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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제 발목 잡은 푸틴 - 푸틴, 가스값 결제 싸고 갈팡질팡, 유럽은 분노 - 미국, 역대급 전략비축유 방출, 유럽 지원 나서 - 유럽, 원유 도입선 아예 변경 방안 검토
  • 기사등록 2022-04-02 20:03:39
  • 수정 2022-04-03 07: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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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러시아 대통령궁]


[푸틴, 가스값 결제 싸고 갈팡질팡]


블라미디르 푸틴의 러시아가 유럽을 향해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결제와 관련해 유럽 정상들에게 약속했던 사항을 번복하면서 유럽 정상들이 분노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외국 기업이 러시아산 가스를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중단된다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4월 1일부터 시행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방송 연설에서 “러시아 천연가스를 사려면 러시아 은행에서 루블화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면서 “4월 1일부터 러시아 계좌를 통한 지불이 이뤄져야 가스가 전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루블화로 대금이 지불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를 구매자의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간주해 이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를 것”이라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고 우리는 자선행위를 하지도 않을 것이며, 따라서 (루블화 대금 지급 불이행시) 현재 계약은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노하는 유럽, “약속 어겼다!”]


그러나 푸틴의 이러한 발표는 지난 3월 30일(현지시간)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상들에게 앞으로 계속해 유로화로 가스대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장한 내용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어서 유럽국가들은 분노하고 있다.


독일정부는 30일(현지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유럽이 러시아 가스대금을 루블화가 아닌 유로화로 계속 결제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푸틴 대통령이 숄츠 총리에게 유럽의 다음 달 결제는 유로화로 계속 이뤄질 것이고, 그동안 해왔던 대로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스프롬 은행으로 송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 대통령이 숄츠 총리와 통화에서 밝힌 것은 가스 대금이 EU의 제재 대상이 아닌 가스프롬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한 유로화 결제도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이는 타협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단 하루만에 푸틴이 이러한 내용을 뒤집고 루블화 결제를 고집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이미 예상했던 대로 유럽 천연 가스 시장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공급자인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기된 경제 제재를 돌파해 보려는 얕은 속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그간 서방의 경제 제재 이후 가스대금을 루블화로 지급할 것을 요구해왔으나 유럽 국가들은 이 같은 요구가 유로화 혹은 달러화로 규정돼 있는 현재 계약의 위반내용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일단 그동안 러시아의 가스 공급과 관련하여 러시아를 두둔해 왔던 독일부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푸틴의 법안에 대해 독일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을 비롯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준비가 돼 있다”며 해당 요구를 거절한다고 밝혔다.


또한 프랑스의 브루노 르 마리 재정장관 역시 “프랑스와 독일이 러시아의 (루블화 지급) 요구를 거절한다”고 강조하면서 “독일과 프랑스는 여전히 루블화로 가스대금을 거래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G7국가들도 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가스대금 루블화 결제 요구를 거부하기로 합의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G7 에너지 장관들은 모두 이는 기존 계약에 대한 명백하고 일방적인 위반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벡 부총리는 G7 에너지 장관들과 화상회의를 마치고 “루블화 결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우리는 영향을 받는 기업들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에 따르지 말라고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긴급 대응 나서는 EU]


러시아의 가스 공급과 관련해 루블화 지불 요구는 이미 거론되어 왔던터라 러시아의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의 공급 중단과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가스·수소·액화천연가스를 공동으로 구매·비축하기로 했다.


특히 EU 회원국들은 다음 겨울 공급 부족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가스를 대규모로 비축, 공유하기로 했다. EU 집행위는 현재 25% 수준인 지하 저장고 가스 저장량을 오는 11월까지 최대 용량의 80%, 내년까지 9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공동으로 가격 협상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회원국끼리 경쟁적으로 입찰하며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취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역대급 전략비축유 방출, 유럽 지원 나서]


러시아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에 맞서 미국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에 따른 유가 상승을 잡기 위해 앞으로 6개월간 매일 100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백악관은 “이 같은 방출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는 연말 원유 생산이 확대될까지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유가 안정을 위해 동맹국들이 3천만~5천만 배럴의 비축유를 추가 방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또 유럽에 올 연말까지 액화천연가스(LNG) 150억㎥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러한 전략비축유 방출은 상당히 의미가 크다. 전략비축유는 물가를 잡기 위해 행정부 수반인 미국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바로 그 전략비축유 카드를 꺼낸 것이다.


현재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따로 저장고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중남부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소금동굴(최대용량 7억 배럴)에 저장돼 있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소금의 화학적 성분이 석유의 누출을 막아줘 지상 저장탱크보다 안전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현재 저장량은 5억6천800만 배럴로 작년 중반 6억5천만 배럴보다 양이 다소 줄었다. 이 정도 양이면 미국이 한달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전략비축유는 1970년대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공급을 무기화한 석유파동 때 긴급사용분을 따로 저장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사실 미국은 원유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순수출국이어서 비축유가 필요 없지만 전쟁 같은 지정학적 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 사용하기 위해 그동안 계속 비축을 유지해 왔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 전략비축유를 활용해 하루에 100만 배럴 정도 공급하게 된다면 일단 치솟는 유가는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내 원유 시추를 늘릴 계획도 세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 시추용 공공부지를 임대해 놓고도 원유를 생산하지 않는 1천200만 에이커의 땅이 있다”면서 “생산 허가를 받고도 시작도 하지 않은 유전만 9천 개나 되는데 이들이 하루빨리 생산을 시작할 수 있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국가들의 부족한 석유를 미국이 증산해서라도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이렇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원유 도입선 아예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


이렇게 미국의 전략 비축유 방출로 유럽사회의 원유 부족 문제에 어느 정도 한숨 돌리게 만든 다음 러시아에 의존해오던 에너지 공급원을 아예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현지시간)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안으로 카타르가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가 액화천연가스(LNG)를 장기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카타르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이어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부 장관이 이달중 카타르를 방문해 에너지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카타르와 다른 가스 생산국으로부터 LNG 수송을 받을 수 있는 최초의 터미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면서 “카타르는 오랜 기간 유럽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했지만, 유럽은 단기적이고 유연한 계약이 가능하고 기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할 수 있는 러시아를 선호해왔다”고 전했다.


WSJ은 또 “유럽 국가들은 카타르 외에도 앙골라, 알제리, 리비아, 미국의 가스 생산 업체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푸틴, 제 발등 찍었다!]


이렇게 유럽이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등을 돌리고 특히 더 이상 러시아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행태에서 벗어나기로 하면서 이대로 간다면 가장 큰 피해자가 러시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 러시아는 바로 천연가스나 석유 등의 에너지를 팔아 연명하는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유럽사회가 에너지 공급원 자체에 전면적인 수술을 단행하기로 함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


만약 유럽국가들이 러시아 일변도의 에너지 수입공급 체제에서 다변화를 하고 그러면서 러시아에서 원유 수입을 줄이게 된다면 러시아는 원유 수출로 인한 수입이 대폭 줄어들게 되면서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또한 더 이상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사회를 흔들 수도 없게 된다.


이에 대해 WSJ은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푸틴의 러시아 원유 판매에 대한 루블화 의무화가 오히려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차제에 러시아 원유로부터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를 했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아예 러시아산 에너지의 금수조치를 시행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어차피 러시아산 수입이 불가능해질 상황이라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차원에서 금수조치를 내리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 반대해 왔지만 이제 독일도 반대할 명분을 잃게 되면서 유럽사회 전체가 미국이 주도했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조치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WSJ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EU까지 원유를 금수할 경우 러시아 경제에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분야의 수입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EU와 영국이 지난해 러시아에 원유 대금으로 지불한 돈은 970억 달러(한화 약 118조 원)에 달한다.


유럽국가들은 또한 ‘탈(脫) 러시아 에너지화’를 위해 그동안 추진해 왔던 탈원전 정책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친환경’에 앞장선 독일은 전체 발전의 40% 이상을 신재생에 의존하며 모자라는 건 러시아산 천연가스로 충당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비슷한 사정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효율이 생각보다 낮은 것 또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으면서 ‘탈원전’의 부작용을 뒤늦게 깨달은 나라들은 다시 원전을 늘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오는 2050년까지 원전 14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영국은 기존의 원전 수명을 20년 연장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한 ‘택소노미’에 천연가스와 함께 원전을 포함하며 ‘원전=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들 국가들이 이렇게 에너지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에너지 정책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무기화로 러시아를 방어하려고 했던 푸틴의 계산은 또 빗나갈 위기에 처했다. 제발등을 찍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된다고 해도 그 후유증으로 인해 러시아는 두고두고 고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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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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