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2-23 19:14:33
기사수정
-근로시간 길어서 노동생산성 낮다고? ‘야근수당 타기 위한 주간업무 태만’ 지적할 수밖에
-노동생산성 격차는 ‘자본’과 ‘기술’의 격차. 자본재와 기술 고도화한 것은 결국 경쟁의 힘
-한 해 16조 5천억 원의 정책자금과 85조 원 규모의 보증지원 등 부실기업 지원 중단해야

1. ‘근로시간이 길어서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좌익들의 주장은 사실 일고의 가치가 없다. 인과관계를 거꾸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이 낮아서 근로시간이 길다’는 게 제대로 된 진술이다.


2. 왜 그런가.

‘근로시간이 길어서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에는 ‘근로시간을 줄이면 노동생산성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내야 한다. 노동생산성은 ‘총 생산÷총 근로시간’이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 향상은 고사하고 기존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이라도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3.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기만 하면 시간 당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는가.

설사 그렇다한들, 총 생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만큼 폭발적으로 시간 당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답한다면, 그동안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근로시간이 길어서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은 공허한 핑계에 불과해진다. 열심히 일했다면 근로시간은 줄어들었을 테니 말이다.


▲ 사무직 노동자들은 업무량과 강도를 신축적으로 조절, 일감 미루기가 수월하다.


4. 사실 한국의 야간근로 임금 할증률은 50%로 20~30% 수준인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최대한 주간의 일을 미뤄 야간에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인센티브 구조가 왜곡돼 있다. 특히 컨베이어 벨트의 제조업 노동자가 아닌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량과 강도를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일감 미루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근로시간이 길어지고 노동생산성이 떨어진 측면이 있을 것이다.


결국 좌익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여가를 희생한 것은 본인들의 선택이기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원인을 장시간 근로에 돌리면, 결국 본질적인 원인은 ‘야근수당을 타기 위한 주간 업무 태만’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5. 하지만 1번에서 필자는 장시간 근로가 노동생산성 저하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고 했다. ‘야간근로 할증→ 장시간 근로→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경로는 노동생산성 저하의 핵심이 아니라고 본다. 당장 전체 취업자의 30% 가량이 자영업자인데, 이들은 야간근로 할증에서 벗어난 계층이다. 또한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대체로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종사하는데, 해당 업종은 한국에서 생산성이 가장 낮은 업종들이다. 한국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제조업 대비 50% 수준이다.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에서도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 대비 30%에 그친다. 한국 대기업 사업장은 강성노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야근수당 지급규정을 중소기업보다 훨씬 엄격하게 지키는데 생산성은 오히려 높다. 요컨대 야간근로 할증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문의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더 낮다. 따라서 ‘야간근로 할증→ 장시간 근로→ 노동생산성 저하’가 문제의 핵심이 아닌 것이다.


6.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의 본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한다. 박진우라는 사람이 똑같이 1시간 동안 땅을 판다고 해도, 숟가락으로 팔 때와, 삽으로 팔 때, 굴삭기로 팔 때의 진행률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결국 노동생산성의 격차는 ‘자본’과 ‘기술’의 격차다.


7. 현대 경제에서 자본과 기술의 집적체는 대기업과 우수 중견기업이다. 이들은 영세 중소기업 시절부터 시장의 무수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자본재(설비, 부품 등)와 기술(지식생산물, 특허권, 인사 조직 관리 등)을 고도화해온 기업들이다. 그들을 자본과 기술의 보고로 만든 것은 ‘경쟁의 힘’이다.


8. 한국의 산업 생태계에서는 오랫동안 그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명목 하에 부실 중소기업에 정책자금을 퍼붓고 신용보증을 남발해왔다. 2017년 한 해에만 16조 5천억 원의 정책자금과 85조 원 규모의 보증 지원이 이뤄졌다. OECD 최고 수준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와 같은 업역 보호는 물론, 세금 감면을 비롯해 법률 상 특혜조항만 150 가지에 달한다. 반면 대기업에 대해서는 대기업 집단 지정제도를 통해 강력한 통제를 가했다.


부실 중소기업을 이렇게 지원하면 우수 기업이 시장점유율을 키우지 못한다. 100 원에 팔던 제품을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 50 원에 팔거나, 같은 100 원짜리를 품질을 높여 팔게 되면, 그 회사가 시장점유율 키워 중견/대기업이 되는 게 시장의 발전원리다. 그런데 부실기업에 개당 50 원꼴의 지원을 하게 되면 우수기업은 시장점유율을 키울 수 없다. 여기에 대기업이 되면 사업을 못하게 하거나 각종 통제를 가할 경우 혁신 의지가 사라진다. 시장은 그저그런 기업들의 과당경쟁판이 되는 셈이다.


9. 그 결과 한국의 전체 기업 중 중견/대기업의 비중은 OECD 선진국의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저그런 기업들만이 노동의 수요자로 경쟁하기에, 임금도 잘 오르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가 생길 리도 만무하다. 대기업은 악이요 중소기업은 선이라는 그릇된 이분법이 낮은 노동생산성의 원인이며, 동시에 장시간 근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10.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나라다.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수 없다. 노동개혁, 규제 혁파, 가업 상속세제 정비 등 자본과 기술의 고도화를 촉진할 ‘경쟁의 힘’을 되살려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생산성 향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80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