네덜란드 상선에 대한 평가가 높아졌다. 오늘날 같은 보험 제도가 없던 그 시대에 신뢰는 네덜란드 상선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켰다. 당시 전 유럽이 보유했던 대형 범선 2만 척의 80%인 1만 6천척을 네덜란드가 보유할 정도로 네덜란드는 대항해 시대의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했다(김승욱 in 『오래된 새로운 비전』).

 

‘인간이 먼저다’ 같은 반론은 생각하지 말자. 시장경제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말해주는 일화이므로. 그리고 모든 일화는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언제나 다소 환원주의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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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역서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사상의 거장들’ 외 다수.
    저서 :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잉여의 미학’,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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