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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30 13:09:02
  • 수정 2018-12-05 22: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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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후보가 손을 들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이해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예상했던대로입니다.

그 전에 민주평화당 당대표로는 정동영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바른미래당 당대표 선거에서도 손학규 씨를 둘러싼 안심 즉, 안철수와 그 측근들의 지지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라서 아직 평가는 이릅니다만, 역시 새로운 인물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올드보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의미만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낡았다, 흘러간 물이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부딪히고 있는 현실, 대한민국의 정치가 제기하는 의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분들이라는 얘기일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전당대회 즉 당대표 선거는 한마디로 정치 리더십을 선출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뽑힌 정치 리더십을 표현하는 단어가 ‘올드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정당만의 현상이라면 모르겠는데, 대한민국 주요 정당 모두가 올드보이라면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과 주장, 요구는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닙니다.

세대교체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바뀌는 게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정당이 낡은 인물, 낡은 리더십을 선출하는 사태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당들이 예외없이 리더십의 위기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두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정치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인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87년 체제가 등장한 이후 국회의원들의 교체율이 무려 49%에 이른다고 합니다.

공천을 통한 교체건, 선거를 통한 교체건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해 금뱃지를 단 국회의원 가운데 절반 가량은 다음번 국회에서 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교체율이라고 합니다.

이런 나라가 없다고들 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국회의원을 이렇게 자주 갈아치우는데, 정작 새로운 정치 리더십은 나타나지 않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한국 정치의 미스터리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가령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대중적인 영향력과 인지도, 리더십을 갖고 있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 양김씨나 노무현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들의 리더십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김영삼과 김대중이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 1970년 9월 29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은 2차투표에서 458표를 얻어 51.8%의 과반 득표율로 410표에 그친 김영삼을 누르고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득표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 당원투표가 아닌, 대의원 투표였습니다.

그리고 40대 기수론으로 대표되는,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놓고 대결한 경선이었습니다.


이듬해 4월 27일에 치러진 7대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정책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흑색선전과 지역감정 선동 등 어두운 측면도 있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는 대한민국의 진로를 놓고 자신의 정책과 정치노선을 내걸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대표성을 가진 당원을 상대로 한 유세와 경선 그리고 국가와 정치에 대한 비전의 제시. 이게 7대 대통령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당시 신민당 전당대회는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선거 후보 선출이지만 그 진짜 의미는 정당과 정치를 이끄는 정치 리더십을 선출하고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당 특히 야당에서는 이런 전통이 오랫동안 살아있었습니다.

그런 리더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양김씨였고, 그들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정치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를 무너뜨린 것도 실은 양 김씨였습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자신들의 정치 리더십을 정치적 권위로 활용해 후계 리더십의 창출에 개입했습니다.


김대중이 이른바 ‘젊은 피’를 수혈한다며 386 운동권들을 대거 당에 끌어들이고 공천을 주기 시작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제왕적 총재가 공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경선 원칙도 당원 투표도 사라지게 됩니다. 게다가 87년 체제에서 여론 정치가 강조되면서 여론조사가 정당의 공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정당정치에 대표성과 절차성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대의원들이 투표에 참가했지만 엄연히 당원들의 대표성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득표 상황이 1표 단위까지 기록되어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당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최근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경우 대의원 투표 45%, 권리당원 투표 40%, 여론조사를 5% 반영합니다.


왜 이렇게 복잡한가요?

그리고 그 결과는 표 단위가 아니라, 득표율로 발표합니다.

이게 투명한 절차이고, 정상적인 결과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결과가 왜곡됐을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당대표 선거를 했더라도 노골적인 왜곡과 사기가 개입하지 않는 한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선거의 결과가 아닙니다.

어떤 절차를 거쳐서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가 몇십 몇백 배 더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정치와 정당에는 사실상 토론이 없습니다.

물론 형식적인 토론은 있습니다.

전당대회도 그렇고, 정당의 일상적인 업무 처리에서도 토론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토론은 엄밀히 말해서 토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치와 정당의 토론은 상호 대립하는 주장과 노선이 대립 충돌해야 하고 그 승부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판가름나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당에서 사실상 토론이 없는 것은 의사결정의 구조와 절차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노선을 제기해도 그걸 판단하고 선택해주는 주체와 프로세스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평소에 당의 실력자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교분을 쌓지 않으면 정책도, 노선도 무의미합니다.


지금도 안심이니 유심이니 하는 말이 통용되고,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는 상황이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당의 정책과 노선을 두고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가 분명해져야 합니다.

그 기준은 간단합니다.


분명한 자격기준을 갖춘 당원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토론을 거쳐서 충분한 판단 근거를 갖고 자기 책임 아래 정당의 리더십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준이 무너지고 그때그때 바뀌는 방식에 따라 애매모호한 절차에 의해 정당 리더십을 선출하다 보니 정당에서 토론이 사라집니다.

토론이 사라지니 사실상 정치 리더십이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정치는 사실상 전쟁을 대신한 것입니다.

직접 총칼과 물리적 폭력을 사용해서 승부를 내는 전쟁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자리를 정치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무기는 바로 말입니다.

물리적 폭력 대신 승부를 보는 것은 바로 말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바로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토론입니다.

그리고 그 토론의 내용과 설득력에 의해 정치 리더십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토론이 없는 정당과 정치에서는 리더십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토론이 살아나려면 먼저 당원이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당비 납부와 교육 이수 등 당원의 자격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천과 지역위원장 선임 등 당의 핵심 의사결정권이 주어져야 합니다.


공천심사위원회니 조직강화특위니 하는 말도 안되는 조직들 없애야 합니다.

그런 밀실형 의사결정에서는 당원보다 소수 유력자의 의견이 훨씬 더 결정적으로 반영됩니다.

여론조사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만드는 주범입니다.


지금 한국 정당에서 유통되는 것은 정치적 가치나 콘텐츠가 아니라 정치적 이권입니다.

정상적인 정치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 정치 생태계가 무너져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몇몇 정당의 내부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더불어민주당이니 자유한국당이니 바른미래당이니 하는 정당들 망하면 어떻고 흥하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저들 정당이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당은 국민들 내부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노선과 가치관들끼리 치열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쟁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공직선거 등에서 정당들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해야 유권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정치 노선과 가치관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무너지면 사실상 공직선거 등에서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국회의원을 갈아치워도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 나오지 못하고 올드보이들이 정당의 간판으로 다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와 정당 내부에서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정치권 밖에서 출세했다는 것이 정치 리더십 검증을 대신하게 됩니다.


문재인이나 홍준표, 김병준, 안철수 모두 예외가 아닙니다.

대통령 비서에 인권변호사, 모래시계 검사, 정치권에 알려진 대학교수, 성공한 벤처 사업가라는 것이 정치 리더십입니까? 말도 안되는, 기가 막힌 가치 전도 현상입니다.


정치 리더십은 바로 정치적 대안과 노선 즉 정치적 콘텐츠에 대한 정치적 실천과 대중적 검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정치 리더십은 실은 정치 콘텐츠의 인격화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전통도, 토론의 전통도 매우 약한 나라입니다.

이 문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사회 각 분야의 이슈와 대안이 총체적으로 집결하는 정치 분야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치 리더십이 없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한 대안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적 좌표와 진로를 놓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나와야 합니다.

그 대안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이 정치 리더십입니다.


그 정치 리더십을 창출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무너져 있으면 당연하게 대안도 나오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나 정당의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집중적인 고민과 논의, 대안 모색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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