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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13 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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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안녕하세요.

마음한잔 ‘나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오늘은 김춘수님의 시 ‘꽃’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참 아름답네요.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고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 나는 네게, 너는 내게 꽃이 되고 의미가 됩니다. 읽을수록 감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글픈 반전이 있네요.

서로에게 꽃도 되고 의미도 되고 눈짓도 되었으니 좋아야 할 텐데?

좋기만 할까요?


동화 ‘신데렐라’에서 왕자는 유리구두로 신데렐라를 찾아내어 왕비로 삼죠,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필립왕자 역시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오로라를 입마춤으로 깨워 왕비로 삼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 모두 ‘그 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그냥 이야기를 맺지요.


그들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그려놓을 만도 한데 왜 그렇게 서둘러 이야기를 끝냈을까요.


그건 아마 작가도 그 후의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터무니없이 과장까지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후의 진실, ....

그것은 왕자와 공주는 “그 후 지지고 볶으며 아웅다웅 살았답니다” 아닐까요?

바로 이름이라는 마법에 갇혀버린 거지요.

예를 들어,

왕자의 입장에서 한번 보겠습니다.


이쁘고 착한 것 같아, 신데렐라가 놓고 간 유리구두 한 짝을 가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천신만고 끝에 찾아내어 아내로 맞이했는데, 아내라는 이름을 딱 붙여놓고 보니, 계모와 의붓언니들한테 오랜 세월 구박받고 눌려 살아와서인지 성격이 뭔가가 뒤틀려있고 까탈스럽고 예사롭지가 않더라 이겁니다.


이거 뭐야! 내 아내가 왜 이래! 이거 참 무를 수도 없고!!!


이제 신데렐라의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계모와 의붓언니들의 핍박에서 벗어나 왕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평생 행복할 줄 알고 대박이라 생각하고 결혼해 기대가 하늘을 찌르죠.


그런데 왕자에게 남편이란 이름을 딱 붙여놓고 보니 이게 웬걸! 자기만 봐줄줄 알았는데 왕자는 항상 이쁜 여자들로 둘러싸여 있죠,


좀 시간이 지나니 바쁘다며 관심도 가져주지 않죠.

자신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달라졌다고 타박이나 하죠.


이거 뭐야! 내 남편이 왜 이래! 이거 참 무를 수도 없고!!!


우리네 삶이 대충 그렇지 않나요. 그럼 왜 우리는 좀 더 그럴듯하게 살지 못할까요.


그 해답은 바로 김춘수님의 시 ‘꽃’을 뒤집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고 다가와 꽃이 되고 의미가 되니, 이런 사달이 나는 거지요.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어 연인도 되고 부부도 되었는데, 막상 그게 되고 보니 기대한 것과 다르다는 겁니다.


이름을 붙여놓고는 결국 이름값을 하라는 것이지요.

이름을 불러주어 인연이 되고 꽃도 되고 의미도 되었는데, 이름에 갇혀 서로 서운해 하고 원망하며 갈등하게 되니, 참 아이러니지요?


그렇다고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고 이름 부르지도 않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은 채 살아갈 수는 없겠지요.


그럼/ 그런 거 모두 다 하면서 우리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할 수는 없을까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 인연이 되었으나 그 다음엔 ... 이름을 떼어내는 겁니다.

남자들은 서로 다툴 때 “어이, 계급장 떼고 한번 붙자”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계급이 다르면 싸움이 되겠어요?


그러니 계급장 떼고 한번 붙자는 것은 서로에게 들러붙은 모든 허울을 떼어내고 서로가 날 것으로 만나자는 것이지요.


남자, 여자, 의사, 변호사, 회사원, 부모, 자식, 사위, 며느리, 형, 동생, 상사, 부하 등등.

사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라벨이 백화점 진열상품 태그처럼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이 이름들을 떼어낼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그’, ‘존재 자체로서의 그’를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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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낭송을 도와준 제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마음한잔 ‘나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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