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베네수엘라 야권 시위 현장 [AP=연합뉴스]
독재 정권이 무너진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투명한 선거 실시와 구금된 정치범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베네수엘라 주요 도시 광장과 도로가 정권 교체 이후 처음으로 거대한 반정부 물결로 뒤덮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전국 단위의 야권 집회가 성사된 것은 근 2년 만의 일이며, 올 1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강제 퇴출당한 이래 최대 규모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발렌시아와 마라카이, 산크리스토발, 마라카이보 등 핵심 거점에서 동시다발적인 행진이 이어졌으나, 과거 시위 때마다 등장해 유혈 사태를 빚었던 군경 진압 병력은 현장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군중은 해질 무렵 충돌 없이 평화롭게 해산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분노는 기약 없이 미뤄지는 선거 일정에 쏠렸다. 미군의 마두로 체포 작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전 정권 부통령 출신인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과도 체제와 손을 맞잡았으나, 양측 모두 차기 체제를 결정할 대선과 총선의 구체적 시간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야권 세력이 과도정부의 권력 연장을 견제하고 민주주의 복원을 재촉하기 위해 대대적인 장외 투쟁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군중 결집은 야권 대표 정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이끄는 '벤테 베네수엘라'가 중심에 서서 기획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마차도는 2024년 대선 정국 이후 탄압을 피해 숨어 지내다 국외로 망명해 1년가량 발이 묶인 상태다. 그는 내년 7월을 넘기지 말고 차기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마두로 실각 후 조기 귀국을 타진 중이지만,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입국 시점을 늦춰달라며 제동을 건 상황이다.
집권 세력의 맞불 움직임도 긴장을 높였다. 집권 사회당은 야권 집회가 예정됐던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광장에서 2시간가량 앞서 지지 세력을 모아 대통령궁 일대까지 맞불 행진을 벌였다. 표면적으로는 유방암 인식 제고를 내건 행사였으나, 치안 기구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이 직접 대열에 합류해 국영방송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권의 조속한 민주화 요구와 달리 미국 정부의 태도는 유보적이다. 마차도 진영은 지속해서 백악관의 전폭적 지지를 호소해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계 자본에 친화적인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국정 방식을 긍정 평가하며 지난달 "선거를 서두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 같은 강대국의 계산과 과도정부의 침묵이 겹치면서 베네수엘라 정국은 다시 한번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