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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31 08: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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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쓰는’ 경우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려’ 하지만, ‘남을 위해 쓰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시장에서보다 정치적 시장에서 더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는지 모른다
-사회주의적 복지정책보다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노동자•하층민들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


복지 지출은 계속 확대되고 복지 사업은 비효율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라는 최광 교수(in 『오래된 새로운 전략』)의 논의를 읽으며 나는 얼핏 그레마스의 행위자 이론을 떠올렸다. 발신자, 수신자, 대상이라는 기호학의 행위자 이론을 적용하면 이 질문의 답이 확실하게 나올 것이다.


우선 Δ누가 돈을 쓰는가, 돈을 쓰는 주체 즉 발신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Δ그 돈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즉 수신자는 누구인가. 다음에 Δ그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쓰는가 즉 무엇을 얻기 위해 돈을 쓰는가. 다시 말해 돈쓰는 행위가 추구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라는 세 가지 행위자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돈을 쓰는 행위는 자기 돈을 쓰는 것과 타인의 돈을 쓰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돈’을 쓰는 경우 최대한 절약하려 하지만, ‘남의 돈’을 쓰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가령 회사 접대비로 점심을 먹는 경우, 회사원들은 점심 비용을 가능한 한 싸게 하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 청년들에게 일률적으로 50만 원씩 주는 정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나를 위해 쓰는’ 경우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려’ 하지만, ‘남을 위해 쓰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살 경우 최대한 가성비 높은 물건을 구매하지만,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구입할 때는 그 사람의 선호를 정확히 모르므로 상품의 가치를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대충 사게 된다.


그럼 타인의 돈을 타인을 위해서 쓰는 경우는 어떠할까? 회사 접대비로 친구에게 한턱 사는 회사원의 경우. 이 때 그는 비용을 절약하려는 생각도, 친구가 매우 좋아할 식사를 사려고 애쓸 생각도 별로 없다. 굳이 결정하라면 친구의 기호를 희생시켜 자기의 기호를 만족시키려는 강한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복지 관련 정부 예산 지출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복지 예산 집행의 핵심은 타인의 돈을 나를 위해 쓰거나 또는 남을 위해 쓰는 것이다. 여기서 타인의 돈은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이 세금을 쓰는 일에 정책담당 관료나 정치가가 개입한다. 국회의원들이 예산 법안에 투표하는 것도 타인의 돈을 (즉 국민이 낸 세금을) 쓰는 것인데, 어느 때는 자신들을 위해 (자기 선거구 관리를 위해) 쓰고, 또 어느 때는 다른 타인(국민 혹은 지역구민)들을 위해 쓴다. 담당 관리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돈 아닌 타인의 돈(세금)을 또 다른 타인(국민)을 위해 지출하는 것이다.


핵심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타인의 돈을 또 다른 타인을 위해 지출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수혜자들에게 가장 유익하게 돈을 지출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호의 때문일 뿐이다. 관리들 혹은 국회의원들은 부패에 가담하거나 사기를 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 개인의 고매한 인격뿐이다. 복지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지출이 낭비되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그토록 많은 정책들이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빈곤층에게 혜택을 주기보다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 혜택을 주는지, 우리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시장에서 인정해줄 기술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금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쟁탈전에 이기는 데 필요한 기술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쩌면 경제적 시장에서보다 정치적 시장에서 더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타인의 돈을 타인에게 지출하는 형태의 복지 모델은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도덕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모델은 관련된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청년들에게 일률적으로 50만 원씩 준다느니 등의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들은 자기 돈 아닌 타인의 돈(국민의 세금)으로 선심을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들이 거의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지닌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한편 돈을 받는 집단은 자립 능력, 자기 결정력이 박탈되면서 어린이와 같은 의타심만 갖게 된다. 결국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돈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당당하게 자립하는 품위 있는 사회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자들, 하층민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적 복지 정책보다는 자본주의의 시장경제가 훨씬 더 그들에게 유리한 제도임이 분명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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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역서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사상의 거장들’ 외 다수.
    저서 :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잉여의 미학’,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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