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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09 0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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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내가 광주의 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서 생활하기 시작한 때는 벌써 40여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일이다. 그 때는 학교 활동이나 학과별 친선 운동경기가 끝나면 잔디운동장 끝 모퉁이에 둘러앉아 언제나 홍탁(洪濁)을 즐기곤 했다. 홍어를 이용해 무친 안주에 탁주(막걸리) 한 사발을 마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홍어의 똑 쏘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삭힌 홍어를 먹는데 수년이 걸렸고, 그런 냄새를 풍기는 홍어 맛을 찾아 가끔 나주시 영산포에 있는 홍어 거리를 찾기까지는 무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부터다.


본초강목에 홍어가 가래를 삭히는 효험이 있다고 적혀 있어서 교직에 있던 나 같은 사람과 가수 등 성대결절을 겪는 사람에게 특별히 좋다고 한다. 실제로 홍어는 목을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삭힌 홍어의 맛을 알기 전까지는 왜 그리 코를 찌를 정도로 심히 삭혀 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좋게 말해 삭힌 홍어이지 그냥 썩혀서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홍어의 경우는 깊은 바다 어류의 특성상 체내 삼투압 조절에 필요한 요소(尿素)가 사람에 비해서 100배 정도 더 많다고 한다. 따라서 숙성된 홍어의 몸 안에서는 세균이 번식할 수 없는 조건이 되며, 이를 먹으면 암모니아가 알카리성으로 변하여 가스가 살균작용을 하여서 장에 청정 작용을 하게 된다.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어 부패가 아닌 발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홍어를 삭힌다는 것은 그래서 자연 그대로 천연 발효식품을 만드는 것이다.


홍어의 냄새는 지독한 음식으로 세계 2위에 올라있다고 한다. 세계 1위는 스웨덴의 소금에 절여 만든 수르스트뢰밍(surstomming)이란 청어 통조림이며, 3위에는 에피큐어 치즈(epicure cheese) 통조림이며, 4위는 북극에 살고 있는 이투이트족 음식인 키비악(kiviak)이며, 5위는 쿠사야(kusaya)라 하는 일본 전통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울로 이사를 와서 인근 시장에 가니 즉석에서 홍어를 묻혀서 파는 상점이 있어서 옛 생각이 떠올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한 근을 사서 먹어 보았지만 숙성된 홍어가 아니고 생 홍어를 묻혀서 팔고 있었다. 홍어는 전라도 지역에서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경상도 지역에서도 제사상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자주 먹는다고 한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생으로 묻혀서 먹지만 전라도에서는 삭혀서 먹는 전통이 있다.


국내 홍어의 최대 주산지는 인천 대청도 부근(여름 철)이고, 다음으로 전남 흑산도(겨울 철)이지만, 경기도 인천 지역에서는 소비량이 너무 적어서 전국 소비 지역인 전라남도 영산포로 운반해 와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체 소비량 중의 95%는 해외 수입산이라 한다.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북미의 미국, 캐나다, 그리고 스페인, 중국, 일본, 뉴질랜드 등 20여 국에서 수입한다. 따라서 흑산도에서 생산하는 홍어는 국내 수요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귀하고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라 한 마리에 100만원도 한다고 한다.


특히 흑산도 홍어를 최고로 손꼽는 이유는 홍어가 산란기에는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흑산도 옆의 영산도라는 작은 섬 주변에서 산란하는데 이 때 잡는 홍어는 알이 꽉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육질도 풍부해 최고로 친다. 부위 중에서 홍어코가 특별한 맛이 있어서 별미이고, 쌀쌀한 이른 봄에 새싹 보리에 된장을 듬뿍 풀어 끓인 홍어애탕(국)은 잊을 수가 없는 깊은 맛을 낸다.


홍어는 다른 말로 해음어(海淫漁), 분어(홍어와 가오리 통칭), 태양어(邰陽漁), 하어(河漁), 비어, 반담어, 석려(石砺)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지역에 따라서도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다. 전라남도에서는 홍해, 홍에, 고동무치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라북도에서는 간재미라고도 부르며, 경상북도 지역서는 가부리, 나무 가부리로, 평안북도 지역서는 간쟁이로, 함경남도에서는 물거미로 부르기도 한다.


홍어의 이야기는 조선 시대 후기 실학자의 대가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의 “자산어보(兹山鱼譜)”에 기록되어 있다. 정약전은 1801년에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16년 동안을 머무르다 세상을 떠났다. 수산물과 바닷새를 기록한 책인 자산어보에서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놈들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는 기록이 있다. 낚시 바늘에 먹이를 끼워서 암놈을 낚게 되면 암놈과 교미를 하고 있던 수놈까지 붙어 올라온다는 얘기다.


홍어를 삭혀서 먹게 된 기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풍랑으로 인하여 산지인 흑산도에서 육지까지 홍어를 배로 옮기는 기간이 길어서 그동안 홍어가 저장고에서 자연스레 발효되었는데, 이를 맛본 사람들이 독특한 풍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기원설은 왜구 침략 때문에 섬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 시키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설이다.


고려시대에 나주는 전국의 8목 중의 하나로 행정, 경제, 문화, 군사 등의 중심지였다. 흑산도와 신안의 여러 섬들은 나주 목의 행정 관할이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있었던 삼별초의 항전을 겪으면서 왜구가 들끓게 돼 조정에서는 섬의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 일대 여러 섬에 사는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켜 섬 전체를 비우는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서 흑산도를 중심으로 많은 영산도 주민들은 배를 타고서 목포를 거쳐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지역에 정착하였다. 당시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어미 섬인 흑산도보다 영산도 주민이 더 많았다고 한다. 나주의 영산포는 영산도 사람들이 피난을 가서 배를 대던 포구였으며, 흑산도를 비롯한 섬 주민들이 대거 거주했던 곳으로, 그래서 지명 또한 영산현이라고 했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90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흑산도에서 나주 영산포까지는 뱃길로만 300리 떨어져 있다. 요즘에는 쾌속선으로 두 시간 정도의 뱃길이지만 그 당시 흑산도에서부터 나주시 영산포까지 돛단배나 풍선(風船)을 타면 보통은 일주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과거에 흑산도 사람들도 홍어를 날로 즐겨 먹었는데 이 같이 먼 일주일 동안의 뱃길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배 안에 두었던 홍어가 자연적으로 삭혀지게 되고, 먹어보니 탈도 없고 맛이 깊고 좋아서 차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나주 지방의 별미 음식이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이와 관련된 가설은 공도(空島) 정책이 풀려가면서 다시 돌아온 섬 주민들이 섬에 두고 갔던 홍어가 삭아버린 것이 너무 아까워 그냥 먹게 된 것이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어떤 설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삭힌 홍어는 우리의 전통적 발효식품으로 기억될 세계적인 발효 식품이다.


대부분의 음식은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맛을 잃으면서 서서히 썩어 간다. 그래서 가능한 오래도록 먹기 위해서 염장을 하고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다. 그러나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해도 맛이 변하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사람도 아무리 장수를 해도 가치를 잃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듣기 좋은 말이 있지만 사실 사람마다 모두 자기 가치를 지니며 살아간다.


김치, 간장, 된장과 같은 발효식품이나 홍어처럼 보관할수록 익어서 맛을 더하는 것처럼 사람도 늙을수록 인품이 더 익어서 인생의 맛을 내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 있다. 배워서 알게 된 얄팍한 지식을 악용해 자기 재물과 권력에 눈이 멀어버리는 요즘의 세상에서도 그 간 알게 된 지식을 늙으며 가슴에 익혀서 지혜와 인격으로 승화시켜서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런 사람은 썩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아무런 쓸모없이 썩어 없어지는 사람과 나이를 먹으며 익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혼을 남기는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인도 싫어한다. 하지만 매일 언론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들의 도덕성 검증이 한창인데, 후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중에서 도덕적 상처가 없는 깨끗한 가정을 볼 수 없다. 국민 모두 닮을 것 같아 걱정스럽지만 어째서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1960년대 이 후부터 양심과 인품과 같은 인간적 가치관 교육을 포기하면서 돈만 벌고 출세만 하면 되는 지식 중심적 교육에 열중했다. 우리들은 지금 돈을 벌고 출세만 할 찬스가 생기기만 하면 양심도 팔고 명예도 팔고 부모까지도 팔아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이러한 인간교육을 포기한지 이제 50년의 짧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현실은 돈과 권력만 탐하는 때 묻은 가짜 지식인과 가짜 권력자가 온 세상을 혼탁하게 했고, 이미 온 국민까지도 도덕 불감증에 빠져버렸다. 교수 사회에서 이러한 혼탁한 정치사회를 “묘서동처(猫鼠同處)”라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뜻이다.


분명 반세기 동안의 잘 못된 교육정책과 무관하다고 할 수가 없다. 식어버린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다시 한 번 회복시키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될 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시간이 흐르며 진한 맛을 더해 가는 홍어와 김치와 같은 진국이 넘치는 세상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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