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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15 10: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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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비율 높은  대한민국, 10명 중 8~9명이 5년 안에 망하고,  대부분 현재 최저임금도 감당 못해
-무상급식으로 중산층은 돈 아꼈지만 ‘유일한 밥’에 의지하던 저소득층 학생이 먹는 밥은 품질 낮아져
-서울시, 중산층 아이, 재벌 가족의 무상급식 예산 위해 저소득층 중고교생의 학습교재 지원비를 없애


얼마 전 한겨레신문이 주최한 좌담회에 초청받아 여러 정당 관계자들을 만난 일이 있었다.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데, 민주당과 정의당 관계자들의 발언중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말이 있다. “자유한국당은 강자만을 대변하는 줄 알았는데, 약자를 이야기하니 의외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 이게 보수우파적 주장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의 시각이구나. 자유한국당이든, 누구든 우파 성향을 지닌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면, 그 논리와 의도에 대해서는 귀기울이지 않고,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고서 ‘강자만을 대변하는 정치’라고 판단하는구나. 물어보자, 도대체 뭐가 ‘강자만을 대변하는 정치’라는 건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반대하면, 그건 ‘강자를 대변하는 목소리’인가?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 기초노동자들 임금 좀 올려주자는데, 이에 반대하니 꼭 돈 많은 사장님 편을 드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귀기울여본 적 있나? 바로 ‘약자’를 위해서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면, 필연적으로 기초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대폭 감소한다. 생각해보라. 가게를 하는데, 당장 인건비 지출이 확 늘어버리면 그게 감당이 되겠나? 전 세계에서 자영업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고, 폐업률은 80% 후반대를 찍어, 10명 중 8~9명이 장사 시작했다가 5년 안에 망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돈 많이 벌면서, 밑에 사람들 임금 착취하는 사장은 극단적인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현재 최저임금도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최저임금이 급상승 해버리면 고용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피고용자 수를 줄일 수 밖에 없고, 기초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대폭 줄어든다. 특히 그중 경비원 등 기초노동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분들은 말 그대로 삶이 위험해진다. 실제로 최저임금 적용으로 경비원 대량해고 사태 때 집단자살도 있지 않았나. 물론 고용자도 마찬가지다. 연 소득이 천 만원도 안 되는 자영업 하위 20% 포함,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의 경우 여기서 최저임금이 급상승해버리면 그냥 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이래도 최저임금 상승 반대가 ‘강자를 대변하는 주장’인가?

 

복지는 어떤가? 모두를 대상으로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무상복지’, ‘보편적 복지’ 시리즈에 반대하면, 그건 강자를 대변하는 건가?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면, 필연적으로 선별적 복지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모두에게 이것저것 퍼주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게 적다는 말이다. 복지 재원이 한정적이니까 당연한 거다.

 

▲ 학교 급식이 가난한 집 아이에게는 하루 한 끼 먹는 유일한 밥일 수도 있다.


예컨대 무상급식을 생각해보자. ‘아이들 밥 먹는 거 가지고 그러지 마라’는데, 그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무상급식의 최대 수혜자는 중산층이다. 급식비 충분히 감당할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공짜로 밥을 준다니 그 돈을 아끼게 된 중산층이라는 말이다. 생계가 어려워 급식비 감당이 안 되던 아이의 경우 이미 복지재원을 통해 공짜로 밥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에게 공짜밥을 주게 되었다. 그 비용에 의해 다른 복지 예산은 줄어들었고 급식의 질은 떨어졌다.

 

서울시가 무상급식을 실시하면서, 잔반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밥이 맛이 없어지니 버린다는 거다. 밥 굶을 걱정 없는 아이한테야, 그저 맛없는 점심일 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에게는 하루 한 끼 먹는 유일한 밥일 수도 있다. 그 밥의 질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그 뿐만인가? 서울시는 무상급식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저소득층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제공하던 학습교재 지원비를 없애버렸다. 중산층 아이, 재벌 가족 아이들한테 공짜밥 주겠다고, 가난한 아이들로부터 교육의 기회를 박탈해버린 거다.

 

‘무상’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보편적 복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이런 문제를 지닌다. 다른 나라에 비해 세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이 나라에서 복지 재원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복지예산은 꼭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성되어야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받는 복지는 복지가 아니다. 낭비다.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선별적으로 골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질 좋은 도움을 제공해야 그게 복지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건데, 이래도 이게 강자만을 대변하는 주장인가?

 

사실 모든 사안이 다 이렇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하던가. 깊게 생각하지 않은 선의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런 다른 목소리를 도덕적으로 틀린 목소리 취급을 해버린다. 자기들만 옳고, 선하고,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악’이라 생각하게 되는 거다.

 

선진 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답답한 선악 프레임부터 깨야 한다. 기득권, 적폐세력, 일베충, 친일파, 기타 등등 온갖 꼬리표를 붙여가며 상대의 주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까내리기 전에, 일단 한 번 들어보라. 너도 나도, 우리도 저쪽도, 기본적으로는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정치 한 번 만들어보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신들이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원하는 것처럼, 또 당신들이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고자 하는 것처럼, 당신들이 ‘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 같이 숭고한 정의감에 의해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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