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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15 1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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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도킨스(Dawkins)는 “이기적 유전자(1976년)” 라는 책에서 생물학적 유전자(Gene)와 대비하여 문화적 유전자라는 용어로 “밈(meme)”이라는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복제, 모방을 뜻하는 mimema를 유전자(gene)와 유사하게 한 음절 단어로 표시하기 위해 밈(meme)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다. 인간의 어떤 생각, 행동, 또는 양식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문화 속에서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화 유전자(meme)를 한국 문화에 적용하여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구명하려 노력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로 한(限), 정(情), 흥(興)을 꼽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서는 한(限)이라는 문화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한이 많은 민족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한 많은 세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그 만큼 한은 우리 민족의 타고 난 운명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끝없는 핍박을 당했고, 경제적으로도 무척 가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게 살아서 유독 가난에 관한 속담이 많은 것은 한편으로는 사회생활에서 경제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속담 중에서 “가난은 죄가 아니다” 라는 속담은 가난하다고 해서 기가 죽을 필요가 없다고 용기를 북돋는 고무적인 뜻이 담겨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의 끈질긴 인내와 생활 의욕을 불러일으킨 저력이 되었을 것이다.


한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불행에 대한 자책과 불행에 대한 부당함의 심리가 결합된 복합적인 감정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한은 몇 가지 조건을 통해서 생기게 된다.


첫째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이고, 둘째는 타인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여 고통을 당할 때이고, 셋째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범했을 때다. 이런 조건들이 한이라는 고유한 정서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몇 단계를 거치게 된다. 제1 단계에서 욕구좌절을 겪으면서 분노, 복수심, 회한의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강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해소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제2 단계 과정이 나타난다.


제2 단계에서는 표출하지 못한 억압된 분노와 적개심을 스스로 마음속으로 삭히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재해석 한다. 즉 사건의 책임을 자신에게로 전가시키면서 자기 비하를 하거나 운 또는 팔자 탓을 하면서 모든 책임을 자기 자신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린다. 이렇게 재해석 했던 사건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도 여전히 자신이 억울했음을 느끼게 될 때, 제 3단계로 진행되어 결국에는 감정의 기복이 생기게 되어 흔히 말하는 한을 품게 된다. 이러한 한은 때로는 예술이나 문화와 같은 활동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 같은 한국인의 한(限)이 보편적인 정서로 인식되기까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 학자의 역할도 한 몫을 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 1889~1961)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조선의 예술”이라는 책에서 조선의 역사는 “고뇌의 역사”요, 조선의 예술은 “비애의 미”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2012년)에서 한국 문화의 “밈(meme)을 조사하여 발표한 자료가 있다. 한국문화 관련 교수와 연구원 등 100명을 대상으로 예비 설문 조사를 하고, 다시 그 결과를 1,000여 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 1위는 어울림과 조화였고, 2위가 흥과 신명이었다.


과거에는 한(限)을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정서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 문화의 특징을 한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설문 조사에서 한은 5% 미만으로 그 위력이 낮아졌고, 신명과 흥이나 역동성과 열정 등이 문화유전자로 높게 나타났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군사 독재의 어려운 시대를 겪으면서 그 동안 한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된 면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 한의 문화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닌 역사 속으로 흘러가 버린 듯하다. 지금은 한국인의 여유, 역동성, 열정, 신명, 흥과 같은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라 하겠다.


어느 학자는 한국 문화를 “푸는 문화”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한국 문화에서 한이 “맺히는” 것이라면, 신명은 맺힌 것을 “푸는 것”이다. 한국 문화는 분풀이, 살풀이 등 응어리를 푸는 문화이며 맺힌 것이 풀어지는 상태를 신바람, 즉 신명으로 설명한다.


신명의 특징은 첫째,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수반한다. 신명은 인간 본연의 심(心)과 신(神)이 혼연일체가 된 인간 체험의 전형이다. 이런 현상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예술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아의 경지 체험이다. 신명의 두 번째 특징은 신명의 정서가 주변인들에게 빠르게 전이되는 “감염 현상”이 크다는 것이다. 풍물놀이 현장이나 월드컵 열풍에서 잘 볼 수 있다. 신명의 세 번째 특징은 “난장성”에 있다. 여러 사람이 이리저리 뒤섞어 마구 떠돌아다니거나 뒤죽박죽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인들은 아무리 즐거운 놀이라 해도 난장을 벌이지 않으면 신명이 나지 않는다. 신명을 통해 갈등과 한을 풀어낸 뒤 창조적 에너지가 분출되고 억눌렸던 잠재력이 극대화 된다.


한때는 한이 한국 예술의 대표적 예술 체험이자 미학적 구성 원리로 개념화 되었다. 그러나 이제 민중문화 운동의 미학적 이념이 부각되면서 한국의 문화 유전자 신명은 한국의 원초적 심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한국인의 원초적 심성에 호소하는 문화 유전자 신명은 민중 예술의 여러 장르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음악은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로 본다. 우리의 민요 곡조는 3/4 박자인데, 이 노래는 2/4 박자로 완벽한 “엔카(演歌)”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엔카 역시 일본의 근대 음악이기는 하지만 전통 음악은 아니다. 엔카의 “엔(演)”은 “연설하다, 강연하다” 라는 뜻이다. 메이지 유신시대 입헌 군주국으로 헌법을 바꾸고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 만들어진 음악이다. 민권사상을 담은 계몽의 노래를 연설 대신 진보적 노래 형식으로 전달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엔카의 역사다.


그러나 1890년 이토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군국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엔카에 대한 말살 정책이 시행되자, 갑자기 엔카는 남녀의 사랑 타령으로 변질되었다. 연설하다의 “엔(演)”은, 요염하다의 “엔(艷)”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여성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감정에 치우친 노래가 1920년대에 한국에 상륙하면서 엔카는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트로트”는 일본이 만들었고 그곳에서 전해져 온 음악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인의 서민 정서로 자리 잡았고, 완성도의 측면에서 일본의 엔카에 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꽁꽁 묶어 놓았던 회한의 한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흥으로 풀어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새롭고 창조적인 에너지로 분출해 내는 새로운 문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트로트와 세계적인 박수를 받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 K팝(K-Pop : Korean Popular Music)이 모두 가능성 있는 한국의 문화 유전자로 계속 성장하면서 영원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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