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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04 0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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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남북한 출신의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문화탐방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 북한에서 살다가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한 지 여러 해가 지난 분들(북향민)과 남한의 사회복지사(남향민)들이 짝을 지어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탐방하고 교류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서로 판이한 환경과 이념 속에서 교육 받고 일을 하며 반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도시탐험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고 자못 기대가 되기도 했으나 그 분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일행 중에 셋은 통일사회복지사이고 두 분은 북향민 여성들이었는데 둘 중에 연장자인 홍 선생님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의외의 제안이었다. 노년의 북한 이탈주민이 디자인 플라자를 탐방하자고 할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나마 전시를 보거나 사진을 찍으러 들른 적이 있지만, 다른 분들은 어쩌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거나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는 정도로 생소한 장소다.


그런 곳에 가기를 원한 홍 선생님은 우주선 같기도 하고 똬리 같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은빛 금속판을 이어서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살짝 누른 듯한 비정형의 건물이 마음에 들었을까. 그렇다. 젊은 시절에 기계공학을 전공한 홍 선생님과 맵시 있는 옷차림의 채 선생님은 건물의 조형미에 탄복하며 건물의 외형을 둘러보았다. 건축 설계를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했다고 알려주니 더욱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디자인플라자를 방문한 날은 마침 대규모 패션쇼가 있는 날이었다. 화면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이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장면은 가상현실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남과 북, 동과 서, 작은 나라에서 서로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서로의 가치관과 판단 기준은 달랐지만 새롭고 재밌는 것을 바라볼 때의 느낌은 같았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긴장되고 갈등이 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환상적인 세계를 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곳에서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근거는 우리 다섯 명이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며 박장대소를 하고 한 나절을 보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처음 만났지만 낯설고 새로운 것을 바라보면서 공통적인 관심사와 흥미를 발견했고, 제 3국의 음식을 먹으며 식성이 일치하는 것을 즐겼다. 점심 메뉴로 베트탐 쌀국수와 월남쌈을 선택하는 데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북향민 두 분이 집에서도 종종 월남쌈을 해먹는다고 해서 국제화 된 식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번에 2박 3일 합숙하며 통일 사회복지사 워크숍을 하는 동안 두 번째 날 밤에는 북한에서도 평양, 청진, 무산에 흩어져 살던 분들이 제각기 고향 음식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역시 음식에 대한 대화는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한다.


코칭 관련 비영리단체가 있다. 남북한 출신의 코치들이 코칭으로 봉사를 하는 그 단체의 창립기념일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것이 북한식 순대와 두부밥이다. 북한이 고향인 분들은 대부분 순대와 두부밥, 냉면을 좋아하고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그 분들이 다른 회원을 집에 초대해도 상차림이 풍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음식 인심이 좋은 북한 주민들이 반복되는 자연재해와 실정으로 오랫동안 굶주린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음식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공통적으로 나눌 수 있는 관심사인데 비해 옷은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차이가 많지만, 우리는 옷가게 구경을 하고 다니다 모자를 쓰거나 런웨이에 선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옷과 음식과 건축물, 즉 의식주를 함께 맛보고 감상하면서 역시 일상생활과 직결된 일은 국경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의사소통이 안 되는 나라라고 하니 안타깝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이란성 쌍생아처럼 분명히 한 배에서 태어나도 두 세대를 헤어져서 살아왔다면, 자주 만나 대화 나누며 밥을 먹고 한 집에 머물면서 많이 웃어야 한다. 그러다가 속마음을 자연스레 터놓기 시작하면 비로소 화합으로 가는 작은 쪽문이 열리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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