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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중국 공산당 100주년, 시진핑의 험난한 미래 - 두려움 가득한 중공100년, "정당성 위기 처할 것" - 시진핑의 황제대관식 위한 '공산당 100주년 행사' - 美연구원, "시진핑, 위함한 궤도로 진입했다" 평가
  • 기사등록 2021-06-30 21:58:09
  • 수정 2021-07-01 08: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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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100주년 맞는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당이 7월 1일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7월 23일이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날이라 해야 맞다. 1921년 창당 당시 현재 기념관이 서 있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극비리에 회합을 가진 데다 회의하던 옆방에선 상하이를 진동시킨 살인사건마저 터지면서 회합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러다가 1938년 들어서야 제대로 된 창당대회를 열려 했으나 실제 창당 날짜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결국 마오쩌둥(毛澤東)이 첫 당 대회가 7월에 열렸으니 7월의 첫날인 1일을 기념일로 정하자고 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날짜도 다르고 진짜 창당도 1921년이 아니라 1938년인 셈이다.


창당 당시만 해도 당원이 겨우 59명이었다는데 어찌되었건 지금의 당원수는 92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증가다.


그런 정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면 전 인민이 축하하는 가운데 축제로 열어야 하나 실상 중국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는 우선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전혀 전 인민적 축제로 보낼 행사가 아니라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중앙정부가 공산당 100주년 행사를 거대하게 치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기는 하는데 인민들의 참여는 사실상 최소화하는 식으로 하는 것을 보면 중국 공산당 정권이 인민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부터 전면 봉쇄를 하고 베이징을 아예 계엄령 상태의 도시로 만들어 버린 것일게다.


그런데 이런 행사, 곧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를 보면 이 행사가 갖는 의도 또는 지향점이 분명히 보인다. 마치 스냅샷을 찍듯 살펴보면 크게 세 개의 장면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스냅샷 1: 시진핑과 마오쩌둥의 동급화]


이번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 행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장면 중의 하나가 시진핑을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시진핑 우상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상하이의 황피난루(黃陂南路)에 있는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1차 당 대회)장이다. 최근에 이 장소 옆에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초대형 기념관이 새로 생겼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관’이라는 공식 명칭의 모든 전시물 초점이 마오쩌둥이 아닌 시진핑에 맞춰져 있었다. 새 기념관에는 빈곤을 탈출하는 ‘샤오캉(小康) 사회’라는 공산당의 비전과 미래를 설명하면서, 전시의 중요한 길목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 그러면서 ‘공산당=시진핑’ 공식을 주입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념관을 보면 지금 시진핑 집권세력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변형 사회주의’로 출발했던 중국 공산당이 덩샤오핑 시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를 수용한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흘러갔다가 이제 ‘1인 독재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중국 공산당 100년을 돌아볼 때 크게 세 지도자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른바 중국 공산당 100년을 좌우한 지도자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제1시기는 마오쩌둥(毛澤東·1949∼1976년 집권), 2시기는 덩샤오핑(鄧小平·1978∼1992년 집권)과 그 영향을 받은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 전 주석 시대, 그리고 3번째 시기가 지금의 시진핑 시대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인 마오쩌둥은 1인 독재체재를 유지하면서 27년간 종신집권했다. 중국 현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지도자이긴 하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의 급진정책을 통해 중국 인민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친 지도자이기도 하다. 당시 대약진운동으로 사망한 중국인들만 무려 4000만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중국식 적폐청산인 문화대혁명만 해도 360여만명이 박해를 받았다.


두 번째 시기는 덩샤오핑 집권기로, 여기에는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포함한다.


덩샤오핑 시기는 중국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이끈 대전환의 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제도 권력분점이었고, 국정의 주요 사안은 7명으로 구성된 상무위원회에서 토론으로 결정될 정도로 활성화해 새로운 중국 지도체제의 기틀을 닦았다. 이때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조항도 확립됐다. 지지층도 마오쩌둥 시대가 홍위병이었다면 덩샤오핑 시대는 중산층이었다. 이때만 해도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가 지금의 시진핑 집권기이다. 시진핑은 권력분점 체제를 없애 버렸다. 중국식 민주주의 체제의 싹을 아예 도려내 버린 것이다.


외교만 해도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미국 등 서방과 대립하며 ‘전랑(戰狼) 외교’로 바꿔버렸다. 이른바 ‘강한 중국’을 지향한다면서 그런 것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지금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이 왜 마오쩌둥과 동일선상에 놓으면서 ‘시진핑=마오’를 꿈꾸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독재체제 및 종신집권을 마오쩌둥을 통해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덩샤오핑 체제를 통해 이룩해 놓았던 중국식 지도체제를 독재체재로 바꾸면서 종신 집권 체제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한 합리화와 더불어 자신이 제2의 건국 지도자로서 마오쩌둥과 같은 인물이라는 점을 중국의 인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같은 반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그동안 마오쩌둥에게만 써 왔던 ‘당의 조타수’라는 표현을 시진핑에게도 부여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시진핑’이라는 개념을 전 인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스냅샷 2: 공산당 창당 100주년과 애국주의 열풍]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은 지금 애국주의 열풍이 아주 뜨겁다. 앞서 언급했던 상하이의 공산당 창당 유적지들을 비롯해 관련 역사유적들에는 애국주의에 빠진 당원들로 넘쳐나고 있다.


상하이에서 100여㎞ 떨어진 자싱(嘉興)의 난후(南湖) 혁명기념관도 그렇고 혁명 성지 옌안, 시 주석이 16세이던 1969년부터 7년간 하방(下放)돼 노동을 했던 량자허(梁家河)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공산당 역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또한 집중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관영 CCTV는 올해 2∼5월 평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43부작 역사극 ‘줴싱녠다이(覺醒年代·자각의 시대)’를 방영했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내전 당시 주요 전투 등을 다룬 ‘다줴잔(大決戰)’, 1990년대 닝샤후이족 자치구에서 빈곤 퇴치 사업에 나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싼하이칭(三海情)’ 등도 방영했다.


그리고 100주년 당일인 7월 1일에는 1921년 공산당 창립 과정을 담은 영화 ‘1921’이 개봉된다.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중국의 애국주의 선동에 6.25전쟁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지난 28일 베이징 올림픽경기장 냐오차오(鳥巢)에서 2만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위대한 여정’이라는 이름하에 열린 전야제 성격의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 기념 공연에 한국전쟁이 등장했다.


인민일보는 이 장면을 이렇게 보도했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대포 소리 속에서 합창과 무용극 ‘그림처럼 아름다운 군기’는 항미원조의 전투 장면을 묘사했다. 지원군(중국군) 전사가 가족을 지키고 국가를 보위하는 불타는 심정을 노래했다.”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항미원조 전쟁(6·25전쟁)이 중국 공산당 100년을 축하하는 기념 공연을 통해 핵심적 역사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지난 28일부터 사흘에 걸쳐 인민일보에 연재 중인 ‘중공 100년 대사기(大事記)’에서도 미국과 대결한 한국전쟁을 강력하게 부각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도 이러한 홍보대열의 맨 앞에 서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6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산당에 큰 공헌을 한 당원 29명을 선정해 ‘7·1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공을 세운 퇴역 군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미중충돌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다양한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덮기 위해 애국주의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고양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애국주의 선동을 통해 1인 독재체제로 인한 인민들의 비판을 덮어 보려는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스냅샷 3: 오직 시진핑만 보인다]


또 하나, 이번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행사는 오직 시진핑만 보인다. 모든 초점을 시진핑에 맞추고 있다는 의미다. 왜 그런가? 이번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일은 사실상 내년 가을의 당대회에서의 ‘황제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1차 예비행사로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카토 연구소의 더그 밴도 연구원은 언론 기고문에서 "(시 주석이) 새로운 마오쩌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마오쩌둥처럼 사회주의 가치를 포함해 공산당을 강화하는 데 최우선을 두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공산당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는 것이라는 의미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중국의 근심]


일본에서 발행되는 닛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27일 “시진핑은 그동안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해체하고 이념적 독단주의를 재도입했다”면서 “그러한 중국 공산당의 시스템 파괴와 시진핑 주석의 1인통치로 말미암아 최대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 중국 공산당의 9200만 당원들은 더이상 공산당의 자해행위를 중단하고 진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정당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닛케이는 30일자 ‘중국공산당 100주년 특집’ 기사에서도 “중국은 미국 및 동맹국들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가 밝지 않다”고 진단한 뒤 “경제의 악화는 물론이고 인권 문제에 대한 도전, 중국의 인구 문제로 인한 어려움들이 중국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덩샤오핑 체제에서의 정치적 개혁을 포함한 중국식 개혁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시진핑 체제에서 그러한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시진핑이라는 핵심 요소 자체가 중국의 미래를 어둡고 위험하게 전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시진핑 체제에서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사라진 지금 중국에는 오직 시진핑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의 위기는 예측 불가능한 때에 닥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홍콩에서 발행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6월 29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특집기사에서 “중국 공산당이 100주년이 되지만 시진핑은 ‘중국의 부활’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도 정작 중국의 부활에 대한 실질적인 비전을 ‘대만 통일’ 외에는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고 혹평을 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25일(현지시간) ‘걱정스러운 중국 공산당 100주년‘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중국 공산당이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중국을 강력하고 민주적이며 조화롭고 현대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중국 공산당은 지극히 권위적인 정권”이라면서 “그러한 정당이 인민들에게 부과하는 통제를 세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지금 시점에서 과연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억압만으로는 중국인들을 영원히 침묵시킬 수가 없다”면서 “중국 공산당은 정당성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 애틀란틱 카운슬의 댄 네그라 수석연구원도 “중국에서 과거의 독재정권은 장기적으로 안정, 번영, 평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시진핑 독재 체제도 중국의 속도를 늦추고, 사회적 갈등을 증가시키며, 국제적인 긴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저드 블란쳇 수석연구원도 최근 포린어페어스 7·8월호 기고문에서 “야망과 정책집행은 같은 게 아닐 수 있으며, 시 주석이 전임자들이 이뤄놓은 업적을 위협하는 위험한 궤도에 들어섰다”고 평했다.


비록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았지만 이것이 건국 100주년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여기 흥미로운 수치가 하나 있다. 소비에트연방은 74년을 존속했다. 북한 공산당 정권은 73년, 그리고 중국 공산당 정권은 72년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유독 소비에트 연방의 74년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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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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