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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11 00: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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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내게 경상도는 아주 멀고 아득한 곳이었다. 아득하다고 하는 것은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는 내 나름의 정의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경주에서 있었던 전국 학생 백일장에 참석하며 처음으로 대전에서 경상도 쪽으로 꺾어 들어가 본 적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 역시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 말고는 나와 경상도는 별 인연이 없었다. 더욱이 대구는 나와 쉽게 인연이 맺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구를 노래하고 있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필적에/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어릴 적엔 이 노래가 좋아 참 많이도 불렀다. 정작 청라언덕이 어디에 있는지도 어떤 곳인지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채 그냥 노래가 좋아 불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대구에 있는 곳이었고 이제야 이렇게 이곳엘 오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의 장소, 청라언덕과 늦었지만 비로소 만나게 된 것이다.


계산성당 쪽에서 아흔아홉 계단을 오르는 청라언덕, 사람들은 이곳을 대구의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부른단다. 몽마르뜨 언덕이 파리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이곳도 대구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겠거니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몽마르뜨 예술가의 거리만큼 값진 민족혼이 담긴 사진들이 99계단 옆으로 걸려 있고 언덕 위엔 역사적 건물들이 세 채나 자리하고 있었다.


대구 동산동 청라(靑蘿, 푸른 담쟁이)언덕은 ‘대구 근대로의 언덕 여기는 청라언덕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먼저 맞아주었다.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현관은 제중원(1899)을 전신으로 한 대구 동산병원의 구관 중앙 입구란다. 동산병원 2대 플랫쳐 원장이 1931년에 신축하여 등록문화재 제15호(2002.5.31)로 지정되어 있단다. 동산병원은 대구 최초의 서양의학병원으로 태평양 전쟁 중인 1941년에는 경찰병원으로, 1950년 6.25 때도 국립경찰병원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역사는 건물이 말해준다고 했듯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며 그 날들을 생각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곳에 대한 관심보다 청라언덕이 나오는 노래 ‘동무생각’의 사연이 더 궁금했다. 청라언덕의 유래와 동무생각의 가사가 새겨진 노래비 앞에 선다.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사우’(思友)였다고 한다. 이은상 선생이 시를 썼고 박태준 선생이 곡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 대구출신인 작곡가 박태준 선생은 마산 창신학교 음악교사시절에 선배인 노산 이은상 선생과 같이 근무했다고 한다. 그때 자신이 대구 계성학교를 다니던 때 청라언덕을 넘어 자신의 집 앞을 지나다니던 신명여고 한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걸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은상 선생이 그 내용을 ‘사우’(思友)라는 시로 써주었고 그것을 박태준 선생이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 한다.


등하교 길에 먼발치로만 바라보았던 그 여학생에게 사모하면서도 내성적인 그는 말도 한 번 붙여보지 못하고 말았다는 첫사랑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아무 감정도 없이 그냥 노래만 좋다고 불렀던 나를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붉어진다.


부러 시간에 맞춰 그 여학생을 기다리고 그렇게 한 번 얼굴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교 때 역시 그렇게 그녀를 한 번 더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던 박태준 선생의 젊은 날 두근대는 가슴의 소리가 노래비의 가사를 읽어가는 동안 내 가슴의 고동처럼 점점 더 커지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 이야기는 2012년 창작오페라 ‘청라언덕’으로 제작되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무대에도 올려졌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만한 나이 때 그런 감정이 있었나 싶은 것을 보면 작가라는 이름에 부끄럽기도 하다.


의료선교박물관 말고도 선교사 챔니스의 주택과 선교사 스윗즈 주택을 보면서 1910년경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지만 1907년 대구읍성 철거 때 가져온 안산암의 성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빨간색 벽돌로 쌓았다는 기록을 보며 동서양이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건물이란 생각도 해 본다. 그러고 보면 대구는 근대 기독교와 의학의 뿌리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계단을 내려오며 3.1운동의 역사적 사건들을 사진을 통해 둘러본다. 그 분들의 사진 속 함성이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책망을 하는 것만 같다. 100년 전 푸른 담쟁이들은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하겠지만 그 ‘청라’라는 이름만은 이렇게 건재하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대구의 어제와 오늘을 상기 시키고 있지 않는가.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어릴 적 부르던 노래의 의미가 이제야 깨달아지는 것 같다. 청라언덕은 그렇게 나를 자유케 하고 있었다.


나는 청라언덕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노래를 불러본다.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 위에 내 노래가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어 언제까지고 남아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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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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