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정세분석] 반도체 디커플링 저지에 사활건 중국 - 중일외교장관회담, 中, “美추종말라” 요구 - 중국이 네덜란드와 일본을 콕 찍어 강력 경고 - 한국 향한 공격도 대비해야 한다!
  • 기사등록 2023-04-04 04:41:05
기사수정



[중일외교장관회담, 中, “美추종말라” 요구]


중국이 반도체에 대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저지에 사활을 걸었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3년 4개월만에 중국을 찾은 일본의 외무상을 극진히 환대하면서도 미중간 반도체 디커플링 등의 현안에 대해서는 일본을 강하게 압박하는 데서 확인됐다.


중국 외교라인의 최고 책임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지난 2일 베이징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국내 일부 세력이 미국의 잘못된 대(對)중국 정책을 추종하며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 관련 문제에서 중국에 먹칠을 하고 도발을 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왕이는 이어 “이런 행동은 전략적으로 근시안적이며,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이자 외교적으로는 더욱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며 일본을 윽박질렀다.


물론 이 자리에서 왕이가 반도체라는 품목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날 일본 외무상을 댜오위타이(釣魚台) 국빈관에서 만난 친강 외교부장은 직접 반도체를 거론하며 원색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오찬을 포함해 4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대화에서 친강은 “미국은 과거에 일본의 반도체 산업에 따돌림[覇凌]과 같은 잔혹한 압박을 가했는데, 이번엔 중국에 그 낡은 수법을 쓰고 있다”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는 논어 위령공편의 구절을 언급했다. 미국이 과거 일본을 압박할 때 반도체 산업을 압박한 것처럼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동참하기로 한 일본을 비판한 것이다.


친강은 이어 “(똑같은) 살을 베이는 고통을 겪었던 일본은 위호작창(爲虎作伥)해선 안 된다”며 사자성어를 다시 한번 소환했다. 위호작창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사람은 죽어서 창귀(귀신)가 돼 호랑이가 먹이를 구하러 갈 때 길잡이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의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미국을 호랑이에, 일본을 창귀에 각각 비유하며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한 셈이다.


친 부장은 이외에도 “역사와 인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며 일본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반도체 디커플링에 대한 압박은 최근 네덜란드에도 가해졌다. 탄젠 네덜란드 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달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는다면 결과가 없지 않을 것”이라며 “상응 조치에 대해 추측하지 않겠지만 중국은 이것을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SML이라는 반도체 핵심 생산장비회사를 보유한 네덜란드를 향해 반도체 디커플링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협박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는 역시 반도체 생산장비 강국인 일본을 향해 중국이 강력하게 경고를 한 것이다.


[중국이 네덜란드와 일본을 콕 찍어 강력 경고한 이유?]


중국이 이렇게 일본과 네달란드를 콕 찍어 디커플링에 동참하지 말라며 강력하게 경고하는 이유는 지난 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이 지난해 10월 발효한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합의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블룸버그는 “3국간 협상이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 동참으로 결론났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곧바로 구체적 조치가 발표됐다. 물론 중국이라는 나라를 특정하여 수출통제를 한다고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 대상이 중국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일본 정부는 3월 31일 “무기 등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반도체장비 등 23개 첨단 제품을 수출 규제 대상으로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 23개 품목에는 극자외선(EUV) 관련 장비, 기억소자를 입체적으로 쌓는 장비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회로 선폭 10~14nm(나노는 10억분의 1)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장비다. 이로 인해 도쿄일렉트론, 스크린홀딩스, 니콘 등 10곳 정도의 일본 반도체장비업체가 수출 규제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일본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점유율 35%로, 미국(40%)에 이은 2위 국가다.


이번 조치로 일본 기업이 수출 규제 대상인 23개 품목을 한국·미국·대만 등 42개 국가·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수출하기 위해선 사전에 경제산업상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에 수출하려면 정부의 사전 허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네덜란드 역시 리에 슈라이네마허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 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규제를 여름 이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2위 반도체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은 이미 최고 기술력이 집약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데, 내친 김에 최고 기술 장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낮은 단계의 장비 수출도 틀어막겠다는 것이 네덜란드의 수출규제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에 동참하면서 반도체 분야에서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간 분단이 선명해졌다”며 “일본의 조치에 대해 중국이 대항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대중국 수출 규제를 선언한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까지 동참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屈起·우뚝 섬)가 최대 난관에 부딪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저항하는 중국, 반격 나설 채비]


중국을 향한 반도체 중심의 디커플링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핵심기술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중국은 이에 맞춰 과학·기술 예산을 전년보다 2% 증액했고, 기초 R&D 연구에 초점을 맞춘 과학·기술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시진핑의 이러한 기술자력갱생은 당장 지금 벌어지는 디커플링에 대한 대응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저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내비쳤을 뿐이다.


중국의 다급한 속내는 지난 3월 30일, 아시아의 다보스라 말하는 보아오포럼에서 리창 총리가 행한 연설에 오롯이 드러난다. 리창은 이날 “보호 무역주의와 공급망 분리에 반대하며 원활한 글로벌 산업 및 공급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외에도 구구절절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을 반대하며 자유주의 무역을 강조했다. 그만큼 시시각각 다가오는 디커플링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디커플링에 대한 분노는 결국 세계 3위이자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규제를 통해 터져 나왔다.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을 표적 삼아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31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이크론의 제품에 대한 안전 조사를 진행한다”며 “핵심 데이터, 기초설비 및 서플라이체인의 안전과 잠재적인 사이버보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미국을 향해 현 상황을 좌시하고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마이크론 입장에서 중국은 미국·대만에 이어 셋째로 큰 시장으로, 지난해 중국에서 4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회사 전체 매출의 1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자국 시장 비중이 큰 마이크론에 대해 사실상 자해에 가까운 보복조치를 취한 것인데, 중국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마이크론이 중국에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중국은 피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당장 마이크론 제품 수입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이를 대체할 다른 반도체 수입에 상당한 지장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중국 반도체 전문 매체 신즈쉰은 2일 “당국이 마이크론을 첫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강화를 부추긴 배후 세력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미국이 최근 내놓은 규제들의 최대 수혜자가 마이크론”이라고 보도했다.


마이크론은 상하이에서 해온 D램 설계 작업을 지난해 말 중단하고 150명의 중국인 엔지니어에게 미국이나 인도로 이전할 것을 요청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중국이 과연 마이크론에게 취한 제재 조치를 더 확대할 것인지의 여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 중 퀄컴의 중국 매출이 64%로 가장 높고, 브로드컴(35%), 인텔(27%), AMD(22%), 엔비디아(21%) 순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 기업 입장에서 14억명 규모의 중국은 포기하기 어려운 시장이지만, 국가 안보적 측면과 미래 시장을 감안한다면 디커플링 조치에 동참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한국 향한 공격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마이크론에 대한 보복 조치가 단지 미국 회사만이 아닌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을 보유한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를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일 “중국의 마이크론 규제는 한국과 일본 같은 주변 국가와 관련 기업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가 중단될 경우, 중국 샤오미·오포·비보 등 기업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구매처를 바꾸며 단기적 이익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기술 자립을 추진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한국 기업도 언제든지 판매 금지 등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의 유예기간 종료가 9월 말로 다가옴에 따라 중국은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한국에도 미국의 조치를 따르지 말라는 경고의 신호와 함께 강도 높은 압박과 회유를 병행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1463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추부길 편집인 추부길 편집인의 다른 기사 보기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치더보기
북한더보기
국제/외교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