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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12 06:43:57
  • 수정 2022-10-09 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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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시나요?” “지금 순대 먹으면서 피아노 치고 있어요.”


그는 내게 늘 충격이다. 내 생각과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그런 그가 참 부럽다. 그래서인지 그의 수필에서도 생명력 아니 운동감이 넘친다. 사용된 언어도 문장도 지극히 동적이다. 요즘 수필계엔 변화를 시도하는 층이 많다. 정형화된 과거 회상적 체험 이야기거나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 이야기들을 문장화 해 놓은 것들에 대한 자성이고 반발일 수도 있지만 독자들이 진부해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해서 퓨전적 실험수필도 나오고 아포리즘적 수필도 나왔다. 스토리가 있는 소설 같은 수필도 나오고 아주 길거나 아주 짧은 수필도 나왔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문학적 완성도도 높아 독자에게 소설이나 시보다도 수필을 선호하게 만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변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글을 쓰는 이나 읽는 이의 취향이나 분위기도 바뀐 것이 분명하다.


그의 전화를 받으며 나는 분위기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햄버거나 도넛이라면 몰라도 순대와 피아노는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점심시간을 틈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데 순대가 점심을 때우기에 적격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반찬 없이 손쉽게 집어먹을 수 있고 또 영양가도 있고 맛도 있으니 시간 허비 없이 두 가지를 다 충족할 수 있게 하는 데는 꼭 맞을 것 같다. 어울린다는 것은 같은 것끼리만 모여야 된다는 내 생각이 아닌가. 서구적인 것이니 서구적인 것으로 어울리라는 것인데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실용적인 면에서도 분명 순대는 햄버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그런 선입견과 편협 된 생각들이 많이 살아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게 있어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다가 저질러보게 되면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난 집에 오면 몸배바지를 즐겨 입는다. 아내가 오래 전에 오천 원씩 주고 두 개를 사 왔었는데 그중 하나를 나더러 입어보라 했다. 망측스럽게 어떻게 그걸 입느냐고 했더니 입어보고 싫으면 벗으라고 했다. 해서 그걸 입게 되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여자용으로 나온 거라 좀 짧고 모양도 좀 뭐해서 끝부분을 잘라달라고 했더니 칠부바지 처럼 되어 집에서 입기에 아주 그만이다. 남이 볼 일도 없고 편하니 집에 들어오면 그걸로 갈아입는 게 첫 번째 일이 된다. 손으로 주물주물 빨아서 꼭 짜 툭툭 털면 금세 말라 바로 입을 수도 있으니 그 또한 편리하다. 반바지를 입는 것보다도 더 편하다.


어느 날 사위가 집에 왔다가 내 그런 모습을 보고 웃기에 한번 입어보라고 했더니 머뭇거리다가 입어보고는 단박에 찬사가 나왔다. 저도 하나 사 입겠다는 것이다. 아들에게도 그걸 입어보라고 했더니 그도 너무 좋단다. 해서 시내 나갔다 오는 길에 사위 것과 아들 것을 사다 주었었다. 우리 집 여름 실내복은 몸배 커플 바지로 벌써 여러 해 째이다.


여자 바지에 지퍼가 그것도 남자와 같이 중앙에 있다는 것을 옛날엔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생각의 차이인 것 같다. 특별한 것을 파격이라고 하지만 파격이야말로 창조의 힘이 아닐까 싶다.


나도 순대와 순대국을 참 좋아한다. 비싼 음식보다 순대국밥 집에서 한 그릇 뚝딱 맛있게 먹어치우는 걸 즐긴다. 그래도 피아노와 순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긴 나도 사위와의 첫 대면을 새벽 순대국밥 집에서 했다. 시간이 그렇게밖에 안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해도 서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할 첫 자리에선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주 앉아 그것도 새벽에 맛있게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는 동안 우린 말 없는 대화로 속엣말까지 다 해버렸다. 그러고 보면 예의라는 것도 고정관념일 것 같다.


그는 의사다. 병원 원장이다. 작가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고 싶단다. 하지만 시간을 낼 수 없어 고민만 했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하면 되겠다 싶어 자신의 점심시간에 그 하고 싶은 피아노 치기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오후 진료도 해야 하는데 점심을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선택한 게 순대란다. 반찬을 따로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밥, 영양가도 있는 점심식사로 순대를 택한 실용성은 가히 그답다. 그런 그의 파격이 그의 수필도 톡톡 튀는 생동감이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림이 그려진다. 가끔씩 순대를 집어 먹으며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이다. 때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이 가장 잘 어울릴 때가 있는데 그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문득 나는 내 삶의 순간들에서 나나 남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존재였을까 생각을 하자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있으므로 해서 조화가 깨지거나 나로 인해 불편하진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그는 어디서거나 곧잘 어울리는 것 같아 은근히 샘이 나기도 한다. 한 손으로 순대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그에게 한낮의 햇볕이 다소곳이 스며드는 풍경, 피아노 옆에 놓인 순대 접시, 오히려 아주 잘 어울리는 한 폭 정물화가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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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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