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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06 23:45:05
  • 수정 2019-03-06 23: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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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2012년 4.11 19대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정국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던 좌우 이념적 갈등 속에서 조락(凋落)하고 있던 이 나라 보수세력의 운명에 관한 필자의 상념(想念)을 적어서 <한국논단>(2016.4.10자)에 게재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필자는 그 때의 우려가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버린 것을 실감하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 속에서 이 나라 보수 애국 세력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이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때의 글을 다시 여기에 수록한다. (李東馥)


대한민국의 이념적 표류와 방황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보수’(Conservative)와 ‘진보’(Progressive)로 편이 갈라진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은 어쩌면 4월11일 실시된 제19대 국회의원총선거와 오는 12월19일 실시될 제18대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새로운 이념 지형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오늘 날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은 ‘보수’․‘우파’ 성향의 한나라당 후신(後身) 새누리당이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통합당(통합민주당 후신)과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 후신) 등 ‘좌파 연합세력’의 협공(挾攻)으로 수세(守勢)에 몰려 있는 양상(樣相)을 보여 주고 있다. 4.11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야당연대(野黨連帶)’라는 거창한 이름의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새누리당을 압박했고 이들의 공세(攻勢)의 예봉(銳鋒)을 못 견딘 새누리당은 한 때 당의 강령에서 ‘보수’ 표현을 삭제하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검토하다가 당 내외에서 논란에 휘말린 끝에 일단 없던 일로 돌리는 촌극(寸劇)이 연출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李明博) 정권이 지속된 지난 4년간 새누리당의 전신(前身)인 한나라당은 ‘좌파(左派)’ 성향의 야당 연합 세력의 정치공세에 밀려서 연이은 좌(左) 클릭을 통한 ‘탈보수화(脫保守化)’의 행보(行步)를 계속해 왔었다. 이번 4.11 총선의 공천후보 면면(面面)은 인적(人的) 구성에서 새누리당의 ‘탈보수화’가 현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이 내놓은 선거 공약도, 통합민주당의 ‘전면 복지(福祉)’와는 사실상 용어만을 달리 하는 ‘맞춤형 복지’ 공약이 말해 주는 것처럼, ‘좌향좌(左向左)’의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선거정국의 흐름으로 볼 때 이 같은 새누리당의 ‘탈보수화’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 것인지는 예단(豫斷)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10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합의, 채택한 ‘공동정책 합의문’은 양당이 연합하여 4.11 총선거와 12.19 대선을 제패(制覇)하고 차기 정권을 장악했을 때 대한민국의 전도(前途)가 급격한 좌선회(左旋廻)일 것임을 명백히 해 주었다. 이 경우, 새누리당이 과연 ‘보수’․‘우파’ 세력의 구심체(求心体)로 살아남을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가능해 보이지 않는 것이 작금의 실정(實情)이다. 4.11 총선거에서 새누리당에 의한 원내 안정과반수 확보가 사실상 무망(無望)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가령 새누리당이 과반수 미달의 원내 제1당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는데 성공할 경우 이념적으로 어떠한 정향성(定向性)을 추구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표(票)밭에서의 거부 반응에 충격을 받은 새누리당은 옥쇄(玉碎)를 각오하는 공격보다는 자구책(自救策)으로 더 이상의 ‘탈보수화’로 표심(票心)과의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은 ‘패배주의(敗北主義)’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보수’․‘진보’ 논쟁은 ‘개혁’과 ‘변화’를 쟁점으로 하여 마치 이를 ‘주장’하는 세력과 ‘거부’하는 세력 사이의 갈등인 것처럼 왜곡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일컫는 ‘좌파’ 세력들이 ‘우파’ 세력을 ‘보수’뿐 아니라 ‘수구(守舊)’․‘반동(反動)’ 세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 붙여 매도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개혁’과 ‘변화’를 쟁점으로 삼아 ‘보수’ 세력을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중대한 사실의 왜곡이다. ‘보수’에 대해 교과서적인 정의를 남겨 놓은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1729-1797)가 갈파(喝破)한 것처럼 ‘보수’의 입장은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크에 의하면 ‘개혁’과 ‘변화’에 대한 ‘보수’의 입장은 “새로운 변화의 요소들을 완만하고 신중하게 이미 검증된 기존 제도에 접목시키자”는 것이다. 곧 ‘검증’을 통한 ‘변화’의 신중한 추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자칭 ‘진보’ 세력은 일관되게 ‘보수’ 세력을 가리켜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라고 매도하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에 있었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시)의 연세대에서의 강연이다. 그는 “한 마디로 ‘보수’는 일체의 변화를 거부한다”고 매도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弱肉强食),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노무현 씨의 이 같은 주장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의 가나에나 견주어지고 필리핀의 한 신문이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사설을 게재할 정도로 낙후된 나라였다. 더구나 한국은 천연 자원도, 산업 기술도, 자금도, 시장도 없는 가운데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일으킨 6.25 전쟁의 전화로 온 나라가 폐허 더미로 변해 있는 절망의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북한으로부터의 계속되는 안보 위협 속에서 “일면 국방, 일면 건설,” “하면 된다,” “잘 살아보자,”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불사조(不死鳥)처럼 일어나서 불과 2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세계 200여개 국가 가운데서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루어 낸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5천년 민족역사를 통해 과거 어느 때에도 이룩하지 못했던 기념비적 변화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엄청난 변화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이다. 이 변화의 주인공은 이 나라의 ‘우파’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이 나라의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은 이 같은 대한민국의 변화에 동참하기는커녕 심지어 지지해 준 사실도 없었다. 예컨대, 1965년의 한일 국교정상화, 1960년대의 국군 월남 파병, 경부고속도로 건설, 새마을 운동 등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하는 기관차(機關車) 역할을 했던 역사(役事)들이 힘겹게 추진되는 동안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의 어느 누구도 이들 중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도 참여는 물론 찬동한 사실이 없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이 같은 성장과 발전의 길을 개척하는 동안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파생된 인권탄압, 빈부격차 등을 시비하는 왈 ‘민주화투쟁’에만 전념했을 뿐, 삽 한 자루, 곡괭이 한 자루를 잡아본 사실이 없었다. 당시 야당 지도자들은 심지어 불도저의 앞에 드러누워서 몸으로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저지하려 시도하기까지 했었다.


사실은,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보수’는 반드시 ‘우파’와의 동의어(同義語)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원론적 차원에서는, 독립된 하나의 정치사상이나 이념체계가 아니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독립된 이념체계가 아니라 ‘공산주의’(Communism)와 ‘파시즘’(Fascism)을 양극(兩極)으로 하는 ‘좌’와 ‘우’의 대립적 이념구도 안에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념체계들이 혼재(混在)하고, 공존(共存)하고, 타협(妥協)하면서 서로 수렴(收斂)될 수 있게 하는 ‘공간(空間)’을 제공해 주는 하나의 ‘그릇’이지 그 ‘내용물’이 아니었다. 그러한 뜻에서 ‘보수주의’는 ‘진보주의’(Progressive)와 대칭(對稱)을 이루는 용어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주의’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었다. 따라서, ‘보수’의 반대어는 ‘진보’가 아니다. ‘보수’의 반대는 ‘급진’(Radicalism)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논쟁이 표면적으로는 ‘보수’ 대 ‘진보’의 갈등관계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피상적(皮相的)인 것일 뿐, 그 내용물은 엉뚱한 다른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갈등은, 실제로 내용면에서는, 한국 사회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좌’와 ‘우’의 두 적대적(敵對的) 이념 사이에서 전개되는 남북간 체제경쟁의 대리전쟁(代理戰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상호 보완적인 ‘보수’․‘진보’ 논쟁인 것처럼 분식(扮飾)되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의 ‘보수’는 곧 ‘우익(右翼)’과 동의어(同義語)가 아니며 ‘보수’의 입장은 오직 1948년 남북의 국가분단 이래 ‘우파’ 세력이 올바르게 ‘선택’한 가치에 찬동하고 이를 지지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 사회의 ‘보수’의 관심사는 ‘진보’와의 투쟁이 아니다. ‘보수’의 진정한 관심사는 건국 이래 ‘우파’ 세력의 주도 하에 오늘의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발전과 번영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성취(成就)’를 소중하게 수성(守成)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요소들을 완만하고 신중하게 이미 검증된 기존의 성취에 접목시키자”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한국적 ‘보수’가 시비하는 상대는 순수한 ‘진보’가 아니라 ‘진보’라는 옷으로 분장(扮裝)한 위장(僞裝) ‘친북’․‘종북’ 세력이라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도 2천3백만 북한동포들을 상대로 하는 ‘친북’을 시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보수’가 문제 삼는 대상은 겉으로는 ‘진보’라는 탈을 쓰고 실제로는 이 나라의 ‘국가분단’을 강요하고, 6.25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을 도발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2천3백만 동포들을 상대로 공산주의 형 인간으로의 인간개조를 실험하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이미 거대한 ‘수용소군도’인 북한에서 수백만명을 굶겨 죽이고 수십만명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며 수십만명으로 하여금 중국 땅에서 유리걸식(遊離乞食)하게 만든 범죄집단인 세습 ‘수령독재’ 체제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종북’ 세력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적 갈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의 남북분단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은 대한민국이 태생적(胎生的)인 ‘반공(反共)’ 국가라는 사실이다.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주역들이 일시적으로 ‘통일’을 유보하고 ‘분단’을 선택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을 추진했을 때 그들은 위대한 역사적 ‘선택’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반공’을 ‘선택’했다. 그들이 선택한 ‘반공’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즉 ‘민주주의’와 ‘자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경쟁사회’, 그리고 ‘개방’과 ‘국제화’였다. 이에 반하여, 북한 땅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별개의 ‘국가’를 불법적으로 수립한 공산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주역들과는 상반된 ‘선택’을 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독재’,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기초한 ‘명령사회’, 그리고 ‘폐쇄’와 ‘고립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 때 이루어진 남북의 ‘선택’은 곧 ‘체제’와 ‘이념’의 선택이었다.


‘분단’은 남북의 두 상이한 ‘체제’ 사이에 가혹한 경쟁을 강요했다. 어느 ‘체제’가 보다 더 우월한 것인가가 걸린 사활(死活)을 건 체제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분단 당시는 북한의 경제가 남한을 압도하고 있었다. 남한이 북한에 비해 유리했던 것은 인구와 농업 생산뿐이었다. 그 밖의 모든 경제 지수는 북한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주었다. 1945년의 통계수치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의 98%, 유연탄의 87%, 역청탄의 98%, 전력의 92%가 북한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1960년의 통계에 의하면 비록 GNP에서는 19억 달러 대 17억 달러로 남이 약간 앞섰지만 1인당 GNP는 94 달러 대 137 달러, 수출액은 3,300만 달러 대 15,400만 달러로 북한 경제가 남한을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북한의 본래의 경제구조는 ‘남농북공(南農北工)’•‘남경북중(南輕北重)’의 전형적인 상호보완형으로 북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분단의 시점으로부터 64년이 지난 오늘의 남북한의 경제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일으켜서 이미 비교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2010년 현재 남북한의 경제력 지표는 남한이 북한에 비해 명목상 GNI가 39배, 1인당 GNI가 19.3배, 무역 총액이 213.8배 (수출이 343배, 수입은 159배), 예산규모가 33.5배, 발전용량이 11배, 발전량이 20.7배, 원유도입량이 225.4배, 수산물 생산량이 4.9배, 자동차 생산대수가 1,068배, 도로 총연장이 4.1배, 항만 하역능력이 22.4배, 선박 보유 톤수가 17.8배임을 보여준다. 북한은 아직도 남한에 비해 철광석 생산량이 10배, 석탄 생산량이 10배이나, 남한은 북한에 비해 비철금속을 1.5배, 강철을 46.1배, 시멘트를 7.5배, 비료를 6.1배, 화섬을 48.8배 더 생산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는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G20 정상회의와 세계 핵안보 정상회의의 주최국이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의 경제는 북한이 국가예산을 편성하는 것을 중단한 1994년 이래 선고만 안 되었을 뿐이지 사실은 실질적인 국가파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소위 ‘고난의 행군’ 기간에 300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餓死)하는가 하면 수십만명의 북한 동포들이 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불법 입국한 뒤 온갖 사경(死境)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고 있으며, 배급이 끊긴 북한 주민들이 서방세계의 인도적 지원으로 겨우 집단 아사를 모면하는 가운데 수십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 세계의 모든 평가기관들이 북한의 경제를 세계 200여개국 가운데서 바닥을 기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이 1차 7개년 계획에 착수한 직후 1962년11월 김일성이 북한 동포들에게 약속했던 “이팝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그 어느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이 같은 그림이 1948년에 이루어진 남북한의 상반된 ‘선택’의 결산표다. 60여년간 진행되어 온 ‘체제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승자(勝者)가 되었다. 한반도에서 전개된 ‘좌우(左右)’의 체제경쟁은 ‘우파(右派)’의 압승으로 귀결이 난 것이다. 자원, 기술, 자본이 없이 있는 것이라고는 인력뿐인데 더하여 북한으로부터 끊임없이 계속되는 안보 위협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발전과 번영을 이룩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미동맹이 없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기적이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미동맹이라는 ‘우파’적 가치들은 대한민국이 남북 두 체제간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만든 보증수표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성공적이었던 다른 나라에서도 수백년, 수천년이 걸렸던 산업화를 불과 2-30년 사이에 이룩할 수 있게 한 비결은 따로 있었다. 산업화의 주역들이 ‘선택’한 ‘압축성장’이 그것이었다. ‘압축성장’에는 대가(代價)가 수반되었다. ‘압축성장’은 필연적으로 ‘인권’과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대한 일시적•부분적 유보를 강요했고 그 결과로 사회적 갈등을 파생시켰다. 대한민국은 북으로부터의 안보 위협과 사회적 갈등을 무릅쓰고 초스피드의 ‘압축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일부 ‘자유’의 억압과 ‘인권’의 제약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인하여 초래된 정치적•사회적 갈등의 홍역을 ‘민주화’의 진통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또 한 가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냉전(冷戰)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오늘날 한반도 밖의 세계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동서(東西) 냉전체제가 해체되어 ‘탈냉전(脫冷戰)’ 상황이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반도 밖의 일이지 한반도 안의 상황은 아니다.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전적 대결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의 제공자는 당연히 북한이다.


김씨(金氏) 일가의 봉건 세습왕조 체제를 접목시킨 가운데 아마도 지금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전근대적인 스탈린식 공산당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 여전히 냉전시대의 유물(遺物)인 대남 적화전략(赤化戰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하여 한미동맹 해체를 추구하여 한국 사회의 안보 불안 심리를 선동․조장하고 아울러 한국 사회를 여러 요소별로 이간․분열시켜 사회불안을 조장함으로써 폭력혁명의 분위기를 성숙시키겠다는 ‘통일전선(統一戰線․United Front)’ 전략에 집착하고 있다.


이 같은 대남전략의 틀 속에서, 남북대화는 ‘통일전선’의 한 가지(枝)일 뿐이다. 북한의 ‘통일전선’은 그 기본으로 한국 사회의 소외(疎外)된 반체제 세력과 제휴•연대하여 이들을 ‘친북(親北)’․‘종북(從北)’ 세력으로 양성하고 조직화하는 한편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여 선거라는 합법적 방법을 통하여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용공(容共)’․‘연공(聯共)’ 사회로 변질시키거나 아니면 이들을 사주(使嗾)하여 일거에 한국 사회를 공산화(共産化)시키는 ‘폭력혁명’을 추구한다. 이것이 곧 ‘하층 통일전선’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하층 통일전선’ 전략의 추진이 용이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막강한 ‘반공’ 체제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한이 들고 나온 우회전략(迂廻戰略)이 ‘상층 통일전선’이다. 곧 남북대화가 그것이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하여 추구하는 것은 이를 통하여 ‘하층 통일전선’ 전략을 추진하는데 방해가 되는 한국 사회의 법률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을 제거하고 반대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본래의 ‘통일전선’ 전략에 의한다면 북한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정부당국은 ‘타도’와 ‘전복’의 대상이지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북한은 이 같은 ‘통일전선’ 전략을 전술적으로 수정했다. 북한은 ‘타도’와 ‘전복’의 대상인 대한민국 정부당국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전술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당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대한민국의 ‘타도’와 ‘전복’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대한민국의 ‘법률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을 스스로 제거하게 하려 한 것이다.


이 같은 남북대화를 가리켜 북한은 ‘상층 통일전선’이라고 일컬었다. 이 ‘상층 통일전선’의 유일한 목적은 ‘하층 통일전선’으로 가는 ‘교량(橋梁)’으로 기능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통일전선’ 전략의 틀 안에서 북한은 시종일관 한 가지 총력전(總力戰) 수행에 집착해 왔다. ‘사상전(思想戰)’이다. 사상전은 곧 ‘정신전(情神戰)’이었다 자기측 주민들은 집단적 최면식 세뇌교육으로 철저하게 단속하면서 남한 사회 주민들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장기(長技)인 합법과 비합법을 배합(配合)한 선전․선동과 지하당 조직 공작을 집요하게 전개하는 것 곧 ‘사상전’의 내용이다.


▲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대한민국 안에서 ‘종북’ 좀비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같은 북한의 ‘사상전’ 공세 앞에서 치명적인 취약점을 들어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사회에는 북한이 전개하는 그 같은 ‘사상전’에 이용될 수 있는 많은 ‘숙주(宿主)’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당시)이 평양에서 북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과 합의하여 공표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대한민국 안에서 ‘종북’ 좀비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구 남노당(南勞黨)과 구 통혁당(統革黨) 및 남민전(南民戰) 잔존 세력들과 북으로부터의 남파(南派) 공작원 및 ‘386’ 등 자생적(自生的) ‘종북’ 좌익 세력이 통합민주당, 민노총, 전교조를 필두로 수많은 ‘종북’ NGO 단체에 가담하여 북한 대남공작 기관과의 연계 속에서 합법․비합법 활동을 공공연하게 전개하는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2중대로 역할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통합당이 통합민주당의 2중대가 되고 더 나아가 새누리당이 민주통합당의 2중대가 되어서 북한의 대남전략 수행의 하부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소이(所以)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하여 기성세대의 도덕적 해이(解弛)와 안일주의(安逸主義) 및 권위주의 등에 식상(食傷)하여 기성세대와의 일체의 소통(疏通)을 거부하고 있는 2040 세대의 존재는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의 활동 공간을 나날이 더욱 축소시켜 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이 과연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를 지켜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주류 세력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결국 금년의 양대 선거 결과에 의하여 좌우될 것이 틀림없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임박한 김정일의 사망을 앞두고,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들이 즐겨서 입에 올렸던 화두(話頭)는 ‘급변사태(急變事態)’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내부 흐름은 금년의 양대 선거를 통하여 문제의 ‘급변사태’가 남한에서 먼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보수’ 세력 인사들의 머리에 심어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의 앞날에 희망이 있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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