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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우크라에 항복 촉구한 교황, 유럽 지도자들 ‘부끄럽다!’ - 역풍 맞은 교황의 ‘우크라’ 백기 발언 - 유럽 지도자들, 교황 발언에 ‘부끄럽다!’ - 교황, 종교적 신념 때문에 푸틴 규탄 않는 것
  • 기사등록 2024-03-12 12: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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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 맞은 교황의 ‘우크라’ 백기 발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전쟁 종식을 위해 섣불리 우크라이나에 '백기' 등의 단어를 쓰면서 협상의 필요성을 제기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유럽 지도자들이 교황의 발언을 강력 비판하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1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현지시간) 공개된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 인터뷰에서 두 전쟁을 놓고 ‘협상은 결코 항복이 아니다. 한 나라를 자살 행위로 몰고 가지 않는 것은 용기’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면서 “이러한 교황의 발언이 나오자 우크라이나 측을 향한 일방적 협상 주장에 유럽 지도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유럽의 지도자들이 집단 반발하게 된 것은 지난 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며 “패배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협상할 용기를 갖는 것이 용감한 것”이라고 강조한 발언 때문이다.


교황은 이어 “협상은 결코 항복이 아니다”라고 말한 후 “튀르키예 등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원하는 나라도 많은데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교황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백기(white flag)’나 ‘패배(defeated)’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특히 교황의 ‘백기’ 발언은 최근 러시아군이 아우디이우카 등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를 속속 장악하고 있는 데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미국 야당 공화당의 반대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지도자들, 교황 발언에 ‘부끄럽다!’]


교황의 ‘백기’ 발언이 나온 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격려하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악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방어하려고 일어섰다”면서 “기독교, 무슬림(이슬람교도), 유대인들 모두가 그렇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군과 함께하는 모든 우크라이나 사제에 감사드린다”며 “그들은 최전방에서 생명과 인류를 보호하고 기도와 대화, 행동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더불어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고자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사실상 중재하려면 2천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는 과거 하얀 벽들로 이뤄진 집과 교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러시아의 포탄에 그을리고 폐허가 됐다”며 “이것은 누가 전쟁을 멈춰야 하는지 매우 역력하게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화를 원하지만 영토를 조금도 러시아에 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10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언급하며 “우리는 다른 어떤 깃발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쿨레바 장관은 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이우스 7세 교황이 독일 나치에 맞서 행동하지 못했다”며 “(바티칸은)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목숨을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와 그 국민을 지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부 가톨릭교회와 독일 나치 세력 사이 협력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백기'를 언급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백기' 발언이 우크라이나 동맹국들의 분노를 불렀다”고 전했다.


에드가르스 링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도 “악 앞에서 항복해서는 안 된다”며 “악과 싸워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악이 백기를 들고 항복한다”고 에둘러 비판에 가세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도 이날 엑스에 “균형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할 용기를 갖도록 격려하는 것은 어떻나”라며 “그러면 협상할 필요 없이 평화가 당장 돌아올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를 정치·군사적으로 강력히 지원해 온 국가 중 하나다.


독일 정치인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을 잇따라 비판했다. 독일 연방하원의 아그네스 스트라크 짐머만 국방위원장은 이날 독일 푼케 미디어 그룹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피해자들이 백기를 올리기 전에 교황은 잔인한 러시아 가해자들이 죽음과 사탄의 상징인 해적 깃발을 내리라고 강력하고 분명하게 요청해야 한다”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그(교황)가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녹색당 소속 카트린 괴링-에카르트 연방의회 부의장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동안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전쟁이 있었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해됐다”며 “당장 전쟁과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푸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크라이나가 단순히 항복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은 침략자에게 그가 불법적으로 빼앗은 것을 주는 것”이라며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멸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알렉산드라 팔켄뷔르흐 주교황청 유럽연합(EU) 대사도 “러시아는 2년 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불법적이고 부당한 전쟁을 시작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함으로써 이 전쟁을 즉시 끝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EU는 우크라이나 측이 제시한 평화계획을 지지한다”고 못박았다.


데니스 라트케 유럽의회(EP) 의원은 “안타깝게도 부끄럽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면서 “우크라이나를 향한 그의 입장은 그의 교황직을 나쁘게 보이도록 한다. 이해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렇게 유럽 각국에서 교황의 발언에 대해 논란이 일자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적대 행위 중단, 용기 있는 협상으로 도달한 휴전을 보여주기 위해 '백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라고 항변했다.


[교황은 왜 푸틴을 규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교황은 전쟁 도발자인 푸틴을 규탄하지 않고 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백기를 들라고 말을 했을까?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논란에 자주 휘말린 지도자도 드물다.


지난해에도 교황은 제국주의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교황은 지난해 8월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0차 전(全)러시아가톨릭청년총회에 보낸 영상에서 “위대한 러시아, 차르의 후예”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교황은 당시 연설에서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와 마지막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신제국주의적 전쟁을 일으킨 상황에서 교황이 과거 러시아 제국주의 역사를 치켜세우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당장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유럽 사회가 교황의 메시지에 대해 바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교황청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교황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미화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교황은 전쟁 발발 두 달여 뒤인 2022년 5월 3일에도 이탈리아 일간지 '라스탐파'에 “러시아 문 앞에서 나토가 짖은 게 어쩌면 푸틴의 행동을 촉발했을 수 있다”면서 전쟁을 유발한 것은 NATO라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됐다.


또한 2022년 8월에도 차량 폭탄에 의해 숨진 러시아의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에 대해 “무고한 전쟁의 희생자”라고 말해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샀다.


이에 교황청은 “교황의 말씀을 정치적으로 재단하지 말라”고 당부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연방에 의해 시작됐다”며 우크라이나를 다독였다. 사실 교황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주체를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러시아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교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줄곧 전쟁의 참혹함을 규탄하면서도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푸틴을 지목해 비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서방의 지도자들이 키이우를 방문했지만 교황은 우크라이나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방문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황의 태도 때문에 서방의 지도자들이 교황에게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들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미국 CBS 뉴스는 지난해 8월 29일 교황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연설 내용을 소개하며 “교황이 러시아에 대한 발언으로 또다시 비판받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물론 교황이 러시아 편을 든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반면 교황은 서로 무기를 거두고 즉각적으로 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황은 또한 대화만이 전쟁을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면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도 반대한다. 이에 대해 갤러거 대주교는 “교황은 대화와 평화라는 근본적인 목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건 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대화와 평화의 다리가 무너질 것을 교황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황의 이러한 판단이 과연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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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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