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두통거리로 등장한 김정은-푸틴 회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배경에는 북한을 이용해 시진핑 주석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북러관계가 마치 군사동맹 수준으로 끈끈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조약에도 푸틴의 허세가 여기저기 담겨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러시아와 북한의 방위 조약은 중국에 새로운 골칫거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러간 조약이 지역내 군사대결 위험을 고조시키면서 미국과 그 동맹국이 주변 지역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냉전적 대결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시그널”이라면서 “중국이 피하고자 했던 중국-러시아-북한 간의 3각 축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처럼 보여 베이징에 더 많은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난해 한미일 정상들이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지역 안보와 관련해 결의를 다진 바 있는데, 이번 북러간의 조약체결로 인해 한미일 3국이 중국 주변을 따라 방어를 강화하고 안보 대응능력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중국 자신이 아닌 북한과 러시아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국으로서는 골칫거리라는 것이다.
NYT는 이어 “푸틴과 김정은의 행동으로 인해 후유증에 직면할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과 서방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켰고, 중국은 러시아를 충분히 견제하지 못한다고 비난받아 왔는데, 이젠 러시아와 북한이 결속함으로써 이웃 국가인 한국과 일본, 미국의 3각 방위 파트너십이 더욱 강화되는 후유증을 몰고 오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를 반전시켜야 하는 시점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할 군수품을 대가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게 된다면 그 여파가 그대로 중국에게 덮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중국 경제 회복에도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는 고민이 있다.
이와 관련해 연세대학교 중국학 교수인 존 델루리는 NYT에 “푸틴과 김정은 간의 새로운 협정은 중국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면서 “시진핑은 고집이 센 북한 왕조와 결코 쉬운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으며, 이제 푸틴이 김정은의 공격적인 성향을 부추기는 것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커졌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과 러시아라는 가까운 두 나라가 중국의 안정성을 해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NYT의 지적이다.
인민대학교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스인홍도 “러시아-북한 조약은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지역의 ‘대결, 경쟁 또는 갈등의 위험’을 ‘상당히 악화’시켰다”면서 “한반도의 평화는 중국의 최우선 과제인데, (북러간 조약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의 군사력 증강을 가져옴으로써 ‘중국의 중요한 이익’ 중 하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만난 푸틴의 의도]
그렇다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을 만난 푸틴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영국의 BBC는 20일, ‘푸틴과 김정은의 우정을 판가름하는 진짜 실세는 중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러간 동맹 강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BBC는 이날 “중국측은 지난달 푸틴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곧바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을 매우 꺼려 했다”면서 “그 이유는 중국이 왕따 국가인 러시아-북한과 한통속으로 엮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BBC에 따르면 중국이 이렇게 북러관계 결속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압박 때문이기도 하다. EU와 나토(NATO)는 중국에게 연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고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마치 북한과 한통속이 되어 러시아를 지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BBC는 “중국은 성장 둔화를 극복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과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면서 “시진핑은 국제사회에서 '왕따 국가' 취급을 받거나 서방 국가로부터 새로운 (경제적) 압력을 받길 원치 않기 때문에,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를 동시에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중국은 러시아에 적당히 힘을 실어주며 미국에 대항하는 연대를 형성하려 하지만, 러시아의 공세적 활동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적으로 돌리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BBC는 특히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강화하면서 도발할수록,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갈등을 접고 미국과 방위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면서 “긴장이 고조될수록 더 많은 미국 군함이 태평양 해역에 출몰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 주석이 김정은의 '대담함'도 못마땅해 한다”고 설명했다.
더더욱 중국이 크게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북한의 무기가 현대화되고 첨단화된다면 곧바로 ‘동아시아판 나토’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미 이러한 ‘동아시아판 나토’ 형성 주장이 분출되고 있으며 이번 푸틴의 북한 방문으로 이 문제는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도발이 이제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 지역도 러시아의 공격적 행동에 대응하기 위한 ‘동아시아판 나토’를 결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에게는 최악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김정은을 만나고 또 상호방위조약까지 체결한 배경에는 중국이 푸틴의 러시아와 일정 부분의 거리두기를 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결코 러시아와 한 묶음으로 치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는 갈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와는 달리 경제구조 자체가 글로벌 경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다보니 이미 전쟁범죄 국가로 낙인찍힌 러시아와 한 편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엄청난 피해를 불러 올 수 있다.
특히 중국이 러시아에 수출하는 품목들 가운데 이중용도 제품들에 대해 미국이 세컨더리보이콧을 거론하면서 강제 제재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를 한 상황에서, 더 이상 러시아와 무역 거래를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중국은 이미 이에 대한 통제를 들어갔다. 그러나 중국의 그러한 조치는 러시아의 전쟁 지속을 어렵게 할뿐더러 당장 군수물자 생산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재고(再考)를 바라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푸틴은 지난달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사실상 시진핑의 냉대를 받으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과의 결속을 과시하면서 중국의 시진핑을 압박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만 국립 쑨원대학교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연구소의 궈위렌 부원장은 “푸틴의 북한 방문 목적 중 하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이고, 북한 또한 경제적 지원을 중국에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푸틴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VOA(미국의소리)에 설명했다.
중국 전략분석 싱크탱크의 덩이원 연구원도 VOA에 “푸틴의 방북은 러시아에 다른 우방이 있다는 것을 중국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푸틴의 판단 착오, “러-북의 명줄은 중국이 쥐고 있다!”]
그러나 푸틴의 그러한 계산은 그야말로 판단착오였다. 이는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원이 생각만큼 통 크게 반영되지 않는 것에 대해 김정은은 푸틴의 러시아와 결속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반대급부의 선물을 받아 보려 했지만 김정은은 이를 통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아졌다.
이와 관련해 BBC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에 막혀있는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사주고 있는 나라가 중국인데 어찌 감히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북한 입장에서도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더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의 주 무역 대상국은 중국이다. 90% 이상의 물자교역이 중국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문을 닫으면 북한은 그날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BBC는 “북-러 양국 정상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두 국가간 우정의 한계는 분명히 있고, 그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북한과 러시아의 운명의 키를 시진핑 주석이 쥐고 있는데 아무리 두 나라가 무슨 수를 쓴다고 해서 그대로 이뤄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푸틴이 김정은과 약속한 사항들,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렇게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이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본다면 푸틴이 북한에 가서 호기롭게 약속했던 사항들이 과연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사실 푸틴이 김정은과 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전에 시진핑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의 찜찜한 표정을 본 푸틴은 외교사절단을 중국으로 보내 방북 결과에 대한 설명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을 진짜로 화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푸틴의 평양 방문 목적은 북한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포탄과 미사일, 기타 지원을 계속 제공받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 대가로 석유와 식량 지원 등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는 푸틴의 약속들은 당장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북한이 공개한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전문은 총 23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약 제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푸틴의 이러한 협약이 과연 실제로 그러한 상황을 가정한 진지한 약속인지는 의문이 간다. 단서 조건 자체가 ‘침공을 받았을 경우’다. 이는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존재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간다. 오히려 이를 근거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4조에 보면 각국의 법에 따라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 또한 허점이 많다. 부수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면 근거 조항이 실효되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한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러시아가 과연 북한을 지원할 능력이 되는가의 문제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세계 제3위의 군사력을 보유했다고 강조해 왔던 러시아의 실체가 이미 드러났는데 어찌 감히 북한에 지원군을 보내겠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러간 체결한 조약 전문을 평양은 공개했지만, 크렘린궁은 여전히 비공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랬던 푸틴은 방북 직후 건너간 베트남에서 두 정상이 체결한 공동성명 전문을 즉각 공개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또한 김정은은 북러간 관계를 동맹이라고 표현했지만 정작 푸틴은 동맹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푸틴의 허언과 자기 과시, 그리고 허장성세는 이번 평양 방문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것이 푸틴과 김정은간 회담의 실체 아닐까?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