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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03 21:11:47
  • 수정 2018-04-03 22: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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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립 위한 5·10 총선거 반대위해 일으킨 무장폭동으로 시작된 4.3사건
-피해자가 많았던 것은 토벌대의 강경 진압작전 탓도 있지만 남로당 무장대가 산간지역 주민을 방패 삼아 유격전을 펼친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홍준표 대표: 제주 4·3사건과 관련, 이날을 제주 양민이 희생된 날로 추념해선 안 된다고 주장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로 규정지은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오염된 대한민국의 실상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서 묵념하고 있다.【뉴시스】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지 70년.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4·3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로 규정한 것이다.


과연 그런가?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좌파들이 극성을 부린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김기철 논설위원은 “남로당(南勞黨) 폭동 떠받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칼럼에서 서양사학자 임지현 교수의 책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나온 글을 인용했다.


구(舊)소련 시절 유행한 농담 하나. 아르메니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 물었다. "미래 예측이 가능한가?" 진행자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인류 사회의 과학적 발전법칙을 꿰고 있는 우리는 미래가 어떨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곤 한마디 보탰다. "문제는 과거다. 과거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김 위원은 위대한 지도자가 순식간에 제국주의 스파이로 몰리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敵)으로 뒤바뀌는 걸 지켜본 소련 사람들에게 역사는 예측 불가능한 불가사의였다고 적었다.


김위원은 이어 이 글을 인용한 이유가 “요즘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빼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적었다.


“문화부 산하 국립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지난 주말부터 4·3사건 70주년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시장 한복판에는 남로당 유격대가 쓴 '무장대의 호소문'이 내걸렸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어서 빨리 인민의 편에 서라. 반미 구국투쟁에 호응 궐기하라.'”


김 위원이 더욱 놀란 것은 그것이 “처음엔 4·3사건 주동자인 남로당의 책임을 묻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4·3을 '무장봉기' '무장투쟁'으로 일관되게 기술했다. 미군은 일본군 같은 '점령군'이고, 미 군정(軍政)과 경찰, 서북청년단 탄압에 맞서 제주도민이 '항쟁'하는 구도였다. 남로당이 대한민국을 접수했거나 '인민공화국' 세상이 된 것도 아닌데 국립(國立)박물관에서 이런 전시를 보게 될 줄 몰랐다”고 적고 있다.


이미 적화된 대한민국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렇게까지 변개될 수 있으랴!


정부수립 위한 5·10 총선거 반대위해 일으킨 무장폭동으로 시작된 4.3사건


누가 뭐래도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위(委)가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폭동으로 시작됐다.


김 위원이 기술한 대로 빨치산들은 이날 경찰지서를 습격하고, 5·10 선거를 준비하던 경찰과 공무원, 우익 인사들을 살해했다.


노무현 정부는 폭동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 2만5000~ 3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피해자가 많았던 것은 토벌대의 강경 진압작전 탓도 있지만 남로당 무장대가 산간지역 주민을 방패 삼아 유격전을 펼친 탓이다.


제주 4·3사건이 무장폭동으로 시작된 사건이었다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CNN과 인터뷰한 내용이 '김대중 사이버 기념관'이라는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데 내용이 이렇다.


▲ 김대중 사이버기념관에 나와 있는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CNN 인터뷰 전문(사진=김대중 사이버기념관 갈무리)




*질문: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제주 4·3사태에 대한 진상은 서로 언제 공개할 방침입니까?

*대통령: 제주문제가 국회에 청원되어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시작은 공사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팩트다.


억울하게 죽은 이유는 바로 남로당의 주민 방패가 큰 이유였다.


홍준표 대표: 제주 4·3사건과 관련, 이날을 제주 양민이 희생된 날로 추념해선 안 된다고 주장


이런 이유 때문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3일 제주 4·3사건과 관련, 이날을 제주 양민이 희생된 날로 추념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홍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주 양민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월3일이다"며 이렇게 적었다.


그는 "4월3일은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이라며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념식을 앞두고 홍 대표는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제주4·3사건 추념식은)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했다.


이어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국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에 와 있다"며 "깨어 있는 국민이 하나가 되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로 규정지은 문재인 대통령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로 규정지은 것이다.

잘못 나가도 한참 잘못됐다.


이렇게 되면 남로당 일당을 비롯해 공산주의자 모두도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 피해자가 된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추모하는 것은 그러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된 선량한 제주도민이다.

이를 구분해야 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오염된 대한민국의 실상


대통령의 뜻이 이미 전달되어서일까?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좌파권력세력이 손길이 역사박물관에도 이미 닿았을 것이다.

그래서 4·3사건이 그렇게 변조된 것 아닐까?


앞서 언급했던 김 위원은 이렇게 적었다.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폭동을 '봉기' '항쟁'으로 치켜세우고, 이를 막는 국가 공권력 행사는 '탄압'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이 대한민국 정부 탄생을 훼방 놓는 남로당 무장폭동을 떠받드는 이 자기모순(自己矛盾)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답답하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되었을까?


‘김병관’ 님이 쓴 “이름짓지 못한 역사(제주 4.3백비)”


여기 ‘김병관’ 님이 쓴 “이름짓지 못한 역사(제주 4.3백비)” 글을 붙인다.

2008년에 쓴 글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도 똑같은 감흥을 줄 줄 믿는다.


이름 짓지 못한 역사(제주 4.3백비)

통한의 역사는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인가!!


-진혼-


까마귀 소리

처량한 울음 따라

눈물마저 말라버린

한 많은 세월

주정공장 수용소 긴 벼랑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질 때

그 고운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제주 출신 오승국 시인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다.


이념의 재물이 되어 영문도 모른 체 죽어간 그 수많은 원혼들,

이제 와서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고 그 한을 풀어 줄 것인가?


국무총리 산하 제주4.3 위원회가 역사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4.3 평화기념관을 건립하여 개관하였다.


문제의 평화 기념관을 방문하는 계기는 공원건립 배경과 역사적 사실조명에 관심이 지대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을 비롯한 시.도 회장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우리를 영접한 공원관계자들과 사무실에서의 가벼운 설전은 앞으로 정립할 난해한 해법을 암시하는 전초전으로 느껴졌다.


안내를 받아 천연동굴 모형의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가 띵 해왔다.


제주에는 화산 폭발로 천연동굴이 많지만 제주사람들에게 동굴의 의미는 외부의 탄압이나 학정을 견디지 못해 몸을 일시로 피하거나 주거지를 옮기는 장소로서 저항적인 상징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동굴모양의 전시관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제주에는 동굴이 많기 때문이라는 안내인의 평범한 대답에 머쓱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동굴 속의 첫 전시물은 해방을 기점으로 펼쳐지는 좌우익 갈등의 장면이었다.


1945년 9.22일 재편된 인민원회 오대진 위원장을 위시한 간부들의 사진을 부각시킨 것을 볼 때 남로당적 시각에서 역사를 고찰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의구심이 되었다.


미군정을 4.3 사건을 유발케 한 원인제공의 진원지로 비판적 시각에 맞추고 통일애국세력이라는 김구 김규식을 반공의 지도자이며 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보다 더 부각시키고 있었다.


특히 제주 인민위원회의 행동강령까지 명시해 놓은 것은 해방정국에서 이념적인 갈등이 심대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해방이후 남한 내의 정치 이념적 갈등의 압축판이 한라산과 성산포를 피로 물들인 4.3의 본질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주에서 미국 놈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저 노란 유채꽃도 지배자의 꽃이다> 라는 어느 좌파시인의 선동처럼 제주 특유의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김일성의 지령을 수행하는 남로당과 이해관계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지난해 월남을 방문해서 무려 250km에 달한다는 월남전 최대의 격전지 구찌땅굴을 견학하는 도중에 태아에서 부터 고엽제에 걸려 미처 출산하지 못한 형체를 그대로 인큐베이터에 보관한 전시물을 보고 진저리를 친 적이 있었다.


함께한 일행들도 그 잔인한 모습을 보고 왜 미국이 이 평화로운 정글에 와서 잔인한 전쟁을 해야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모두가 반미주의자가 될 것만 같아서 즐거운 여행 중이었지만 필자 특유의 안보강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냉전의 역사에서 인류 최상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절박한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6.25나 월남전은 해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한반도가 스탈린이나 모택동의 의도와 같이 적화가 되었다면 일본을 넘어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까지도 적화되어 인류는 수세기간 암흑기로 접어들 개연성이 충분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이 처음 등장한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세계의 지성들이 인간성 회복 운동으로 착각하여 환호성을 올렸지만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만 남긴 채 지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산 혁명에 성공한 베트남이 왜 계획경제를 더 공고히 하지 못하고 시장경제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절로 흥분이 되어 열강을 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6.25 전쟁에서 적화가 되었다면 한반도 적화의 기폭제로서 제주 4.3이나 여순 반란 사건이 크게 미화되는 역사로 기록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 적화가 일본을 넘어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까지 적화로 이어졌다면 인류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 것인가를 유추해보기만 해도 4.3은 왜곡된 역사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원동력인 노동을 분배하여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던 맑시즘의 후예들과 민족 통일이라면 공산주의 통일이라도 상관없다는 자주 파들의 지나친 의욕이 제주의 선량한 양민들까지 그들 혁명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영토전쟁이 아닌 사상전이며 1차대전을 능가하는 참상을 입은 6.25의 전초전 제주 4.3과 여순반란 사건은 한반도를 적화한 후 일본을 넘어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까지도 적화하고자 한 소련의 지령과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 코미니스트들의 지나친 과욕이 불러온 결과에 초첨을 맞추는 것이 제주 4.3의 해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동서 냉전 대리전 격인 6.25 전쟁의 폐허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바탕으로 이념내전에서 당당히 승리하여 세계 10대 교역국으로서 동구 공산권이 모두 참여한 88 서울 올림픽까지 성공리에 개최하는 기염을 토한바 있다.


88 올림픽 이후 자신들의 우방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리의 발전상을 목격한 동구공산권들이 앞을 다투어 와해되는 즉 이념대결의 역사가 마감되는 결정적 기여를 우리가 해냈다는 것은 우연은 아닌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인 두 제도를 놓고 전 인류적인 이념전쟁에서 단 한번도 남의 나라를 참력하지 않았던 우리가 열강의 대리전을 수행하면서 삼천리 강토가 초토화되고 500여만의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당한 보상이 바로 한민족의 도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주 4.3 희생의 대가가 한반도 공산 적화를 저지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고 본다면 용서와 화해가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해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의 희생과 갈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지키고자 절박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과 자유진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바로 미국의 국익은 인류전체의 이익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우리사회가 너무나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수십만의 희생을 평가 절하하고 미국의 패권주의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무고한 양민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한 공산주의자들의 원인 제공은 도외시하고 당시로서는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에서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상의 시행착오만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본질을 흐리게 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인 것이다.


4.3을 미화시키는 측에서는 민족 통일을 저해하는 외세에 대한 자주 항쟁이었다고 주장들도 하지만 해방이후 좌우 이념 갈등의 축소판임을 부인하지 못한다면 이는 정답이 될 수가 없다.


옥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기에 송충이를 잡으려다 유익한 진딧물이 희생당하는 것처럼 제주 특유의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을 이용한 공산당들의 선동과 감언이설이 사태의 본질임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것은 희생의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4.3 기념관은 인류의 역사상 최대의 시행착오인 이념대결로 빚어진 비극을 상징하는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진정한 화해의 단초가 될 것이다.


6.25전쟁 전에 평양으로 가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김달삼이가 영웅으로 미화되고 토벌군과 경찰의 과잉진압만을 4.3의 원흉인양 부각시킨다면 또 다른 갈등에 직면하여 영원히 이름 짓지 못하는 역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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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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