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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터키, 美등 10개국대사 추방명령, 도대체 무슨 일이? - 터키 야당 지도자 강제구금 관련 인권문제가 발단 - 에르도안 대통령, 핵심지지층 지원받기 위해 무리수 던져 - 극심한 경제 위기로 에르도안 지지율은 급추락 가능성 높아
  • 기사등록 2021-10-25 12:46:24
  • 수정 2021-10-25 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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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대통령, 美·獨 등 10국 대사에 추방 명령]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67) 대통령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10개국 대사들에게 추방령을 내려 서방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AP통신ㆍ미 CNN 방송이 23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북서부 에스키셰히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나는 외교부 장관에게 ‘10명의 대사에 대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ㆍ외교상 기피인물)로 지정하라고 지시했다”면서 “그들이 터키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터키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사절에 대해 주재국이 외교상 기피 인물을 의미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통보하면 파견국은 해당 인물을 자국으로 불러들이거나 공관 임무를 종료시켜야 한다. 결국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10개국의 주재 대사들에게 추방 명령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목한 이들은 데이비드 새터필드 미국 대사를 비롯해 프랑스ㆍ독일ㆍ네덜란드ㆍ캐나다ㆍ덴마크ㆍ스웨덴ㆍ핀란드ㆍ노르웨이ㆍ뉴질랜드 대사로 서방 10개국 대사들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렇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10개국의 대사들을 추방하라고 명령한 이유는 이들 대사들이 지난 18일 반정부 활동으로 4년째 수감 중인 인권 운동가이자 자선 사업가 오스만 카발라(64)의 석방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지난해 카발라에 대한 무죄 판결에도 새로운 사건이 추가되는 등 재판이 지연되면서 터키 사법 시스템의 민주주의, 법치, 투명성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며 “터키에 카발라 긴급 석방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카발라는 억만장자 미국인 조지 소로스와 공모해 2013년 터키 반정부 시위에 자금을 댄 혐의, 2016년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2017년부터 수감됐다. 그러나 지난 해인 2020년에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2016년 추가된 쿠데타 미수 혐의로 아직도 강제로 구금된 상태로 장기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발라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으나, 터키 시민사회에서는 그를 ‘에르도안 정권 탄압의 상징적인 피해자’로 본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사실 10개국 대사들이 이러한 성명을 냈다는 것은 사실 미국을 비롯한 10개국 정부의 뜻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지만 터키 외무부는 이튿날인 19일, 10개국 대사를 불러들여 “공동성명은 무책임하다”며 “이들 나라가 사법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고 반발했다. “터키 사법부에 개입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들 뿐 아니라 유럽평의회도 지난 17일 카발라를 석방하지 않으면 오는 11월 터키에 대한 징계 투표에 돌입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도 이미 지난 2019년 “카발라의 투옥은 그를 침묵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며 “범죄의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았으므로 석방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터키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터키내 야당들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외교 마찰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익 보호가 아닌 경제 실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당장 서방세계 10개국 대사 추방명령을 이행해야 할 터키의 차부쉬오울루 외교부장관은 24일까지 한국을 방문한 상황이어서 터키로 귀국한 후 이 명령의 이행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터키의 대사 추방명령에 대한 서방세계의 반응은?]


터키 당국의 대사 추방명령에 대해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런 보도를 인지하고 있으며, 터키 외교부에 명확한 설명을 요청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미국 대사의 경우 후임자 제프 플레이크 대사에 대한 상원 외교위원회의 승인이 난 상황이지만 아직 터키로 부임한 상황은 아니다.


또한 노르웨이·덴마크·뉴질랜드 외교부도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로이터에 답했다.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10명의 대사를 추방한 것은 터키 정부의 권위주의적 경향을 드러낸 것”이라며 “우리는 겁먹지 않을 것이다. 오스만 카발라에게 자유를”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10개국 대사를 끝내 추방할까?]


그렇다면 관점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방세계와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미국을 비롯한 10개국 대사들을 추방할 것인가의 문제다.


현재 예상으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일단 초강수를 던져놓고 실행은 미루면서 단계적 조치를 취할 것이란 분석들이 나온다. 다시말해 ‘10개국 대사 추방조치’라는 외교적 선언을 통해 터키 자국내 정치에 대해 외국의 대사들이 더 이상 개입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린 다음 슬그머니 ‘페르소나 논 그라타’ 조치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전개하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다.


왜냐하면 불과 며칠 후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정상회의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터키가 그러한 국제무대를 내팽개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터키는 G20회원국이다. 당연히 에르도안 대통령은 로마에서 열리는 대면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고 그곳에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번에 추방명령을 내린 10개국 정상들 또한 얼굴을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G20정상회담 이전에 외교적 해결 수순을 밟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 지난 9월 29일 푸틴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에르도안 대통령 [사진=터키 대통령실]

[좌충우돌, 터키의 에르도안]


그렇다면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세계와의 불편한 관계 조성을 무릅쓰고 이렇게 말도 안되는 무리한 조치를 취하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해 ‘알자지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방국가 대사들을 실제로 추방하면 에르도안 집권 19년을 통틀어 서방국가와 가장 깊은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한 추정은 당연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기도 한 터키는 최근들어 서방국가들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한마디로 ‘서방국가이면서도 전혀 서방국가답지 않은 행동’들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터키는 나토 동맹국이면서도 러시아산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S-400을 도입했고, 또 추가로 도입할 계획도 가지고 있어서 미국 및 나토 동맹국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또한 서방국의 일원이면서도 완전히 중국 친화적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어 서방세계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고, 미국과 동맹관계이면서도 동맹을 해치는 일들을 수시로 벌여 ‘3류 동맹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프랑스와 그리스가 지난달 국방 협력을 약속한 것에 대해 터키 국방부는 “나토 동맹이 약해질 수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터키는 그리스와 키프로스섬 영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어찌되었건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10개국 대사 추방명령은 서방세계와의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지금 터키 경제는 깊은 수렁속에 빠져 있다. 그래서 터키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러한 외교정책은 완전히 방향을 잘못잡은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러면서도 EU(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가 악화되면 될수록 국내 정치 안정을 위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카발라에 대한 장기 구금 문제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같이 지난 2003년에 총리로 집권한 이후 이미 18년째 장기집권을 하면서 독재 체제를 굳혀왔다. 2010년에는 총리의 4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해 5년 임기의 직선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2017년에는 개헌을 통해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면서 사실상 입법·사법·행정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여기에 대통령이 의회 해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 의회를 무력화했고, 고위 법관 임면권도 빼앗았다.


이러한 철권 독재정치로 인해 경제가 피폐해지자 지난 3월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 금리를 인하하려 했지만 중앙은행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자 중앙은행 총재도 경질하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리라화 가치가 장중 17%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이번 서방 10개국 대사 추방조치는 또다시 터키 경제를 흔들고 있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24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명령대로 대사 추방조치가 이뤄진다면 이미 20%이상 폭락한 리라화는 추가 매도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이미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 터키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G7이 설립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터키를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 억제를 위한 조치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그레이리스트(Gray List)로 강등했다. 그레이리스트는 블랙리스트(black-list)의 전 단계다.


이렇게 터키의 경제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민여론도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닛케이는 “터키가 실업률이 높은 가운데 인플레이션도 20%에 달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9월들어 급추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에르도안의 집권당이 야당의 지지율보다 처음으로 더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터키 경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지원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터키의 주요 수입원인 방위산업에 대한 정밀 제재를 가하게 되면 터키 경제는 그야말로 숨도 못쉬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지금 터키에 대한 제재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만약 터키가 진짜로 대사 추방을 하면서 서방세계와 적대적 관계 개념으로 돌입하게 된다면 미국은 터키의 방위산업에 ‘뼈 때리는 정밀 제재’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트럼프 정부 시절에 이미 미국은 터키군의 무기 획득, 수출 및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정부기구방위산업부(SSB)를 겨냥해 SSB에서 무기를 생산, 수출할 때 미국의 라이선스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또 SSB 부장 및 고위 간부 3명의 재산 동결 및 비자제한 등의 조치도 내렸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터키의 군사협력을 훼손할 가능성은 최소화하였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터키의 방위산업은 자칫 심대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터키에 대한 제재 조치는 그 효력이 2~3년 지나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터키 경제에 주는 영향은 치명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터키의 친정부 민족주의자들은 결연히 대응하자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에르도안의 핵심 지지층인 이슬람 보수주의자들 역시 강경 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터키 경제가 수렁으로 빠진 상황에서 미국과 등을 돌린다는 것은 터키를 아예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현실적 진단이 나오자 또다시 미국을 향해 F-15전투기 구매 등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와중에 또다시 서방세계 대사들을 추방하겠다는 명령이 나와 터키는 그야말로 혼돈상황으로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지금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2023년 대선에 또 출마할 계획인 에르도안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터키를 철저히 이슬람화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반미(反美)다.


이번 10개국 서방 대사들 추방조치 또한 이슬람 세계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추구하는 에르도안 대통령 입장에서 서방의 부당한 내정 간섭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내 지지자들에게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렇다고 그들 요구대로 미국 및 서방세계와 등을 돌리자니 경제가 급추락하면서 심각한 위기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했던 외교부장관이 귀국한 후 어쩔 수 없이 대사 추방명령 시행 자체를 슬그머니 취소하는 쪽으로 가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전망을 해보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우리의 형제국이라 말하는 터키가 한 독재자의 막장통치로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그 독재자 때문에 터키의 경제도 무너지고 국격도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친구가 되는 나라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에르도안이 권좌에 있는 한 터키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터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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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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