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방장관이 타고 온 둠스데이]
지난 17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심판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로 불리는 핵공중지휘통제기(E-4B)를 타고 경기 오산 주한미군 공군 기지에 도착했다.
미 국방장관이 둠스데이 E-4B를 이용해 방한하는 것은 북핵 위협이 정점으로 치닫던 2017년 2월 당시 제임스 매티스 장관의 한국 방문 이후 4년 만이다.
미 국방부는 오스틴 장관이 13일(현지 시간)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를 타고 하와이의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와 일본을 거쳐 17일 한국에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심판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란?]
옛 소련과의 냉전이 치열했던 1961년 미국 정부는 핵 공격을 받아 지상의 지휘소들이 파괴될 경우를 대비해 ‘루킹 글라스(Looking Glass·거울) 작전’을 시작했다. 여기서 ‘루킹 글라스 작전’이란 지상의 지휘소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항공기를 공중에 띄워 어떤 상황에서도 지휘 기능을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바로 이 '루킹 글라스 작전’에 당시에 쓰였던 항공기가 EC-135였고, 이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것이 지금의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다. 이를 ‘둠스데이(Doomsday·심판의 날) 항공기’ 또는 ‘나이트워치’라고 부르는데 이 항공기가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이다.
이만큼 전시상황실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공기이기 때문에 ‘하늘의 펜타곤(국방부)’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기체 안팎에는 핵 공격은 물론이고 핵폭발 시 발생하는 전자기펄스(EMP)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아날로그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더불어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는 공중 급유를 받으면서 72시간 이상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전장 길이 70.5m, 날개 폭 59.7m에 최고 속도는 시속 969km인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는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 미군을 지휘할 수 있고, 잠수함과도 직접 통신이 가능하다.
핵전쟁 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폭격기, 핵잠수함 등 모든 핵전력에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어서 ‘심판의 날 항공기’로 불린다
대당 가격은 2억 2320만 달러(약 2530억 원)에 달하는 이 핵공중지휘통제기 E-4B에는 최대 112명이 탑승할 수 있다.
1980년 1월부터 미 공군에서 운용하고 있는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는 모두 4대인데 그 중 1대는 미 대통령 근처에서 대기하며, 유사시 즉각 대통령이 탑승할 수 있도록 항시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순방할 때도 당연히 가장 가까운 거리에 핵공중지휘통제기 E-4B가 배치된다.
[둠스데이가 뜨는 이유?]
미국의 국방장관이 해외 순방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둠스데이, 곧 핵공중지휘통제기 E-4B가 뜨는 것은 물론 아니다.
2010년 로버트 게이츠 장관, 2017년 제임스 매티스 장관이 한국에 올 때 바로 이 핵공중지휘통제기 E-4B를 이용했다. 당시 매티스 장관은 한미 국방회담에서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에 어떤 핵무기로 공격해도 반드시 격퇴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서울 불바다’ 발언을 내놓아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졌을 때에는 미 전략사령부가 E-4B의 훈련 장면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전략자산을 아무 의미 없이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둠스데이’가 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둠스데이의 한국행에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던져졌다. 둠스데이의 한국행에 때맞춰 미 인도태평양공군사령부가 F-22(랩터) 스텔스 전투기를 주일 미군기지로 전진 배치했기 때문이다.
미 태평양공군사령부는 “주요 전력의 유연하고 역동적인 배치를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공약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고도의 전투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하와이 히캄 기지 소속 F-22 4대가 12일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미 해병기지에 도착한 장면을 전격 공개했다.
일본에 도착한 F-22는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된 미 해병대의 F-35B 스텔스 전투기, 일본 항공자위대와 연합훈련도 진행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미국은 그간 현존 최강의 전투기로 알려진 F-22를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주로 전진 배치해 왔는데, 이번에는 한국의 휴전선과 직선거리로 약 640km 떨어진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이례적이다.
이는 북한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보낸 것이고 더불어 중국을 향해서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민감하게 반응한 중국, 랴오닝항모 출동]
이렇게 미국의 둠스데이 한국행에 이어 F-22의 추가배치까지 단행되자 중국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17일 저녁 늦게 랴오닝(遼寧) 항모 전단이 랴오둥(遼東) 반도 앞 보하이(渤海)만을 떠나 서해로 진입한 것이다. 물론 한국 영해를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랴오닝함은 서해에서 함재기를 띄우고 내리는 이착함 훈련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인민해방군이 현재 16일부터 서해ㆍ동중국해ㆍ남중국해 등 3개 해역에서 대대적인 해상 훈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17일까지는 함정ㆍ잠수함ㆍ군용기 훈련과 해상 긴급 견인 및 수색ㆍ구조 훈련만 했을 뿐 항모를 투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긴급하게 항모까지 발진시킨 것이다.
구축함과 군수지원함의 호위를 받으며 서해로 진입한 랴오닝함은 ‘둠스데이’의 출현에 자극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또한 17일 오전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함도 한국 영해 근처로 보냈다. 16일까지 일본 인근 해역에 머물다 쓰시마(對馬) 쪽에서 한국 남해로 방향을 틀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저녁에는 제주도 인근 해상에 중국 군함 3척이 발견돼 한국 해군 초계기가 급파되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의 둠스데이 출현에 중국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둠스데이 출현과 F-22 추가배치 등의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의도적 행위로 해석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토니 블링컨 장관이 한국과의 2+2회담에서 했던 발언, 곧 “중국의 반 민주주의적 행동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 그리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국방장관 회담 모두 발언에서 했던 “북한과 중국의 전례 없는 위협으로 한ㆍ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 발언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