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셋째가 탄생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인터넷 서점에 주문한 세 번째 개인 수필집이 배송되어 있었다. 제목은 당신을 위해 마련한 아늑한 자리, 「두 개의 의자」다. 보통 책 내는 것을 출산에 비유하니까 나도 드디어 세 자녀를 둔 다둥이 엄마가 된 셈이다. 그동안 문인단체나 출판사에서 주간을 맡아 출판기획과 번역을 하는 위탁모 역할을 하거나, 다른 이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하다가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세월과 동행하며 늦둥이 하나를 더 낳으니 기쁨이 더하다. 서른 권이 넘는 동인지와 여러 권의 공저, 공동번역 한 책이 있지만 이번에 낳은 셋째 손가락이 그 중 길고 훤칠하다.
어머니는 딸 하나에 세 아들을 낳으셨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의 셋째인 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늦가을의 어느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군인 장교였던 아버지는 집을 떠나 계셨고 만삭의 어머니 혼자 나와 큰 동생을 돌보며 가정을 지키는 중이었다. 가정에 자동차나 전화가 없던 시절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태기에 비록 어리지만 맏이인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아랫동네에 사는 친척 빈이 이모를 찾아가서 산파 할머니를 불러달라고 해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문간방 새댁의 등에 업혀서 언덕길을 달려 내려갔다. 산파가 도착하고 둘째 동생이 태어나기까지 난산의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 후에 또 하나의 동생이 태어날 때는 두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와 막내를 보러 개인병원 산부인과 병실에 찾아갔다.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옆에 눕혀놓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제비새끼에게 먹이를 주듯 삼남매에게 골고루 떠먹였다.
할머니들은 아이 셋을 낳아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하셨다. 그 때 어머니의 모습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꼈고, 옛날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서 아이가 셋 이상 태어날 때까지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숨기려 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나이를 먹어가며 저절로 알아차렸다.
어머니의 셋째 손가락은 부모님과 같이 외국에 나가서 살다가 10대에 부모 곁을 떠나 일찌감치 유학길에 올랐다. 40년 간 공부하고, 결혼을 하고, 교수가 되어 여러 나라에서 일을 하다 한국에 돌아왔다. 단 몇 년이라도 어머니와 살아보겠다고 하더니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일찍 떼놓아 늘 마음이 아프다던 셋째가 곁에 있는 것을 든든하게 여기셨던 어머니는 예의 바르고 절도 있는 동생의 태도에 ‘겉만 아들이지 속은 합리적인 서양인이야’ 하며 웃으셨다. 그 동생이 이번 책에서 세계한글작가대회 대표작을 영어로 번역해 주었다. 어머니의 셋째가 나의 셋째를 도와주다니 뜻깊고, 재미있고, 고마운 일이다.
아예 낳지를 않거나 하나 또는 두 명의 자녀를 낳는 시대에 셋 이상의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 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만큼 자신을 내려놓고 아이의 생명을 지키고 키워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따른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늦둥이를 보는 기쁨이 남다르다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 할지 그런 욕심보다 건강하게 잘 자라달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셋째 쯤 되면 부모의 마음도 느긋하고 여유가 생긴다고 하지만 나의 셋째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감과 긴장감이 반반이다. 글이란 독자가 읽고 자기의 언어로 느낄 때 그들의 언어로 사회화되고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태어난 셋째는 나의 등단 시기와 생일이 비슷하다. 1988년 처음 내 글이 <</span>한국수필>이라는 수필문학 전문지에 추천완료 되어 책으로 나오는 기쁨은 추석연휴의 고된 일상과 맞물려 시어머니와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에 눌려 가슴 밑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전을 부치다 말고 책을 받아가라는 출판사의 연락에 달려갔다가 주부가 명절에 느닷없는 외출이 웬 말이냐는 꾸중을 들었다. 그러는 가운데도 30년 간 동인활동을 하고 문인단체 일을 하며 평생 글을 쓰겠다는 서원을 잊지 않았다.
올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된다. 사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 시어머니가 되고, 작가가 되고, 라이프코치가 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거울이고 마중물을 퍼 올리는 코치의 샘물이다. 문학과 코칭과의 만남을 통해 <</span>두 개의 의자>를 마련해 놓고 평화롭고 안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기다린다. 당신을 위해 마련한 아늑한 자리 <</span>두 개의 자리>에 마주 앉으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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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hytimes.kr/news/view.php?idx=16489-수필가(한국문인협회, 한국 수필가협회, 한국기독여성문인회 회원)
-생애설계코치연구소 소장,
-한국사회적코칭협회 회장,
-서울시 50+컨설턴트,
-생애설계 라이프코칭,
-경기도 문학상 본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신을 신고 벗을 때마다> <마음의 다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