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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15 12: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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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몇 년 전 공영방송 아침 프로그램에서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일자리’가 생방송 된 후 많은 분들이 상담센터에 찾아왔다. 교육과 상담, 사회공헌형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서울시 50+지원정책은 50세부터 64세의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지만 찾아온 분들의 나이는 40대부터 70대까지 폭이 넓었다. 청장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일이라는 말 속에는 일자리, 일거리, 소일거리, 사회공헌, 재능기부, 자원봉사가 두루 포함이 되지만 퇴직한 후에도 직업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녹아있다. 혹시 아침 방송을 보자마자 불광역까지 달려온 분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뿐이었을까. 인생 2막에서는 일뿐 아니라 재무, 사회공헌, 가족, 사회적 관계, 여가, 건강 영역에서 비중과 속도의 재조정과 뺄셈을 예고한다.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는 분들은 대체로 수동적인 순응의 양상을 보이지만 이미 살아온 여정 속에 자원이 광맥처럼 숨어있으므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이들에게는 보람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지난봄부터 교도소에서 인생재설계에 대해 인성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교도소에서 긴 세월을 보내고 몇 년 내에 출감을 하는 장기수들에게 인생재설계는 절실한 주제이며,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퇴직전후의 베이비부머들에게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퇴직예정자들을 위한 집단상담에서 인생을 무엇으로 상징할 수 있는가 물었다. 여러 가지 대답 중에 ‘인생은 생방송’이라 이미 방영된 내용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 분이 있었다. 인생이 생방송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생방송이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지나가는 것에 대한 회한이나 체념을 동시에 내포한다. 인생이란 녹화하고 편집하여 아무 때나 다시보기를 할 수 있는 재방송이 아니지만 매순간 의미와 가치를 더할 수 있다.


살다 보면 통제 불가능한 일과 통제 가능한 일이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통제 가능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지나간 일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기억 속의 이야기는 대부분 그 당시의 감정과 해석에 의해 편집되고, 그 기억에서 비롯된 신념이나 가치관들은 현재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한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그 당시의 무력감을 스트레스 상황이나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되풀이하거나, 어린 시절 돌봄을 받지 못한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과보호하고 간섭하는 사례가 있다. 그런가 하면 6개월마다 이혼한 부모에게 왔다갔다 살며 낙심했던 청소년이 부모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은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고 생활을 바꾼 경우도 있다. 그 멋진 청소년은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하기도 전에 헤어디자이너로 조기 취업을 했다.


과거는 끊임없이 발목을 붙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단해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대본은 본인만이 바꿔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수용과 긍정적인 의미부여,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자원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갖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일반적으로 인생설계는 1:1 상담과 코칭을 통해서 하거나 그룹으로 진행하며 기존의 일방적인 강의 아니라 직접 체험하며 참여하는 방식을 택한다. 인생설계의 의미를 나누고,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아 정체성을 확장하고,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체계화하고, 인생 전반에 대한 시간 관리와 계획,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이루어가는 지도,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인생설계도를 만든다. 물론 인생설계도는 얼마든지 수정과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며 한 장의 설계도를 만들어 가는 동안 깊이 있는 질문을 계속하여 통찰력을 일깨운다.


100세 시대에 나의 인생시계는 몇 시쯤일까.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해도 점심식사 후에 차 한 잔을 마시며 맞이하는 인생의 오후는 길다. '너는 누구냐'는 신의 물음에 편도나무는 아무 말 없이 아몬드 꽃을 피웠다는데(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나는 무슨 꽃을 피워야 할까. 한 여름 더위가 지나고 가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다른 꽃보다 늦게 피어 가을바람이 불기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창밖의 배롱나무 꽃송이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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