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5-15 07:34:16
기사수정
–한국 기업 상사의 갑질, 개인의 부도덕성이나 성격파탄보다 기업 운영 ‘시스템’ 차이에 기인
–합리적인 법과 규정에 의하여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폭언을 통해 아랫사람 굴복시켜
–미국중산층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규정 지키도록 교육


▲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 등에 관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소환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5월 2일 새벽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가족의 ‘갑질’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너도 나도 재벌가의 부도덕성을 비난하였다.


성원용 서울대 교수는 4월 26일자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을 비교하고, 한국 기업에서 상사의 갑질이 만연한 이유를 개인의 부도덕성이나 성격파탄의 문제이기보다는 기업 운영 ‘시스템’의 차이에 기인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외국’의 경우 상사가 하급자를 여러 기회를 통해 평가하게 되어 있어 폭언을 해가면서 하급자를 야단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학자인 성원용 교수의 주장은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 교수가 이야기하는 외국의 기업, 즉 공적인 영역에서 감정적 폭언이 별로 필요없는 사회조직을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일찌기 ‘rational’ society라고 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질은 공적인 영역에서 곧 감정보다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윗사람은 카리스마적 지배자가 아니라 법과 규정에 의하여 권한을 부여받아 아랫 사람에게 지시하고 그 지시를 잘 따랐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뿐이며 아랫 사람과 인격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사회에서는 막스 베버의 ‘rational’ society와는 다른 방향으로 공적인 영역에서의 조직문화가 진화하였다. 합리적인 법과 규정에 의하여 갑이 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폭언을 통해서 아랫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갑질’은 서구 산업사회의 합리성이 지배하는 rational society와는 다르게 감정적 연대를 중요시하는 한국적 조직 문화의 특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 한국의 조직 문화의 이러한 차이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배양되고 강화된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집에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특정 행동을 금지시킬 때 무조건 ‘하지 마’라고 할뿐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 성질 급하거나 공격적인 부모가 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지르고 회초리나 몽둥이로 마구 때리는 것은 우리 세대에서도 일상사였다. 이때 을의 위치에 놓인 어린이들은 부모가 격노하는 순간에 재빨리 도망가서 매를 피하는 것이 최고의 대응 방법이었다. 화내는 부모에게 대항하여 자기 변호를 한다거나 따진다거나 하는 것은 매만 더 부를 뿐이었다.


집 밖으로 도망간 아이는 부모의 화가 누그러지면 몰래 집안으로 기어들어와 다시 일상생활을 이어갔으며 이는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었다. 부모도 분노의 순간이 지나면 매를 피한 아이를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 ‘홧김에’ 하는 행동 역시 ‘술김에’ 하는 행동처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용서해주었다. 비슷하게 학교 선생님들 역시 감정에 휘둘려 소리 지르고 학생들 구타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반면에 미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중산층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규정을 지키는 것을 철저히 가르친다.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감정적으로 소리지르고 때리기보다는 테레비를 못보게 한다든지 방에서 못나오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응분의 벌을 준다.
학교에서도 교사는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자기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학생에게 소리지르거나 감정에 휘들려 학생을 때리는 것은 금기시되며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것이 드러나면 교사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나아가 징계당할 수도 있다. 폭언과 체벌이 없는 대신 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다른 학생들로부터 고립되어 비어있는 교실이나 사무실에서 혼자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만약 한국에서 미국처럼 체벌이나 폭언 대신에 아이를 방이나 학교 교실에 가두거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에게 너무 잔인한 벌이라고 할 것이다. 아이들 또한 몇 대 맞고 난 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낫지 혼자 있는 공간에 갇히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과 학교를 거치면서 성인이 될 때 이미 갑질 문화를 습득하게 되어 있으며 재벌 기업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조직에서 갑질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된다. 즉 성인이 될 때까지도 공적인 역할 수행에서 좋고 싫음의 감정을 배제하고 규율적으로 행동하는 훈련을 집과 학교에서 잘 받지 못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152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